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빌딩에서 열린 2회 ‘사랑을 입다’ 인조모피 패션쇼장에 모인 사람들이 모피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 모피의 대안, ‘비동물 원단’
▶ 모피가 선망의 대상이라고요?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밍크, 여우, 은색여우, 청색여우, 붉은색여우, 잡색여우, 너구리(라쿤), 어린양(램), 친칠라(작은 토끼), 족제비, 늑대, 표범(레퍼드) 등. 겨울철 인간이 입을 모피를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입니다. 동물을 사랑한다면, 이번 겨울부터는 새 모피를 사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은 어때요? 인조모피 패션쇼에 모인 ‘패션 피플’처럼요!
“이 비디오를 본다면 당신은 절대 모피를 사지 않을 겁니다.”
화면에 나무판자 위로 앞다리와 뒷다리를 쭉 뻗은 하얀 토끼 한마리가 등장했다. 영문을 몰라 하는 토끼 등 위로 한 남자가 걸터 앉았다. 남자는 토끼의 몸에 붙어 있는 흰 털을 빠르게 뽑아냈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는 토끼. 사람 손이 지나간 자리에 토끼의 맨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토끼는 우리 안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영상에서 라쿤(미국너구리) 한마리는 흙바닥 위에 누워 있다. 이미 힘이 없어 보이는 라쿤의 얼굴에 날아오는 건 나무막대기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라쿤의 몸이 바닥에서 튀어올랐다. 검붉은 피가 맺힌 콧잔등 위에서 초점 없는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뒷다리 하나가 사람에게 붙들린 또다른 녀석은 엉덩이 쪽으로 칼날을 받았다.
이번에는 몸집이 작은 어린양이 살구색 배를 보이며 들어올려졌다. 가위를 든 남자의 손이 양의 꼬리와 생식기 주변을 지난다. 모자이크된 영상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양의 엉덩이 부분 털을 채취하는 장면임은 알 수 있었다. ‘뮬레싱’이라는 이름의 이 작업은 전세계 양모 30% 이상을 공급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양모 농가에서 하는 작업이다. 양의 엉덩이는 피부가 주름져 있어 그 피부 사이에 기생충이 알을 까고는 하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취 없이 양의 생살을 잘라내는 것이다.
이 영상들은 국제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페타) 아시아태평양지부 누리집에서 공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중국의 모피생산업체에 잠입취재해 토끼와 라쿤의 영상을 찍었다고 밝혔다. 양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농가에서 촬영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모피는 대부분 수입한다. ‘세계의 공장’이자 ‘동물보호법이 없는 나라’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피량이 절대적으로 많다. 지난해 국내 모피 수입량 1661t 중 1234t의 모피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모피는 토끼나 라쿤 같은 저가의 장식용 털이 많다. 모자나 소매 등에 퍼트리밍(fur-trimming)한 일반 겨울 의류에 많이 쓰인다.
밍크나 여우 등 고급 의류에 많이 이용되는 모피는 미국·캐나다·덴마크·이탈리아 등에서 주로 수입한다. 밍크나 여우털 코트를 주로 취급하는 한국모피제품공업협동조합이 밝힌 국내 모피 시장 규모만 약 3000억원 수준. 토끼나 라쿤 등 저가용 모피까지 합하면 더 크다. 당신이 걸치고 있는 모피의 진실이란, 사실 인터넷 검색 또는 유튜브 영상만으로도 생산 과정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동물보호단체들은 강조한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빌딩에서도 페타의 이 영상이 상영됐다. 겨울이 왔다고 ‘호호’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면서도 멋을 포기할 수 없는 ‘패션피플’들이 많이 모인 패션쇼장이었다. 화려한 조명, 붉은 카펫이 깔린 런웨이와 유명인사들로 채워진 관중석까지 여느 패션쇼장과 같았다. 다만 모피, 가죽, 울(양모), 다운(오리나 거위털) 등 동물성 원단을 이용하지 않은 패션쇼라는 점이 달랐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주최한 비동물성 원단 패션쇼, ‘사랑을 입다’는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열렸다.
