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각 분과 위원장 및 간사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 부담을 줄여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계획)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27일 정부가 연 시민단체 토론회가 대다수 단체의 거부로 반쪽 진행됐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탄녹위)는 탄소중립계획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 24일 청년단체에 이어 이날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인회관에서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지역에너지전환네트워크를 포함한 5곳의 기후∙환경단체 연대체가 공동성명을 내어 시민단체 토론회 불참을 선언했다.
이날 참석해 의견을 밝힌 상당수는 민간 기업이나 연구소 관계자들이었다. 시민단체로 참가한 정신애 월드비전 활동가는 “불참 입장을 통보한 시민단체의 입장해 공감하지만, 800만명 아이들을 대변해 이 자리에 왔다”며 “유엔은 기후변화를 아동 권리의 위기로 보고 있다. 탄소중립계획 의견 수렴 과정에서 미래를 살아갈 아동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었느냐”고 따졌다.
기후∙환경단체는 탄소중립계획이 크게 세가지에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부실하게 수립됐다고 주장한다.
탄소중립계획은 지난해 10월 탄녹위 제2기 민간위원 선임 때부터
법적 시비가 일었다. ‘청년, 여성,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등의 추천을 받는 등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법과 달리 전문가와 산업계 인사로 민간위원이 채워진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 뛰어든 탈핵 반대운동 인사와 4대강 사업에 합류한 대학교수 등도 선임돼 정치성 논란이 불거졌다.
탄소중립계획의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법적 시비가 일고 있다. 탄녹위는 지난달 공청회 공고를 올리며 공청회 닷새 전까지 의견 제출을 하라고 해놓고서, 정작 계획의 내용은 공청회 하루 전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공청회 공지 때 제목과 일시 및 장소와 함께 주요 내용을 알려야 한다. 행정안전부 행정제도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일반적으로 주요 내용을 통지하지 않는 공청회는
절차상 하자가 있을 소지가 농후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의견 수렴 과정이 편향됐다는 지적이다. 탄녹위는 대한상의와 전경련 등 경제단체와 간담회를 열었을 뿐 다른 부문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탄녹위는 뒤늦게 청년단체와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추가 토론회를 진행한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불참한 시민단체가 모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위원들로 탄녹위를 구성해서 한 일이라곤 수립 중인 기본계획을 꼭꼭 숨긴 것뿐”이라며 최근 들어 진행하는 공청회와 토론회는 “국민 의견 수렴 코스프레”라고 주장했다.
탄녹위는 이날 기후∙환경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모니터링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김상협 탄녹위 민간위원장은 “탄소중립계획을 모니터링하는 데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환경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대영 탄녹위 사무차장은 “아동, 청소년, 청년 등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위원 구성을 보강하겠다”며 “구체적인 부분을 발표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선 사회 각 부문이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탄소중립계획은 사회 각 부문의 고통 분담 비중과 경로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획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이 낮으면 정부의 실행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자신을 ‘범시민사회 출신’이라고 밝힌 환경 연구소 나우앤의 최승국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탄녹위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규정한 이해당사자도 포함하지 않은 채 탄녹위원을 선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계획으로 탄소중립을 달성 못 할 것이다. 탄소중립계획을 철회하고 탄녹위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기민도 기자
ke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