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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모두에게 닥쳐온 기후변화, 모두에게 같은 문제일까요?

등록 2022-08-31 15:28수정 2022-08-31 15:40

[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국가 간, 계층 간, 세대 간 기후불평등
국가별 기후변화 적응 역량, 피해 차이로
저소득가구, 노인 등 취약계층에 피해 집중
미래세대도 기존에 배출된 온실가스에 피해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A. 아니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국가 간, 계층 간, 세대 간에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 하늘 완전 파랗고 미세먼지 제로잖아. 어제 비 왕창 온 덕분에.”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가 내린 다음 날 부잣집 주부 연교가 한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 반지하에 사는 기택네 가족들은 집이 침수돼 임시대피소에 있었습니다. 폭우는 평등하게 쏟아졌지만, 이에 대한 반응 또는 대응은 평등하지 않음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를 겪으며 영화의 이 장면이 떠오른 분들 있으실 겁니다. 현실에서도 폭우 피해는 반지하 거주자, 장애인 등 약자에게 더 가혹했습니다. 지난 8일 밤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사망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30일 오후 6시까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이번 폭우로 17명이 사망했고, 4명이 실종됐고, 28명이 다쳤습니다. 이재민은 2만5444세대(4만2807명)로, 현재까지 귀가하지 못한 이들도 780세대(1247명)나 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짚습니다. 기후변화는 폭우, 폭염, 가뭄 등 ‘기후재난’으로 이어지고, 재난의 영향은 불평등합니다. 지난 2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 제2실무그룹 보고서 ‘기후변화 2022: 영향, 적응 및 취약성’은 다양한 증거를 들어 이러한 불평등을 증명합니다.

우선 국가별 기후변화 적응 역량의 차이는 피해 정도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보고서는 저개발 국가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취약하다고 짚었습니다. 국제적으로 기후변화 취약지는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동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군소 도서 개발도상국, 북극에 분포합니다. 관련 인프라 부족 등으로 기후변화 적응 역량이 낮은 국가가 많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2010~2020년 사이 이 지역에서 홍수, 가뭄, 폭풍으로 인한 사망률은 취약하지 않은 지역에 견줘 15배나 높았습니다.

18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폭우참사로 희생된 주거취약계층·발달장애인·빈곤층·노동자 시민분향소를 찾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폭우참사로 희생된 주거취약계층·발달장애인·빈곤층·노동자 시민분향소를 찾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안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됩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한 취약성이 “젠더, 민족, 소득 격차 또는 이러한 요소들의 복합적 작용에서 비롯된 불평등과 소외로 악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기후변화로 극한 기후 현상이 늘면서 수백만에 이르는 인구가 식량 불안에 노출되고 물 부족, 영양실조를 겪는데 저소득 가구와 아동, 노인, 임산부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힙니다.

기후변화의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것은 국내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납니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5월30일부터 6월12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2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월 소득이 낮을수록 기후변화를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5년 사이에 폭염, 폭우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점 척도로 응답하도록 하니, 월 소득 500만원 이상 응답자는 4.05였고 월 소득 100만원 미만 응답자는 4.45였습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더 심각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또 월 소득 100만원 미만 응답자 중 일사병, 탈수 등 폭염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64.5%였지만, 월 소득 500만원 이상 응답자 중에서는 34.5%만 폭염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업종별로는 야외에서 주로 일하는 농민과 건설노동자 등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더 많이 겪습니다. 2020년 12월 국내에서 농민, 건설노동자, 해수면 상승지역 거주민 등이 기후위기로 인해 생명권과 건강권 등 인권을 침해받았다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하기도 했습니다. 인권위가 진정은 각하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인식과 국내외 정책 동향 실태조사’ 보고서를 내어 일부 야외·실내 노동자와 농민, 어민, 비적정 주거 거주민 등을 기후변화 취약계층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건설노동자, 배달노동자, 폐기물 선별 작업장 노동자, 학교 급식노동자 등이 직업 특성에 따라 온열질환을 겪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크다며 온도·습도 관련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등 보호 조처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 취약계층을 세부적으로 분류한 후 각 대상별로 기후변화 취약성의 원인을 고려해 대응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6일 오후 전남 해남군 황산면 축사가 폭우로 인해 침수돼 있다. 축사 주변이 1m 넘게 침수되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지 못한 소들이 축사에 남아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전남 해남군 황산면 축사가 폭우로 인해 침수돼 있다. 축사 주변이 1m 넘게 침수되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지 못한 소들이 축사에 남아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 번 배출된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수백 년간 머무릅니다. 미래세대는 현재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를 겪어야 하는 거죠. 청소년 기후 활동가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고, 태아와 영·유아들이 ‘아기기후소송’에 나선 이유입니다. 아기기후소송은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미흡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입니다.

인간보다 동물은 기후재난에 더욱 취약합니다. 폭우가 내려도 목줄에 묶여있어 재난을 피할 수 없었던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8월18일 기준 농림축산식품부 집계를 보면, 이번 폭우로 가축 10만3880마리, 벌통 1269군(개·벌통 1개당 꿀벌 약 2만마리 서식) 등이 죽었습니다. 야생 동물이 입은 피해는 집계조차 안 됩니다. 녹색당 동물권위원회는 30일 논평을 내어 “인간 이외 동물도 재난으로 인해 생명의 피해를 본다는 점에 진지하게 주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위기로 인해 어떤 동물도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 이들이 더 큰 피해를 봅니다. 기후변화로 더 큰 피해를 겪는 저개발 국가보다 선진국이 역사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습니다. 현재도 한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 안팎을 차지합니다. 또 최근 해외 유명인사들의 ‘전용기 탄소 배출 논란’에서 알 수 있듯, 더 큰 피해를 겪는 취약계층보다 고소득층이 대체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세계 소득 상위 10%가 전체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을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동물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중 상당량이 인간을 위해 가축으로 길러지며 나온다는 것과 미래세대는 아직 온실가스를 배출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과 미래세대도 지금 사는 인간들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기후불평등에 공감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해보시면 어떨까요. 환경단체 등의 연대 조직인 ‘9월 기후정의행동'은 다음달 2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을 비롯한 다양한 행동을 벌일 예정입니다. 동물권을 위한 단체인 ‘카라’와 녹색당 동물권위원회 등도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 위기를 동물이 먼저 겪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합니다. 9월 기후정의행동은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싸움”이라고 이번 행진을 설명합니다.

기후변화 ‘쫌’ 아는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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