영문을 몰라 하는 토끼 등 위로
한 남자가 앉아 털을 뽑아냈다
토끼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생 털만 뽑히다 죽는 동물들은
더 많은 고통에 노출돼 있다”
동물을 학대하지 않기 위해
비동물원단·합성섬유로 만든
‘비건 패션’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패션쇼는 한국에서 송자인 디자이너, 인조가죽 가방 업체인 그리니치 뉴욕, 인조모피 기업 ㈜동림벨텍스가 참여했다. 외국에서는 중국 ‘어웨이크닝’(AWAKENING), 대만의 ‘셀레스티알 클라우드’(Celestial Cloud)와 미국의 디자이너 리앤 마일리 힐가트(31)의 ‘보트 쿠튀르’(Vaute Couture) 등이 참여했다. 보트 쿠튀르의 힐가트는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새로운 비동물성 원단을 개발했다. 그는 올해 2월 뉴욕의 패션위크에 참가해 ‘비건패션’(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원재료를 이용해 만든 패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직접 만든 파란색 미니 드레스를 입은 힐가트가 말했다. “고향인 시카고가 너무 춥다. 양모(울) 말고 보온성 있는 비동물성 원단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개발에만 8개월이나 걸렸다. 모피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은 털을 만들어내다가 결국 생산력이 떨어지면 죽는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고기 생산으로 죽는 동물보다 더 장기적으로 고통에 노출돼 있다.” 그는 플라스틱병에서 기계적으로 원사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원단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웃도어 의류에 쓰이는 소재와 유사하다. ‘비동물성 원단’이란 인조가죽, 인조모피 그리고 양모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단, 즉 동물로부터 얻지 않은 원단과 합성섬유를 말한다. 더 엄밀한 의미의 ‘비건패션’이라고 하면 누에로부터 얻는 실크도 제외한다. 이 중 인조모피 시장은 1980년대 완구 봉제 산업의 확대로 성장했으나 섬유산업과 봉제산업의 해외 진출로 전체적으로 시장 규모가 줄었다. 최근 동물보호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인조모피 의류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일부 의류 회사들은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모피, 또는 모피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인조모피 업계는 환경오염 발생 요인을 줄이고 모피보다 가볍게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한다.
콩으로 만든 고기처럼 인조모피도 동물권을 주제로 할 때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지점이 있다. 동물의 털을 장식으로 활용하는, 즉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인간 중심적 인식 자체는 그대로라는 점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 사정이 워낙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고 육식과 모피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으로 많은 만큼 인조모피를 사 입는 행위마저 동물보호가 아니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쇼가 끝나고 사람들이 패션쇼장을 빠져나왔다. 이날 패션쇼에는 카카오톡 김범수 대표, 가수 최백호씨와 남궁옥분씨, 배우 서갑숙씨, 새누리당 문정임 의원 등이 초대받아 참석했다. 패션쇼장을 나가는 길에 만난 가수 최백호씨가 소감을 말했다. “(모피 산업의 잔혹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이용해 만든 옷은 입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갑니다.” 디자이너들의 여러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걸은 모델 선민화(30)씨는 인조모피 코트를 품평했다. “따뜻한 정도는 비슷해요. 모피만큼 감촉도 좋았고요. (인조가) 진짜보다 가벼운 느낌이던데요? 큰 차이는 못 느꼈어요.”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는 패션피플에게 전했다. “사람들은 모피가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지요. 그러나 동물도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지금 당신의 옷장을 열고, 모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한 남자가 앉아 털을 뽑아냈다
토끼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생 털만 뽑히다 죽는 동물들은
더 많은 고통에 노출돼 있다”
동물을 학대하지 않기 위해
비동물원단·합성섬유로 만든
‘비건 패션’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패션쇼는 한국에서 송자인 디자이너, 인조가죽 가방 업체인 그리니치 뉴욕, 인조모피 기업 ㈜동림벨텍스가 참여했다. 외국에서는 중국 ‘어웨이크닝’(AWAKENING), 대만의 ‘셀레스티알 클라우드’(Celestial Cloud)와 미국의 디자이너 리앤 마일리 힐가트(31)의 ‘보트 쿠튀르’(Vaute Couture) 등이 참여했다. 보트 쿠튀르의 힐가트는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새로운 비동물성 원단을 개발했다. 그는 올해 2월 뉴욕의 패션위크에 참가해 ‘비건패션’(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원재료를 이용해 만든 패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직접 만든 파란색 미니 드레스를 입은 힐가트가 말했다. “고향인 시카고가 너무 춥다. 양모(울) 말고 보온성 있는 비동물성 원단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개발에만 8개월이나 걸렸다. 모피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은 털을 만들어내다가 결국 생산력이 떨어지면 죽는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고기 생산으로 죽는 동물보다 더 장기적으로 고통에 노출돼 있다.” 그는 플라스틱병에서 기계적으로 원사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원단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웃도어 의류에 쓰이는 소재와 유사하다. ‘비동물성 원단’이란 인조가죽, 인조모피 그리고 양모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단, 즉 동물로부터 얻지 않은 원단과 합성섬유를 말한다. 더 엄밀한 의미의 ‘비건패션’이라고 하면 누에로부터 얻는 실크도 제외한다. 이 중 인조모피 시장은 1980년대 완구 봉제 산업의 확대로 성장했으나 섬유산업과 봉제산업의 해외 진출로 전체적으로 시장 규모가 줄었다. 최근 동물보호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인조모피 의류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일부 의류 회사들은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모피, 또는 모피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인조모피 업계는 환경오염 발생 요인을 줄이고 모피보다 가볍게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한다.
중국의 한 모피 농가에서 살아있는 라쿤의 모피를 벗기고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페타)은 위장잠입해 촬영했다고 밝혔다. 페타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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