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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Q. 녹색기후기금에 돈 내는 한국, 손실·피해 기금은 모른 척?

등록 2023-12-27 16:20수정 2023-12-27 19:12

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2022년 9월6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캄바르 샤다드코트 지역에서 여성들이 침수된 집에서 인양한 소지품을 옮기고 있다. 샤다드코트/AP 연합뉴스
2022년 9월6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캄바르 샤다드코트 지역에서 여성들이 침수된 집에서 인양한 소지품을 옮기고 있다. 샤다드코트/AP 연합뉴스

A. 한국 정부가 지난 9월 공여하겠다고 약속한 녹색기후기금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공식 출범한 손실과 피해 기금은 전혀 다른 기금입니다. 녹색기후기금은 개발도상국의 ‘완화’(온실가스 감축)와 ‘적응’(현재 또는 미래 기후변화 위험 대응)을 지원하는 기금이고, 손실과 피해 기금은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등 극심한 현상이나 해수면 상승과 같이 서서히 일어나는 현상으로 피해를 본 개도국을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개막식(11월30일)에서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하면서 기금 공여 문제가 핵심 문제로 떠올랐고, 한국도 ‘세계 9위 탄소배출국’으로서 공여 압박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난 9월 녹색기후기금에 3억 달러를 공여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만 반복했습니다.

사실, 기후재원은 녹색기후기금과 손실과 피해기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유엔 산하 기후재원은 총 6개입니다. 기존 녹색기후기금, 지구환경기금, 적응기금, 최빈국기금, 특별기후변화기금에 이번에 손실과 피해 기금이 추가된 것이죠. 유엔기후변화협약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사국총회는 새로운 기금을 창설할 수 있는데, 1991년에 만들어진 지구환경기금을 제외한 다섯개 기금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답니다. ‘너무 기금이 많다’고 선진국들이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아흐마드 자비르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비르 의장은 이날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고 밝혔다. 두바이/신화 연합뉴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아흐마드 자비르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비르 의장은 이날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고 밝혔다. 두바이/신화 연합뉴스

실제 손실과 피해 기금이 처음 합의된 2022년 11월 제27차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들은 새로운 기금을 만들지 말고 기존 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새로운 기금이 만들어지면 선진국들은 ‘또’ 기금 공여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올해 제28차 당사국총회에서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와 일부 선진국들이 손실과 피해 기금에 7억9200만달러(약 1조327억원)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개도국들은 손실과 피해를 전담하는 새롭고 독립적인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개도국 입장을 반영해 새로운 기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만 기금 공여는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는 개념인 ‘보상’이나 ‘배상’이 아닌 자발적으로 기부하기로 타협했습니다.

기금은 수혜국, 목적, 재원조달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단 2013년 12월 인천 송도에서 출범한 녹색기후기금은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당사국총회에서 설립이 합의됐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세계 최대의 다자간 기후기금으로, 회원국들의 공여로 재원을 모읍니다. 녹색기후기금은 초기재원 및 1차 재원보충(2020∼2023년)을 통해 총 203억 달러를 조성했습니다. 올해는 2차 재원보충(2024∼2027년) 기간인데 지난 10월까지 93억 달러,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미국을 비롯한 6개국이 35억 달러를 공여하기로 하면서 총 128억달러를 모았습니다. 한국은 초기 1억달러, 1차 재원보충 2억달러를 냈고, 2차 재원보충 3억달러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모인 손실과 피해 기금, 적응 기금, 최빈국 기금, 특별기후변화기금.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 누리집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녹색기후기금과 견줘 적응기금, 최빈국기금, 특별기후기금은 규모가 작습니다. 개도국의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적응기금은 2001년 11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7차 당사국총회에서 결정됐됐습니다. 적응기금은 선진국의 공여뿐 아니라 청정개발체제(CDM)의 수익금 2%를 기금으로 활용합니다. 청정개발체제는 선진국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수행해 달성한 실적의 일부를 선진국의 감축 실적으로 허용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제28차 당사국총회에서 적응기금은 총 1억8770만 달러 모금됐는데요. 한국은 지난해 제27차 당사국총회에서 3년간 300만달러를 공여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최빈국기금과 특별기후변화기금 설립도 2001년도에 합의됐습니다. 최빈국기금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가니스탄 등 46개국의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적응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별기후변화기금은 개도국 기후적응과 함께 기술이전이나 역량 강화 등을 지원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미국 천연자원보호협회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제28차 당사국총회에서는 최빈국기금은 1억4440만 달러, 특별기후변화기금은 3490만 달러가 모였습니다.

1991년 세계은행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지구환경기금은 1994년 세계은행으로부터 독립하며 유엔기후변화협약 등 여러 환경협약의 재정 마련 수단으로 선정됐습니다.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 사막화 방지, 아마존 등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게 특징입니다. 4년 주기로 재원 보충이 이뤄집니다. 최빈국기금과 특별기후변화기금이 2001년 만들어진 후에는 지구환경기금이 이 기금 운영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지구환경기금이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 전반, 녹색기후기금이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적응기금이 적응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기에 이번에 완화와 적응으로 모두 흡수하지 못하는 손실과 피해 기금이 생긴 것이고요.

기후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6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손실 및 피해 기금과 관련한 시위를 하고 있다. 두바이/AP 연합뉴스
기후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6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손실 및 피해 기금과 관련한 시위를 하고 있다. 두바이/AP 연합뉴스

선진국은 사실 기금 종류가 많다고 ‘볼멘소리’를 낼 입장은 아닙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약속한 총액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은 2009년 제15차 당사국총회에서 2020년까지 다자·양자·민간 채널을 통해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기후기금을 조성하고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2015년 제21차 당사국총회에서는 그 기간을 2025년까지 연장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까지 연 1000억 달러를 조성하지 못했고, 결국 2021년 제26차, 2022년 제27차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에 책임론이 일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2022년에는 이 목표를 달성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제28차 당사국총회에서 합의된 전 지구적 이행점검 합의문에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합의문에서 전 세계 국가들은 202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내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제29차 당사국총회에서 재원조성 목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협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제29차 당사국총회에서는 손실과 피해 기금에 공여하겠다는 발표를 할까요? 녹색기후기금 3억달러 공여를 다시 반복하는 것은 아니겠죠?

기후변화 ‘쫌’ 아는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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