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경기 여주군 대신면 이포보 교각에 올라가 30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이 20일 오전 농성장을 지지 방문을 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 장동빈 수원환경연합 사무국장, 박평수 고양환경연합 집행위원장. 여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4대강 반대 이포보 고공농성 한달
20여일간 물·미숫가루만…시공사 밤마다 ‘조명공격’
휴대전화 문자로 “시민사회 연대 더뎌 조바심 난다”
법원선 “퇴거 불응하면 하루 900만원 물어야” 결정
20여일간 물·미숫가루만…시공사 밤마다 ‘조명공격’
휴대전화 문자로 “시민사회 연대 더뎌 조바심 난다”
법원선 “퇴거 불응하면 하루 900만원 물어야” 결정
정부는 홍수 조절용 필수시설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욕망의 바벨탑’이라 불렀다. 정부는 ‘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그들은 ‘댐’이라 했다. 김춘석 경기 여주군수는 그들을 “에이~,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라고 지칭했지만, 남한강 이포보를 찾은 수많은 시민들은 그들을 ‘수(水)호천사’라고 명명했다.
법원은 이포보에서 당장 내려오라는 결정을 20일 내렸다. 그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의지를 더욱 굳게 다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물과 식량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농성자들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한 것과 다를 게 없다는 표정이었다.
22일이면 환경운동가 세명이 남한강 한가운데에 솟은 20여m의 콘크리트 보 상판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지 꼭 한달이 된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장동민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이들 ‘3인의 활동가’는 지금껏 모진 비바람도 맞았고 타는 목마름도 겪었다.
땡볕으로 달궈진 콘크리트 농성장 바닥의 열기가 식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경찰의 농성 해산 선무방송이 귓전을 때린 지도 20일이 훌쩍 넘었다. 여기에 대형 탐조등(서치라이트) 두 대를 30여m가량 떨어진 이포보의 다른 구조물에 설치해 밤마다 폭염에 지친 농성자들에게 비추는 시공업체의 행태도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4대강 반대 이포보 고공농성 한달]
지난 19일 오전 이포보 농성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인 장승공원에 차려진 환경운동연합의 농성 상황실. 가녀린 여성 한명이 농성장을 향해 놓인 상황실 천막 밖의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물을 모두 증발시킬 기세로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선 그는 고공 농성중인 염형철 사무처장의 아내 정용숙씨였다.
정씨는 안타깝게 발을 구르며 망원경을 들여다봤지만, “그이가 아무 보람도 없이 내려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강단있게 말했다. 일주일에 한두차례씩 이곳을 찾아 남편의 안부를 살핀다는 정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아빠가 원래 하던 일은 강을 지키는 일이 아니냐’고 오히려 엄마를 위로한다”며 애써 웃었다.
참으로 무덥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염 처장과 두 활동가는 지난 17일 상황실로 보낸 ‘바벨탑 편지’에서 “문득 우리가 소외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도 생긴다. 시민사회의 연대가 더디고 야당들이 주춤거리는 듯 보여 조바심이 난다. 이러다가 상황이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농성 한달을 앞둔 심경을 토로했다. 염 처장은 편지에서 “두 딸에게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해줬다”고 적어, 결연한 의지를 거듭 내보였다. 이들은 지난 10일부터 유일한 연락 수단인 무전기 배터리가 제공되지 않아 교신이 끊기자, 수동 전등을 개조한 뒤 휴대전화를 충전해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박창재 농성상황실장은 전했다.
박 실장은 “40여끼 가까이 미숫가루와 물만 먹고 견디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지난 18일 처음으로 햇반과 단무지가 전달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그러나 아직도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정부가 강뿐만 아니라 사람도 죽일 작정인가 보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이번 농성은 패배주의와 무력감에 젖었던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다시 들불처럼 일으키는 소중한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욕망을 꺾고 국민과의 소통이 이뤄질 때 그들의 농성도 끝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포보 농성이 한달째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지지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하루에 적게는 100여명에서 많게는 500여명이 농성 상황실을 오가며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날 오후 멀찌감치 있는 고공 농성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환경운동가는 “국민이 그들을 올려 보냈으니, 이제 국민이 나서 그들을 내려오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민사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20일 이포보 하청업체인 상일토건과 비엔지컨설턴트가 염 처장 등 3명을 상대로 낸 공사장 퇴거 및 공사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당장 퇴거하지 않으면 1인당 하루에 각 300만원씩을 공사업체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박창재 실장은 “즉각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여주/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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