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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왜 습지가 사라지나, 오리나무는 알고 있다

등록 2012-06-22 15:12수정 2012-07-18 13:36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의 천성산 정상부 아래에 있는 밀밭늪 습지. 양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의 천성산 정상부 아래에 있는 밀밭늪 습지. 양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특집/ 천성산 도롱뇽의 진실
습지 상태가 양호하다면
땅은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물침대처럼 물렁해야 한다
오리나무나 억새는 자랄 수 없다
밀밭늪이 육지화되는 것이다


도롱뇽을 한 마리도 못 봤으니
습지가 망가졌다면 왜곡이다
반대로 천성산 습지가
생태천국이 아님도 분명하다

2000년대 중반 천성산 보존운동은 대규모 국책사업 때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켰는지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율 스님에 대한 비난은 불법·편법 논란으로 얼룩진 4대강 사업이 추진되면서 본격화됐다. 과연 그들 말처럼 천성산은 생태계 천국일까? 오리나무는 오리(2㎞)에 한 그루씩 심어 거리를 표시하는 데 쓰였다. 밀밭늪 한가운데 번식한 어린 오리나무들은 지금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걸까.

지난 19일 경남 양산시 천성산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4륜 스포츠실용차(SUV)는 유리창에 입김을 머금은 채 비포장 임도를 헐떡이며 올라갔다. 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김경철 사무국장이 말했다.

“어제 80㎜가 왔대요.”

밀밭늪은 천성산 제2봉 주변 임도에서 약 50m 아래 있었다. 밀밭늪 밑으로는 2010년 10월 개통한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인 천성산 터널(원효터널)이 지나간다.

급한 산사면을 내려가니 오아시스처럼 시야가 트이고 평지가 나타났다. 잠깐 머물던 안개는 바람에 밀려 사라졌다. 해발 700m, 가로세로 100m, 250m 크기의 ‘고산(높은 산) 습지’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습지 중앙에 있는 게 오리나무예요. 원래 가장자리에 살았죠.”

나무는 왜 자라고 계곡은 왜 생겼나

밀밭늪의 아래를 채우고 있는 건 푸른 진퍼리새였다. 진퍼리새 사이로 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랐는데, 그게 오리나무였다. 어른 가슴 정도의 크기, 어려 보였다. 지율 스님이 말했다.

“죄다 4~5년생이에요. 오리나무들이 점차 습지 안으로 들어와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죠.”

작은 오리나무를 대충 세어보니, 스무 그루는 되어 보였다. ‘철철’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늪 한가운데 너비 1m의 물골(계곡)이 생겨 흐르고 있었다. 갈색 억새가 녹슨 창처럼 물골 주변에 드문드문 꽂혔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비가 내리면 물은 물골로 모인다. 습지가 머금어야 할 물이 계곡을 따라 산 아래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물이 빠진 습지는 땅처럼 딱딱해진다. 딱딱해진 땅은 물길이 한쪽에 쏠리는 침식작용을 부추기면서 계곡을 더 키운다. 물골은 고산 습지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저승사자’다.

옛 등산로가 아닌데도 습지 안쪽의 땅은 딱딱해져 있었다. 습지 상태가 양호하다면 땅은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물침대처럼 물렁해야 한다. 오리나무 같은 관목이나 억새는 그런 물컹한 고산 습지 안에서 무성히 자랄 수 없다. 밀밭늪이 육화(육지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능선 너머 대성늪과 무제치늪에서도 비슷했다. 5년 안팎 수령의 오리나무는 대성늪에 흩어져 있었고, 무제치1늪에선 아예 군락을 이뤄 자랐다. 0.5m도 채 안 되는 소나무도 눈에 띄었다. 재미있는 건 높이 1~1.5m의 중키 아니면 2.5m 이상의 아름드리 오리나무만 보인 점이다. 중간 크기의 오리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천성산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게 20여개의 고산 습지를 품고 있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과 화엄늪을 비롯해 대성늪과 밀밭늪이 잘 알려진 습지다. 1999년 발견된 밀밭늪은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습지로 꼽힌다. 수평거리 80m, 수직거리 420m로 천성산 터널과 가장 가깝다.

