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 환경단체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가 5일 제38회 ‘환경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환경정책 역주행’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남종영 기자
1972년 6월5일은 유엔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된 날이다. 유엔은 이날을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했고, 1996년 한국도 법정기념일로 채택해 매년 정부 차원의 기념식을 열고 있다.
하지만, 제38회 환경의 날 기념식이 열린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은 개회 전부터 소란스러웠다. ‘환경부 해체, 환경부 장관 퇴진’ 구호가 식장 주변을 울렸고, 이를 보던 참석자들은 종종걸음으로 기념식장으로 들어갔다.
원래 환경부와 환경단체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거버넌스(협치)를 이루는 사이다. 하지만, 이날 풍경은 4대강 사업이 벌어졌던 이명박 정부 때의 날 선 관계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이번 정부 들어 환경부가 ‘환경 역주행’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하고 원자력발전소 비중을 확대하는 등 탄소중립∙에너지 정책이 뒷걸음질쳤다는 것이다. 둘째는 40년 넘게 정부가 빗장을 잠가두었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허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반려’에서 ‘조건부 동의’로 바뀌는 등 여러 사안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환경부가 기존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이다. 정권 입맛에 따라 정책 일관성이 훼손되면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신뢰도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환경부 해체, 환경부 장관 사퇴’ 구호가 터져 나왔다. 남종영 기자
47개 환경단체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이날 기념식 시작 때까지 한 시간 가까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30여명의 활동가가 참석한 가운데 각 단체 대표는 마이크를 들고 자기 부문에서 벌어진 환경정책 후퇴 사례를 들며 열변을 토했다.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의 배여진 활동가는 “국민연금이 2년 전 탈석탄 투자 선언을 했지만, 오히려 화석연료에 투자를 늘렸다”며 “어디 국민연금뿐이겠나? 환경부가 허가하려고 하는 공항 건설과 국립공원 개발은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출하기 위한 일들”이라고 비판했다.
강은주 ‘생태지평’ 연구실장은 가덕도 신공항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환경부가 국립생태원 등 환경영향평가 검토기관의 직원들을 가덕도신공항추진단에 자문위원으로 추천한 것을 두고 “채점위원들을 답안지 작성 도와주러 파견한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이번 정부 들어 환경영향평가에서 간이평가 제도를 도입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강원도특별법으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평가 권한을 도지사에게 넘겨줬다”며 “환경부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일이 불과 일년 사이에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의 정인철 사무국장은 “얼마 전 (경북) 팔공산을 23번째 국립공원으로 환경부가 지정했지만, 환경단체나 언론 누구도 축하하지 않았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국립공원을 언제까지 환경부에 관리를 맡겨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제 환경부만이 이 문제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부처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인식은 정반대였다. 그는 이날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국제경제 질서가 탄소 무역장벽, 플라스틱 국제협약 등 환경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기후 환경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자화자찬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제38회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환경부는 이날 국민훈장 동백장 등 환경 부문 유공자 9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훈∙포장 명단에선 지역이나 교육 현장에서 환경 관련 활동을 하던 시민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상자는 수소 연료전지 등 관련 기업 대표가 6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환경 학계 인사가 3명으로 나머지를 채웠다. 올해 초 ‘100조원 수출 효과 창출’이라는 환경부로서는 낯선 목표를 제시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의중을 반영한 듯 보였다.
지난 정부 때에는 환경의 날 훈∙포장은 학계가 절반 정도를 받고, 시민사회와 산업계가 나눠 갖는 양상을 보였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환경의 날 훈∙포장 수여자를 <한겨레>가 살펴보니, 수여자 42명 가운데 24명(57%)이 학계 출신이었고, 기업과 환경단체는 각각 9명씩(21.5%)이었다.
이날 환경부는 환경의 날을 맞춰 ‘바이 바이 플라스틱’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내놓은 구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우리가”였다. 하지만, 환경부는 플라스틱컵과 종이컵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6월 전면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준비 미비를 이유로 연기했고, 지금까지 전면시행 일정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