지난 2월25일 열린 제154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모습.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안전법 위반 등에 대해 과징금 319억5000만원을 부과하는 등의 2개 안건이 심의·의결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위원회에 전문가가 없다” “정치적·이념적으로 치우친 결정을 했다” “원전 가동에 과도하게 발목을 잡아왔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뒤집기에 나선 윤석열 당선자 쪽과 보수 언론들이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집중 공격하고 있습니다.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 승인 등 원전 이용 확대 정책 추진이 쉽도록 원안위를 개편할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죠.
원안위는 자신을 탈원전 정책의 부역자로 몰아 붙이는 이런 주장에 아무 항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안위원들은 허탈감이 큰 듯합니다. 원안위 심의는 대개 오전 10시30분에 시작해 도시락을 시켜 먹고 오후 늦게까지 진행됩니다. 원안위원들은 자신의 결정이 방사능 재난의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다는 중압감에 미리 자료를 받아 검토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씁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힘들다고 임기 안 채우고 중간에 사임하신 분까지 있을 정도인데, 원안위 회의록이나 한 번 읽어보고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하는 원안위원의 심경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차기 정부 인수위와 보수 언론들이 원안위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목하는 것은 ‘전문성 부족’입니다. 정치적·이념적 결정이니, 과도한 발목잡기라고 하는 주장의 밑바탕에 모두 전문성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원자력 전문가도 아닌 원안위원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원전 운영허가 등의 심의를 지연시켜 탈원전을 뒷받침했다는 주장입니다.
원안위에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윤석열 당선자도 한 이야기입니다. 윤 당선자는 지난해 12월29일 원전 공약을 발표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전문가가 있는지 한 번 보십시오. 거의 없습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총 9명의 원안위원은 당연직 위원인 위원장과 사무처장, 7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됩니다. 현재 비상임위원 7명은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한 원자핵공학 박사, 전 캐나다원자력공사(AECL) 선임안전분석가, 재료공학 교수, 행정학 교수,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의사, 변호사입니다. 원자핵공학 박사 정도는 돼야 원안위원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원자력 전공이 아닌 교수, 변호사, 의사 등이 원자력 안전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려고 비전문가들을 대거 원안위원에 임명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오해입니다. 원자핵공학과는 거리가 먼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원안위 참여는 현 정부가 아니라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원안위를 출범시킬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첫 원안위에서는 상임위원인 위원장과 부위원장만 원자력 전문가로 볼 수 있고, 비상임위원 7명은 모두 다른 분야 전문가였습니다. 비상임위원들의 위촉 당시 직업을 살펴보면 재료공학과 교수, 정치외교학과 교수, 건축학과 교수, 변호사, 방사선종양학 교수(의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현 환경연구원) 부원장, 과학 담당 언론인 등 이었습니다. 차기 정부의 환경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한화진 한국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이 바로 환경전문가 몫으로 원안위원이 된 당시 KEI 부원장입니다. 결국 ‘탈원전’ 정부와 첫 원전 수출을 달성한 ‘친원전’ 정부의 원안위원 구성이 거의 다르지 않은 것이죠.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정부의 원안위 구성이 이렇게 동일한 것은 법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2011년 제정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위원은 원자력 안전에 관한 식견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임명하거나 위촉하되, 원자력·환경·보건의료·과학기술·공공안전·법률·인문사회 등 원자력 안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관련 분야 인사가 고루 포함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입법자들은 원안위가 다양한 방사선 재해와 관련된 안전 문제를 최종 결정하려면 원자력 기술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식견이 결합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김호철 원안위원(변호사)은 “원자력 안전 규제에 반드시 원자력 설계 분야 혹은 원자력 전문가만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하고 설계한 원자력안전위원회 구성 체계에 따라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 당선자가 대선 때 원전 공약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최고 원자력 전문가들로 이 원안위를 구성하겠다”고 한 것은 따라서 관련 법률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법률과 당선자의 약속을 모두 지키려면 국내 최고 원자력 전문가인 동시에 환경, 보건의료, 법률 등의 전문가를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원안위원 가운데 원자핵공학 전공자나 원전 분야에서 오래 실무 경력을 쌓은 사람은 3명이 있습니다. 카이스트 원자핵공학 박사로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한 이병령 위원, 카이스트 원자핵공학 석사를 마치고 공직에 들어와 원자력 정책·안전·규제 관련 부서에서 주로 근무한 유국희 위원장, 기계공학 석사 출신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에서 안전 분석을 담당한 하정구 위원입니다.
원안위원 가운데 전문가가 한 명 뿐이라는 보수 언론들의 주장은 이병령 위원만 원자력 전문가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실력과 경력이 어떻든 원자핵공학 박사 학위는 갖고 있어야 원자력 전문가로 본다는 얘기입니다. 원안위에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윤 당선자도 이런 분류를 따르는 듯 합니다. 차기 정부에서 원자핵공학 박사이면서 의사나 변호사, 환경 전문가인 적임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원안위는 산하에 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등 전문기관을 두고, 최고의 원자력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기술적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판사가 판결을 하듯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원안위원들의 역할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그랬던 것처럼 원안위원들이 모두 원자력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 원안위원의 지적입니다.
김호철 원안위원은 “현재 우리 원자력 안전 규제 체계에는 원자력 안전규제 전문기관과 원자력 전문가들로 구성된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원안위 구성 자체에 원자력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도 종교학·정치학 전공자 등 포함
원자력 기술 비전문가가 원자력 안전 규제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 원자력 안전 규제 체계의 모델 격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현직 NRC 위원 3명 가운데 위원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핸슨(Christopher T. Hanson)은 종교학과 자연경제학 전공자로 위원회 합류 전 상원 세출 위원회에서 민간 및 국가 안보 핵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일을 했습니다. 미국 하원 에너지 및 상업위원회에서 근무하다 NRC 위원이 된 제프 배런(Jeff Baran)은 정치학 석사 학위를 가진 변호사 출신입니다. 2018년 취임한 데이빗 롸이트(David A. Wright) 위원은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에너지 및 물 컨설팅 업체를 운영해온 기업가입니다.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최고의 원자력 전문가만 원안위원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은 관련 법률, 과거의 원안위 구성, 해외 사례 어느 것에 비춰서도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