이런 상황은 과학적 조사로도 확인됐다. <한겨레>는 천성산 밀밭늪의 육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헌호 영남대 교수(산림자원학) 팀이 2004년 7월부터 2008년 5월까지 벌인 조사 결과를 보면, 밀밭늪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지하수위(지표면에서 지하수면까지의 거리)는 2004년 -8.48㎝에서 2008년 -28.59㎝로 3배 이상 낮아졌다. 지하수위가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습지로 유입된 물이 다시 습지 밖으로 빠져나가는 유출률도 대체로 지하수위 하강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2008년의 유출률은 27%로, 2005년 13%의 두 배가 넘었다. 4년 동안 평균 유출률은 19%였다. 즉 강우량 100% 가운데 19%가 증발되거나 계곡을 통해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부쩍 크고 넓어진 밀밭늪의 물골과 관계가 깊다. 보고서는 밀밭늪의 종말을 예고하며 끝을 맺었다. “밀밭늪은 향후 산지 고층 습원으로서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마침내 육화되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습지의 위기, 환경부도 알고 있었다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의 천성산 정상부 아래에 있는 밀밭늪 습지 중앙부에 골이 생기고 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양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의 천성산 정상부 아래에 있는 밀밭늪 습지 중앙부에 골이 생기고 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양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0일 이헌호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말로 습지가 땅처럼 변한다는 의미죠. 글쎄요. 이유가 천성산 터널 때문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판단을 못하겠어요. 어쨌든 습지가 사라지는 건 사실이에요.”

“왜 터널 영향인지 알 수 없는 거죠?”

“지하수의 흐름을 알아야 해요. 이를테면 지하탐사측정을 해야 하죠. 부담스러워 그런지 연구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이 교수는 원래 천성산 터널과 연관성을 규명하려 했으나 한정된 연구비로 벅찼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터널 공사를 벌인 한 건설업체의 용역으로 진행됐다.

천성산 습지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일부 언론의 보도로 ‘천성산에 도롱뇽이 많다→습지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단순논리가 횡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일보>가 2010년 10월17일 “올봄 천성산 웅덩이엔 도롱뇽·알 천지였습니다”를 1면 기사로 전한 이래 천성산 습지에서 발견된 몇 마리의 도롱뇽은 ‘생태계 천국의 증거’로 침소봉대됐다.

그 뒤 천성산 도롱뇽은 국책사업을 비판하는 쪽을 공격하는 논리로 애용됐다. 4대강 사업을 주관하는 국토해양부와 이 사업 홍보에 나선 정부 인사들은 트위터나 언론 기고를 통해 천성산 터널 개통 이후에 도롱뇽이 많이 살듯이 4대강에서도 환경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성산 터널 주변에는 도롱뇽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엄청난 사회적 파장에 비하면 그 결말이 당혹스럽다. 당사자인 도롱뇽은 괜찮다는데 공연히 사람이 들쑤신 형세가 아닌가?”(노대래 당시 조달청장, <중앙일보> 2010년 11월5일)

하지만 환경부는 천성산 습지에 위기가 닥쳤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천성산 습지군의 모니터링 및 복원을 내년도 중점 사업으로 편성했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과 화엄늪에 대해 모니터링을 시작하고 임도를 자연 상태로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밀밭늪과 대성늪은 습지보호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복원 대상에서 빠졌다. 김상배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말했다.

“기후변화로 보고 있어요. 천성산에서만 육화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영남 알프스(경남 동남부의 고산 지대)에서 다 일어나고 있거든요. 재약산 사자평 습지는 심해요. 수종이 교목으로 다 바뀌고 숲이 우거질 정도죠.”

“천성산 터널 영향은 없는 건가요?”

“전혀 없다는 건 아니에요. 설사 영향이 있더라도 지엽적일 뿐이라는 거죠.”

하지만 환경부의 주장은 최근 4~5년생 이하의 오리나무가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김경철 국장은 반박한다.

“보세요. 밀밭늪이 장기적인 자연천이 과정에 있다면 오리나무는 1~2년생부터 10~20년생까지 다양한 수령이 자라야 해요. 그런데 최근 4~5년 수령이 대부분이에요. 대성늪이나 무제치늪도 마찬가지고요. 천성산 터널과 관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죠.”

지하수 흐름 밝히면 육지화 원인 밝혀져

습지 육화의 원인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가 육화를 불러온다. 높은 온도는 습지를 메마르게 하고, 강수 패턴의 변화도 지형 변화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천성산 습지 육화와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과학적 조사 결과를 가지고 있진 않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주변 등산로와 임도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밀밭늪의 경우 지금은 폐쇄된 등산로가 답압(밟기)으로 인해 딱딱해졌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북한산 등산로가 반들반들해진 것과 같은 이치다. 습지 위쪽의 임도에서 밀려 내려오는 토사가 습지를 메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밀밭늪의 경우 임도와 약 50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왔는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이헌호 교수는 “장마철 큰비가 내리면 쓸려내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꼽히는 원인은 천성산 터널로 인한 지하수 유출이다. 당시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는 천성산 터널이 지하수맥을 차단해 습지에 영향을 일으킬 거라고 주장했다.

