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대형산불 11건 발생…전례 없던 일
“안전한 지역도, 안전한 시기도 없다”
“안전한 지역도, 안전한 시기도 없다”
대형산불이 몇 년에 한 번 온다는 건 옛말이다. 피해면적 100ha(헥타르)이상의 대형산불이 거르지 않고 찾아온 지도 2017년부터 햇수로 6년 연속이다. 뚜렷하게 관찰되는 산불의 대형화와 함께 산불이 시기를 가리지 않는 ‘연중화’ 역시 심화되고 있다. 봄철이나 겨울철 건조기에 난 산불이 아니라 이례적인 여름 대형 산불이었던 밀양 산불이 대표적이다.
심화되는 산불 위기의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감소하는 경향이 산림을 건조하게 만든다. 건조한 산림에서는 작은 불씨가 큰 불로 쉽게 커진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산불은 기후변화의 결과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재해다.
산불의 최전선에서 싸우며 기후변화의 결과를 눈으로 목격하는 이들은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지난 11월9일 산림청 원주산림항공본부에서 산불 진화 헬기 조종사들을 만났다. 지난 수년간 산불 진화 작전에 출동했던 베테랑들이다. 보통 불은 종류를 불문하고 소방이 끄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산불 진화의 주무 부처는 산림청이다. 산림항공본부 소속 헬기 조종사들은 지상작전을 수행하는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와 함께 화염과 매연을 뚫고 화선에 접근해 수천톤의 물을 끼얹는 산불 진화의 주역들이다.
‘체감’하는 기후위기
올해 난 산불은 704건(12월2일 기준)으로, 지난 10년 평균(480.9건)과 비교하면 46% 가까이 증가했다. 피해 면적으로 보면 차이는 더 뚜렷하다. 올해 산불 피해 면적은 2만4767ha로 지난 10년평균과 비교했을 때 스무배를 훌쩍 넘는다. 이는 이례적으로 많이 발생했던 대형 산불 때문이다.
지난 3월 축구장 2만9303배의 면적을 태운 울진 산불을 포함, 올해 발생한 대형산불은 총 11건이다. 전례 없는 일이었던만큼 산불 진화 비행도 ‘역대급’으로 고됐다. 이동규 기장은 “재작년에는 1백시간 정도 비행을 했는데, 올해는 이미 2백시간이 넘었다”고 말했다.
안전한 시기도, 안전한 지역도 없다
그간 대형산불은 시기적으로는 건조한 봄과 가을, 지리적으로는 영동지역에서 발생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고온건조한 바람이 부는데,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해 ‘양간지풍’이라고 부른다. 작은 불도 이 바람을 만나면 산불로 쉽게 커진다. 그래서 이 바람의 별명이 ‘화풍’ 이다.
하지만 올해 유례없던 여름철 대형 산불이 한반도 남부의 밀양에서 나타났다. 기후변화와 기후변화가 야기한 건조한 환경은 한반도 전역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했다고 여기지는 지역과 시기마저도 지워나가고 있다. 한반도 기후 변화와 산불 발생의 관련성을 연구한 논문 ‘기후 변화에 따른 한반도 산불 발생의 시공간적 변화 경향(성미경 외, 2010)’에서는 우리나라 상당지역에서 산불 발생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호남지역의 산불 증가율이 광범위하면서도 높다고 지적한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 산불전문조사관은 “산불기상지수(Fire Weather Index, FWI)를 뽑아보면 최근 20년간 남쪽 지방에서 산불 위험성이 증가했다”며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30∼50%정도 FWI가 상승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김강덕 기장은 “예전에는 불이 났다 하면 영동 지역을 주로 갔는데, 요새는 (출동범위가) 점점 확산되어 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울진 산불도 간신히… 더 커지면 암담하죠”
불이 쉽게 나는 건조한 환경은 동시에 진화 자체를 어렵게 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조종사들이 체감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담수지의 감소다. 물을 채울 수 있는 담수지가 대폭 줄었다. 김강덕 기장은 “기장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계곡이나 하천들이 있는데, 담수하려고 찾아가보면 물이 너무 얕아져 다른 담수 지역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산불의 대형화 경향도 산불 진화의 어려움을 높인다. 김만주 산림청 산불방지과장은 “10년 전에 비해서 (산불 진화)자원을 1.5배에서 2배까지도 투입해야되는 정도로 산불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진화 자원이 증가하면서 수반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경수 기장은 “산불 규모가 클수록 많은 전력이 들어와서 비행을 하니까 항공기 항적 등 복잡한 문제가 많아진다”며 “(헬기 사고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말한다. 헬기 뿐만 아니다. 대형 산불에서는 산림청 뿐만 아니라 소방, 지자체 인력 등이 동원되는데, 산불이 자주 났던 지역의 인원들이 산불 대응에 익숙한 반면 그렇지 않은 지역은 신속한 대응이 쉽지 않은 것도 진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채반석 기자 chaibs@hani.co.kr 박승연 피디 yeoni@hani.co.kr
