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경남 창녕군 길곡면과 함안군 칠북면 경계에 위치한 창녕함안보 일대 낙동강에서 녹조가 발생했다. 강물에 녹색 물감을 푼 듯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어느 날, 당신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물 부족으로 광주∙전남지역의 주요 식수원인 주암댐의 저수율이 예년 대비 50%밖에 안 되는 등 지난해부터 남부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가뭄 총력 대응을 위해 댐과 댐을 연계하고, 농업용수를 생활용수로 대체해서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뭄 등 물 위기에 대응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여론조사원이 묻는다.
“이처럼 가뭄 등 물 부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에 저장된 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경부는 16일 이명박 정부 때 건설된 4대강 보를 활용하는 데 국민 77%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문 문항이 특정 결과를 유도할 수 있도록 편파적으로 설계돼 있어,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보 개방 및 해체’ 정책을 뒤집고 4대강 보를 재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환경부는 이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일반인 1천명, 4대강 보 인근 주민 4천명 등 모두 5천명을 상대로 한 ‘4대강 보를 활용한 기후위기 대응 국민인식 조사’를 했다며 보도자료를 통해 결과를 공개했다.
여론조사 결과, 보 인근 주민의 87%가 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찬성했고, 일반 국민 77%도 이에 찬성했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또한 최근 환경부가 4대강 보의 활용 방안으로 거론한 ‘댐-보-하굿둑 연계 운영’에 대해서도 일반 국민 81%가 찬성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설문지를 보면 여론조사원은 두 질문을 하기 전 선입견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도록 되어 있다. ‘요즈음 가뭄이 심각하다는데, 기왕 있는 보를 활용하면 나쁠 게 뭔가’라는 생각을 주기 십상이다.
이 여론조사는 왜 올바르지 않을까?
제대로 된 여론조사라면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과 ‘4대강 보의 기능과 처리 방안’에 대한 의견을 먼저 물었어야 했다. 4대강 보가 홍수∙가뭄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데다, 지난 정부 때 금강∙영산강의 5개 보를 개방∙해체하기로 한 결정이 아직 공식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는 사전에 거쳐야 할 코스를 건너뛰고 첫 질문부터 가뭄의 시급성을 강조한 뒤 보의 활용 여부를 묻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10일 경기 여주시 여주보를 찾아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말 금강∙영산강 보 처리를 앞두고 일반인과 보 주변 주민 등을 대상으로 환경부가 벌인 여론조사에서는 이런 선입견을 심어주는 설문이 없었다.
당시 조사 결과는 좀 복잡하게 나왔다. 일반인 응답 결과를 보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의견(49.2%)이 찬성 의견(22.3%)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반면, 4대강 보가 ‘필요하다’는 응답(44.3%)은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36.9%)보다 조금 많았다. 그리고 보를 개방하는 데 찬성하는 의견(54.1%)은 반대하는 의견(9.8%)을 크게 앞질렀다. 결과를 해석하면 ‘4대강 사업에 반대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보는 어쩔 수 없으니, 수문을 열어 방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보의 필요성에 대해선 찬반이 팽팽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어 “이러한 환경부의 행태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한반도대운하와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여론을 호도했던 것과 유사하다”며 “환경부가 지켜야 할 대상은 ‘보’가 아니라 ‘강’”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의 이같은 편향된 여론조사는 ‘4대강 보 띄우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지난 3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가뭄 극복을 위해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한 이후,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 4대강 현장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연일 ‘4대강 보 띄우기’를 계속하고 있다. 정작 4대강 보를 활용한
가뭄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뭄이 심한 지역은 4대강 유역이 아니라 먼 내륙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왼쪽)이 에스케이(SK) 하이닉스 이천공장을 방문해 한강에서 공업용수를 취수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환경부 제공
이번 조사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 하나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도 댐, 보, 하굿둑 하천에 설치된 하천시설 운영 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수질∙생태와 수량 둘 다 균형 있게 중시하는 방향으로 ②수질∙생태보다 수량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③수량보다 수질∙생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은 몇 번을 선택했을까?
당연히 ①번이 52.1%로 가장 많았고(우리나라 사람들은 ‘균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수질∙생태가 중요하다’(③)고 답한 이가 32.6%였다. 날로 심해지는 4대강 녹조를 걱정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환경부가 4대강 보를 ‘물그릇’으로 이용하자는 주장과 비슷한 취지인 ‘수량이 중요하다’(②)는 사람은 9.5%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귀담아들을 단 하나의 항목이었다.
이에 대해 박정준 환경부 통합하천관리티에프 과장은 "지난 4월 영산강, 섬진강 중장기 가뭄대책 발표시 4대강 보 활용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며 "국민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직접 물어보고자 한 것으로, 특정 결론을 유도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