천성산 터널과 이 공사를 위한 보조터널(사갱) 공사는 2003년 10월 시작됐다. 터널을 뚫으면 지하수가 터널 벽을 타고 흘러 대규모 유출된다. 2006년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환경단체가 꾸린 환경영향공동조사위원회도 1분당 최대 1t의 지하수가 유출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렇게 되면 습지가 머금고 있던 물도 서서히 빠지게 된다. 밀밭늪의 육화가 천성산 터널 때문이라면 지하수맥을 통해 늪의 수분이 천천히 새어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반면 고속철도건설공단은 천성산 습지 하부가 불투수층이기 때문에 지하수위 하강으로 인한 습지 영향은 없을 거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환경영향공동조사위 보고서에서도 이 부분은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다만 가능성만 열어뒀을 뿐이다. 보고서를 보면 “지하시추조사에서 밝혀진 지하구조에 의하면 늪지 퇴적층과 기반암의 수리적 연결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공동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녹색연합의 서재철 자연생태국장의 말이다. “당시 결론은 거기까지였어요. 큰 산의 속을 바늘로 찔러서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어느 전문가가 말하더군요. 시간 제약 등 여러 조건 때문에 지하수 유동을 100% 그려 넣을 순 없었던 거죠.”

이날 답사에서 취재진은 도롱뇽을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무당개구리 두 마리와 올챙이 수십 마리만 목격했을 뿐이다. 도롱뇽이 알을 낳는 봄철과 달리 여름철에는 도롱뇽을 관찰하기 힘든 편이다. 도롱뇽을 한 마리도 보지 못했으니, ‘손가락 셈법’으로 천성산 습지가 망가졌다고 하는 건 왜곡이다. 반대로 천성산 습지가 ‘생태 천국’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천성산 습지는 메말라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사라진다. 도롱뇽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도롱뇽도 습지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정부와 보수신문은 애써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천성산 습지의 복원 계획을 세운 환경부도 무엇이 육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선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양산/글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환경평가 부실 폭로… ‘환경운동 내 갈등’ 한계로
천성산 보존운동이 남긴 것

애초 천성산 터널 반대로 인한 손실액은 2조5000억원이라고 알려졌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대한상공회의소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고, 이는 사실처럼 굳어져 여러 자리에서 인용됐다. 하지만 법원은 지율 스님이 두 신문에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공사로 인한 직접적 손실액은 145억원이라고 결정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정정보도를 이행하지 않을 때 하루 10원을 지급하도록 해 ‘10원 소송’에 패소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공사 중단 기간도 1년이 아니라 6개월인 것으로 인정받았다. 천성산 터널이 포함된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은 2002~2010년 동안 총 사업비 7조2136억원이 투입됐다. 이 수치로만 보면, 총 사업비 대비 손실액 비율은 0.002%다.

지금도 근거가 부실한 주장이 떠돈다. 고속철도(KTX) 민영화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2월 보도자료에서 누적 부채(2010년 말 기준 12조원) 원인으로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을 지목했다. 지율 스님은 이에 대해서도 나홀로 소송을 진행중이다.

지율 스님이 주도한 천성산 보존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은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22일 “지율 스님의 핵심 요구는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라’였다”며 “절차를 무시하고 탈·편법으로 진행돼온 국책사업 관행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서 국장은 “환경평가 부실관행이 폭로됐고 그 뒤에는 그나마 환경영향평가를 세밀하게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고 말했다. ‘천성산 터널 공사 금지 가처분 소송’을 맡았던 이동준 변호사는 “도롱뇽 소송은 패했지만 그 뒤 벌어진 재판에서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면 사업 취소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판례가 확립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환경사적으로 지율 스님의 단식은 우리 사회에 자연이 지니는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도롱뇽 때문에 밥을 끊을 수 있다는 스님의 행동에서, 자연은 인간이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지구를 나눠 쓰는 동등한 존재다. 과거 환경운동이 가졌던 인본주의에서 탈인본주의로 향하는 서막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하는 이들도 있다. 구도완 한국환경사회연구소장은 “도롱뇽으로 표상되는 동물의 권리를 새로운 의제로 던졌다”며 “아직 일반인과 소통하기 어려운 주제였고 주류 환경운동과 갈등을 남기는 등 한계도 남겼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 들어 4대강 사업이 강행되면서 국책사업의 파행은 재연됐고(낙동강 등 소송에서 일부 절차적 하자가 인정됐다) 천성산 보존운동의 성과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서재철 국장은 “환경영향평가가 단 몇 달 만에 끝나는 등 원점 회귀했다”며 “국책사업의 절차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하면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남겨두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앞서 추진되는 강원 원주~강릉 고속철도 사업은 한반도 생태계 보고인 백두대간을 통과한다. 4대강 사업처럼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환경영향평가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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