강원도 삼척 산불 현장. 녹색연합
(왼쪽부터)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김강덕 기장, 이경수 기장, 이동규 기장. 박승연 피디
최근 10년간 대형산불(피해면적 100ha 이상) 발생 현황. 이미지 제작 채반석 기자
“2017년 강릉 산불 때 선배 기장님한테 ‘기장님 맨날 이렇습니까?’라고 여쭤봤어요. 기장님은 아니라고, 이런 산불은 거의 10년에 한 번 오는거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산불이 최소 격년에 한 번 오고,계속 주기가 짧아지는 걸 보니까… 전세계적으로 기후 걱정을 많이 하는 게 이래서 그렇구나. 저희는 (산불을 통해) 체감해서 아는 사람들이죠”
경남 밀양 산불 현장. 녹색연합
진화 작전을 진행 중인 헬기. 녹색연합
“우리 헬기 자산이나 인력 같은 역량을 집중했을 때, 울진 같은 산불이 간신히, 간신히 감당 가능한 산불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산불. 아니면 그런 산불의 한 절반 정도 되는 산불이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난다. 그러면 아… 암담하더라고요”
일상화∙대형화된 산불 대응 ‘예방’이 정답이다
한해가 저무는 12월 강원 영동을 비롯한 산불 위험지역에서 대형 산불의 경고음이 반복된다. 2022년 11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2월 영덕 산불부터 6월 밀양 산불까지 오랜 기간 이어졌다. 한반도 역사이래 이렇게 산불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강원도산불방지센터 김동환 부소장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기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극심해진 지구온난화와 가뭄으로 인해 산불은 점차 통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진화보다 선제적 예방을 최우선 삼아야 하는 이유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2리. 마을회관 옆 비상소화장치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50m가량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도 비상소화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1996년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곳이다. 산 바로 아래 소나무에 둘러싸인 집들은 고즈넉한 장관을 자랑했다. 하지만 산불이 나면 금방이라도 불이 옮겨붙을 듯했다.
과거에 비해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는 줄었다. 산불이 발생하면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발생할 소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반면 산림에 인접한 가옥 피해는 여전하다. 최근 3년간 화재로 소실된 주택은 2212개소에 이른다.
마을에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된 건 이 때문이다. 소방청은 2019년 강원 동해안 지역 산림인접마을에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했다. 동시 다발 화재시 모든 마을에 소방차를 지원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산림 인접 주택단지에 주민자율소방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올해 3월 경북∙강원 대형 산불 때 비상소화장치가 주택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 바 있다. 실제로 강원 지역 11개 마을에서 비상소화장치를 활용해 주택 248호를 방어했다.
올해 들어 추가 설치된 장치는 627개가 달한다. 2024년까지 비상소화장치 설치가 필요한 지역은 2088개소로 예상된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더뎌 수요조사 대비 소화전 설치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택 방호를 위한 이격 거리 확보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법에 의하면 산림 인근에 시설물설치 시 산불 예방과 진화에 관한 별도의 조치사항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산림과 인접한 시설물 주변에 산불방지 안전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마저도 주로 사찰, 학교, 관공서 등이 대상일 뿐 주택단지에 조성된 사례는 손에 꼽는다. 산림으로부터 50m 이내 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안전조치를 강화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다.
조유진 녹색연합 기후위기 적응 기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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