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특사로 나선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가 지난 17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글로벌 메탄 서약’ 세션에 참가해 생각에 잠겼다. 샤름엘셰이크/AP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예상을 넘어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마련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지원 대상국 범위 등 각론에서는 당사국들이 온도차를 보이면서, 결국 합의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외신 보도와 샤름엘셰이크에서 협상을 지켜본 전문가 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종합하면, 선진국과 개도국은 크게 세가지 항목에서 의견이 갈렸다.
우선, 손실과 피해 기금을 지원받는 대상국의 범위다. 선진국은 기금 설립을 받아들이면서도 ‘기후변화의 부정적 효과에 특히 취약한 개도국’으로 지원 대상을 좁혔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라면 올해 사상 최악의 홍수를 겪은 파키스탄 같은 중견 개도국은 지원이 어려울 수 있다. 앞으로 각론 협상 과정에서 당사국 간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흥 경제국의 기금 참여 여부도 최종 협상의 장애물이 됐다. 선진국은 중국과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신흥 경제국도 돈을 내야 한다고 했고, 중국은 ‘비용 분담은 없다’며 총회 초반부터 선을 그었다.
천연가스 등 석탄 외 화석연료 감축은 막판에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당사국총회(COP26)에서 맺은 석탄 감축 합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천연가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주장은 개도국 협상 그룹인 주요 77개국(G77)과 중국은 물론 상당수 선진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과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만 합의문에 담겼다.
결국 이번 당사국총회는 손실과 피해 기금과 관련해 총론 수준에서만 합의했고, 온실가스 추가 감축에 대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감했다.
이번 당사국총회에서는 한때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 목표치로 제시된 ‘산업화 대비 1.5도 상승 제한’에 대한 후퇴까지 언급돼, 환경기후단체 사이에서 위기감이 감돌았다. 독일의 청소년 기후운동가들이 ‘1.5도를 수호하고, 손실과 피해를 다루자’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샤름엘셰이크/AP 연합뉴스
이런 원인에 대해서는 역사적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자, 선진국 그룹의 주요 축인 미국의 리더십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행동 정책위원은 “미국이 통 크게 양보해야 다른 이야기도 나오고 중국의 입장도 바뀔 수 있지만, 협상 전반에서 미국이 선도적으로 나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협상을 재생에너지·탄소저감 시장 진출 등 자국의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선진국의 태도가 세계 공동의 노력을 가로막는다고 환경단체는 지적한다. 개도국도 ‘선진국이 손실과 피해 기금 지원을 개도국 재생에너지 시장 등에 진출하는 기회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개도국은 이 기금이 대출이나 투자보다는 보상 형태의 공적 기금으로 운영되길 원하고 있다.
한국 초대 기후변화 대사를 지낸 정내권 전 대사는 “개도국에 기금을 어떻게 분배할지 등 또 다른 협상을 놓고 앞으로 몇년이 허비될 수 있다”며 “기후변화의 시급성에 비춰 이번 합의는 너무 느슨하다”고 평가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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