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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가리왕산, 너무 늦었나

등록 2014-10-31 19:50

2018 평창겨울올림픽 활강(알파인) 경기장을 건설중인 가리왕산 하봉 인근에서 벌목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선/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8 평창겨울올림픽 활강(알파인) 경기장을 건설중인 가리왕산 하봉 인근에서 벌목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정선/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훤칠한 키에 북슬북슬한 은빛 수피가 멋진 왕사스레나무가 땅바닥에 누웠다. 능선의 모진 찬 바람을 이기며 느릿느릿 100년 가까이 자란 신갈나무도 그 옆에 누웠다. 장발을 단속하려고 바리캉으로 민 것처럼, 가리왕산 하봉은 벌목공사로 볼품없는 모습이 됐다. 공사 편의를 이유로 산 정상의 보호가치가 큰 나무부터 잘랐다. 공사 예정지의 나무가 30%쯤 베어졌으니 이제 숲을 보전하자는 얘기는 쑥 들어갈 것인가.

앞으로 벌어질 환경파괴에 견주면 지금까지의 벌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늦은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원상 복원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 전에 공사를 멈추고 대안을 모색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천연림으로 덮인 가파른 산을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내달릴 스키장으로 만들려면 많은 공사가 필요하다. 슬로프를 만들기 위해 운영도로와 작업도로를 낸 뒤 각종 시설물을 짓고 곤돌라와 리프트를 세울 지주를 수십개 박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발파, 흙깎기, 흙쌓기 공사와 땅 다지기가 필수적이다. 인공눈을 만들기 위해 하천에 댐을 만들고 그 물을 스키 슬로프로 끌어올릴 관을 묻는다.

스키장이 완성되면 인공눈이 잘 만들어지도록 화학물질을 물에 첨가하고 만든 눈 표면을 다지기 위해 또 소금기 있는 화학물질을 살포한다. 나무를 모두 베어낸 뒤에도 산의 토양과 하천, 나아가 스키 슬로프 인근의 보호지역 전반에 영향을 끼칠 교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가리왕산에는 금강제비꽃, 땃두릅나무, 만년석송 등 희귀한 북방계 식물이 많다. 한라산과 설악산 등 1700m 이상 고산에 사는 만년석송이 가리왕산에선 1300m 고도에 분포한다. 내륙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번식하는 곳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산에 널리 분포하는 풍혈이라는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밀양 얼음골에서 보듯 풍혈은 여름철 고온 충격을 완화하고 산의 습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빙하기가 끝나 이곳으로 피난해 온 북방계 식물이 살아남은 까닭이다.

토양과 풍혈, 나무들이 얽혀 구축한 가리왕산의 독특한 생태계에서 한곳이 무너지면 그 파급효과는 연쇄적으로 이웃한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에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애초 산림당국이 가리왕산 유전자원 보호구역의 일부를 해제해 주며 내건 조건은 공사 뒤 보호구역으로 환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스키장 조성공사를 마친 뒤 가리왕산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원주지방환경청도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 주면서 “복원보다는 복구 개념이 적절하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미 벌목한 곳은 어떻게 할까.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천연림의 복원과정을 알아보는 장기 생태연구 장소로 쓸 것을 제안한다. 이병천 박사(우이령사람들 회장)는 “아직 토양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리왕산의 풍혈, 전석지, 육산 지점의 식물이 어떻게 복원돼 나가는지 비교 연구하는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토양구조와 지하수, 산의 미세기후까지 뒤흔든 뒤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벌채는 안타깝기는 해도 자연적인 산불처럼 치유할 수 있는 교란이기 때문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에는 1095억원이 든다. 복원에는 다시 1000억원이 필요하지만 복원 효과는 물론 예산 조달방안도 막막한 상태다. 적자 우려가 큰 평창 겨울올림픽의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공사를 멈춰야 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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