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꿀벌’이 아니다. 이러한 오해가 정책의 혼선을 낳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기후변화 특별기획|꿀벌 실종사건의 진실
① 꿀벌은 사라졌나, 그대로인가? (기사 보기
http://rb.gy/600ib)
② 아인슈타인의 거짓말? 꿀벌에 대한 오해들 (기사 보기
http://rb.gy/j7nxj)
③ 기후변화가 만든 허약한 꿀벌들
※ 기후변화팀의 특집 시리즈 ‘꿀벌 실종사건의 진실’을 보고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이 통찰 가득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사라지는 꿀벌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분의 제보와 기고를 기다립니다.
지구 생명체는 탄생한 이후 대략 40억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최초 생명체가 생긴 이후 무려 33억년이 지나서야 최초의 동물이 생겼고, 그 뒤 2억년이 지나면서 육지에 적응하는 동물이 생긴다. 현생인류가 나타난 시점이 길게 잡아야 30만년이니, 이 시간은 그저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까마득한 5억년이라는 시간 동안 식물과 동물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발달해왔는데, 이렇게 상호작용을 통한 생명체의 발달을 ‘공진화’라고 부른다. 지구 생태계가 짧은(?) 시간 동안 매우 빠르게, 복잡하게 발달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인데, 이러한 공진화를 상징하는 것이 꽃과 곤충의 관계다.
식물은 보다 유리한 번식 방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동성이 좋은 다양한 동물을 이용하기 위해 노력했고, 동물은 식물이 제공하는 먹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식물 종과 동물 종이 동일한 형태로 발달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수많은 다양한 종들이 그들 나름대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독특하게 발전해 온 것이 바로 생물다양성이다.
■ 생태계의 주인공은 꿀벌이 아니다
현재 지구에는 서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면서 식물 번식에 도움을 주는 동물 종이 대략 35만종에 이른다. 이들 종을 일컫는 단어가 영어로 ‘폴리네이터’(pollinator)다. 우리말 단어는 별도로 없어 ‘꽃가루 매개자’라 조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친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영어로도 폴리네이터가 그다지 친숙하지 않아, 대표할 수 있는 곤충군인 ‘벌’(bee)을 주로 사용한다. 아무래도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는 동화 속 주인공인 ‘곰돌이 푸’(Winnie-the-Pooh)를 포함해 여러 동화에서 벌을 친숙하게 그려낸 것이 큰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한다.
결국 서양에서는 공진화를 통해 서로 의존적으로 발달한 식물과 동물을 보호하자는 뜻으로, 꽃가루 매개자 중 가장 친숙한 곤충인 ‘벌류(bees)를 보호하자’는 캠페인으로 발달했다. 벌 종류는 지구에 약 20만종이나 되고, 이 가운데 10%인 약 2만종이 폴리네이터로 분류된다. 벌이 35만종의 모든 꽃가루 매개자를 대변하지는 못하겠지만, 20만종에 달하는 벌을 보호하자는 운동은 지구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림청과 강릉시 등이 2013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일원에 대표적인 밀원수인 아까시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무려 20만종에 이르는 벌 보호 캠페인이 우리나라에서는 ‘꿀벌’로 바뀌게 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가 사라진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이 말도 영어 ‘비’(bees)를 ‘꿀벌’로 번역한 결과다. 얼핏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벌이 꿀벌로 바뀌면 그 의미가 180도 바뀌게 된다. 자연 생태계에 20만여종이나 되는 야생의 다양한 벌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 길러지는 단 한 종의 가축으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꿀 생산을 위해 기르는 종은 아프리카와 유럽 원산의 서양꿀벌(
Apis mellifera) 단 한 종이다. 이 서양꿀벌을 오래전 길들여 가축화한 것이 현재 지구 전역으로 진출한 양봉 산업이다.
결국 전 세계에서 펼치고 있는 자연 생태계 보호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길들여 기르는 가축 단 한 종의 먹이 확보 운동으로 변질했다고 볼 수 있다.
■ 꿀벌은 오히려 늘어났다!
최근 꿀벌의 집단폐사가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해마다 수많은 봉군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원인을 기후변화와 먹이원 부족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프리카를 포함해 북극 일대까지 지구 전역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동일 종의 집단폐사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기에는 개연성이 다소 떨어진다. 산림청을 중심으로 먹이 부족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표 밀원식물인 아까시나무림이 1980년대에 비해 무려 90%가 줄었고 전체 밀원 숲이 70% 정도 줄었다는 이유를 들면서다. 그래서 자연 숲의 나무를 자르고 밀원식물을 심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건강한 벌 군집을 위해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을 ‘자연 숲의 보호’로 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직 꿀벌의 먹이 확보를 위해 자연 숲을 모두 베어내고 외래종 중심의 먹이 숲을 만들자고 하고 있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진행하고 많은 기업이 후원하는 소위 ‘밀원 숲 조성사업’이 그것이다.
우리는 꽃가루를 매개하는 동물이 꿀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파리와 나방 등 각종 곤충과 새와 박쥐도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 클립아트코리아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정말 밀원이 없어졌을까?
1980년부터 밀원식물이 급격히 줄어들 동안 우리나라 양봉꿀벌의 봉군 수는 무려 10배나 증가했고, 현재 우리나라 꿀벌 사육 밀도는 전 세계 압도적인 최고가 되었다. 결국 최근의 꿀벌 집단폐사 현상은 먹이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획일화된 먹이 제공과 농약을 통한 방제는 결국 생태계를 악화하고 자연의 가장 큰 힘인 공진화를 퇴색시킨다. 숲을 베어내고 밀원 확보를 위해 두어 종의, 꿀이 많은 나무만 심는 것은 벌의 보호가 아닌 다양한 벌의 서식처를 파괴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의 유지가 전 세계 지속가능성의 핵심 과제가 된 이 시점에도 가축의 먹이 확보를 위해 생물다양성의 기반인 자연 숲을 파괴하려는 노력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문제는 꽃가루 매개자의 먹이 부족이 아니라, 정작 이들이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만드는 경작지의, 숲의 과도한 농약 사용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