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저녁부터 수도권 등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 폭우로 인해 한강 수위가 급격히 상승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한강이 흙탕물을 머금고 하류로 흐르고 있다. 통제됐던 올림픽대로 가양대교에서 동작대교 구간의 양쪽 방향 차량 통행은 이날 오후 모두 해제됐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 8일 서울 동작구에는 하루 동안 381.5㎜의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송월동 관측소 기준)의 역대 최고 일강수량 354.7㎜(1920년 8월2일)를 뛰어넘은 기록이다. 지금까지 일강수량 최고치는 태풍 ‘루사’(2002년 8월31일) 때 강원도 강릉시에서 기록된 870.5㎜이지만, 서울에서 하루에 400㎜ 가까이 온 경우는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처음이다. 이날 비는 밤 8시부터 한시간 동안에만 141.5㎜가 집중됐다. 서울 우면산 산사태(2011년 7월27일) 때의 최대 1시간 강수량(113㎜)보다 많다.
이러한 관측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낸 것은 정체전선에 의해 형성된 강한 비구름대다. 정체전선은 찬 공기(한랭전선)와 따뜻한 공기(온난전선)가 부닥쳐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대기의 상태를 말한다. 8일부터 한국에 폭우를 쏟아내고 있는 정체전선은 주변 3개의 고기압과 1개의 저기압이 빚어낸 ‘4중주’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러시아 캄차카반도에 위치한 고기압(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벽(블로킹) 구실을 해 공기의 동서 흐름을 막으면서 북서쪽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흘러내리게 하고 있다. 또 서태평양에서 발생한 뜨거운 수증기가 우리나라 동쪽에 자리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돼 정체전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장은철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는 “몽골 동쪽에 자리한 저기압이 블로킹에 막혀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찬 공기를 끌어내리고 남중국해 쪽 저기압에서도 수증기가 계속 공급돼 비구름대가 만들어진 것이 1차 원인이고, 티베트고기압의 끝단과 북태평양고기압의 끝단이 서로 만나면서 비구름대가 강해진 것이 2차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제5호 태풍과 제6호 태풍이 흐트러지면서 중국 쪽에 저기압을 발달시킨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기압배치는 올해만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지만, 국지적이고 극단적인 폭우의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은철 교수는 “지난해 8월 중순에도 올해와 비슷한 기압배치로 많은 비가 온 적이 있다”며 “올해는 여러 기상요소들이 한꺼번에 모아지면서 극단적 강수가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창회 교수는 “장마가 끝나고 북태평양고기압이 지배하는 시기에 이번과 같은 기압계 양상이 형성되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서울 동작구)처럼 국지적으로 극단적인 강수가 나타나는 것은 기후변화로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기상청은 이날 이번 정체전선에 의한 비가 오는 16일까지 일주일 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우진규 예보분석관은 “13~16일 북한 지방에서 정체전선이 다시 활성화해 중부지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장마철처럼 정체전선에 따라 오는 비여서 ‘2차 장마’가 아니냐, ‘가을장마’가 당겨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장은철 교수는 “흔히 표현하는 2차 장마는 8월 중순 이후부터 9월 초까지 만주까지 북상했던 북태평양고기압이 다시 수축하는 과정에 형성된 정체전선이 만드는 강수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번 폭우와는 다른 기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기상학계와 기상청에서는 이 시기 강수 현상이 6월 하순~7월 하순의 장마철과 달리 일관된 양상을 보이지 않아 2차 장마 또는 가을장마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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