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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철새떼가 갑자기 날아올랐다면 그들의 공격이…

등록 2015-03-06 19:25수정 2015-03-08 09:01

충청남도 서산시의 천수만 간척지에는 은폐가 불가능한 지형인데도 삵들이 다수 서식한다.  최현명 제공
충청남도 서산시의 천수만 간척지에는 은폐가 불가능한 지형인데도 삵들이 다수 서식한다. 최현명 제공
[토요판] 생명
최현명의 천수만 삵 추적기
▶ 흔히 살쾡이라고 불리는 동물인 삵을 소개합니다. 본래 살쾡이는 지역 방언이었는데요, 지금은 삵과 함께 표준어로 쓰입니다. 삵은 겉으로 보기에 길고양이와 비슷해요. 하지만 여간해서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예민한 야생동물 입니다. 하지만 눈에 잘 띄는 곳에 실례(똥)를 하며 자신의 영역을 분명히 표시하는 녀석이죠. 그런데 삵이 사람 눈에 자주 띄는 곳이 있답니다. 바로 천수만 간척지입니다.

일생 동안 고양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삵(살쾡이)은 어떨까.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전문 촬영가를 제외하고는 야생의 삵을 본 경우가 극히 드물다. 농촌이나 산촌에 사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삵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천수만 간척지에선 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삵은 고양이와 달리 물에 들어가는 데 거리낌이 없다. 최현명 제공
삵은 고양이와 달리 물에 들어가는 데 거리낌이 없다. 최현명 제공
그곳에서 삵을 관찰한 지 만 1년이 되어간다. “저게 뭐예유~ 고양이 아니유.” 와룡천 하류에서 다리 공사를 하는 인부가 등 뒤에서 하는 말이다. 이 말에 둑을 따라 걷던 삵이 갈대밭으로 숨는다.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들 눈엔 그저 길고양이로 보이기 때문에 삵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드문 기회를 놓친 것을 알지 못한다.

20여년간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며 야생동물을 조사하고 다녔지만, 야생에서 삵을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나무가 우거진 산에서 그저 삵의 똥으로 그곳에 산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런데 1999년 겨울, 가창오리를 보러 천수만 간척지에 왔다가 삵을 보았다. 처음엔 인근 가야산에서 내려와 길 잃고 헤매는 녀석으로 보였다. 당시까진 삵이 산에만 사는 동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 천수만 간척지를 답사할 때마다 삵을 발견했다. 우연이 반복되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이곳에 삵이 붙박이로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천수만 간척지는 지형에 굴곡이 없고, 논과 군데군데 개천과 수로가 있는 곳이다. 시야를 가리는 곳이 없기 때문에 동물이 쉽게 눈에 띈다. 사람의 눈을 피하는 삵이 왜 이곳에 살까. 또 삵은 고양이와 어떻게 다르고, 어떤 행동 특성을 가진 동물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다시 천수만을 찾았다.

올무와 덫이 없고 먹이가 다양한 곳

지난달 24일 밤 10시께 손전등을 들고 길을 나섰다가, 천수만 안의 ‘해미천’이라는 개울가에 앉아 있는 삵을 발견했다. 녀석은 갈수기에 물이 졸졸 흐르는 얕은 여울에 쪼그리고 앉아, 물고기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손전등을 든 사람의 인기척을 느껴도 도망치지 않고, 20분 정도를 꼼짝 않고 앉아 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낮은 포복으로 살그미 걷다가, 물로 뛰어들었다. 앞발로 물고기를 잡아 입으로 물어 순식간에 사냥에 성공하더니, 바로 돌아서서 갈대 속으로 사라졌다.

삵은 대체로 쥐를 주된 사냥감으로 삼는다. 천수만의 삵은 식단이 꽤 다양한 편이다. 논에 4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물이 차 있기 때문이다. 삵은 환경에 잘 적응한다. 수달처럼 제 키를 넘는 수심으로 잠수해 물고기를 잡을 순 없지만, 얕은 물에서 피라미, 잉어, 붕어 등을 낚을 수 있다. 개구리도 삵이 좋아하는 사냥감이다. 특히 5월이 되면 황소개구리가 우는 웅덩이 근처에 삵이 숨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여름엔 삵이 폭 5~10미터 되는 해미천이나 와룡천을 헤엄쳐 건너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길고양이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행동이다. 심지어 지난달 13일 추운 날씨에도 한 삵이 해미천의 얼지 않은 곳으로 헤엄쳐 건넜다. 돌아가면 몸을 적시지 않아도 되지만,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삵은 개천을 건너거나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최현명 제공
삵은 개천을 건너거나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최현명 제공
겨울에 삵의 주된 사냥감은 철새다. 10월 말부터 삵의 똥에서 새의 깃털이 증가하기 시작해 12월에 절정을 이룬다. 이윽고 3월이 시작되면 삵의 똥에서 깃털이 감소하고 쥐의 털이 증가한다. 겨울철새들이 대부분 떠났다는 의미다. 겨울에 천수만에서 갑자기 철새 떼가 날아오르면, 삵의 공격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2월엔 와룡천 옆에서 삵이 기러기 떼를 덮친 것을 본 적이 있다. 삵은 몸길이가 70센티미터가 넘어 제 몸과 비슷한 큰기러기의 목을 물고, 앞발로 몸을 눌렀다. 큰기러기는 세차게 날개를 퍼덕였지만, 이내 축 늘어졌다. 삵은 기러기를 물고 논둑 옆 마른 수로로 향했다. 삵의 뒤를 쫓았다. 마른 풀이 수로를 덮고 있었고,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수로로 내려갔다. 갑자기 눈앞에 삵이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죽은 큰기러기의 깃털도 뽑지 않은 채, 먹잇감을 놔두고 달아난 것이다. 삵은 30미터쯤 물러나 먹잇감과 사람을 번갈아 바라볼 뿐,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삵이 마저 식사를 하는 길은 내가 사라지는 방법뿐이었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삵
서산 천수만 간척지는 예외
그곳에서 1년간 관찰을 했다
여울에서 물고기 사냥하거나
큰기러기 공격하는 광경 목격

호랑이와 표범이 사라진
한반도에 그나마 남아있는
고양이과 동물은 삵인 셈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격상
과거 호랑이 자리에 삵이 있다

천수만이 탁 트인 지형인데도 삵이 많이 서식하는 이유는 먹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드넓은 천수만 내부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밀렵이 거의 없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지난 1년간 천수만에서 삵을 관찰하면서 올무와 덫을 본 적이 없다. 불법 밀렵이 성행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셈이다. 민가가 없으니 삵이 두려워하는 들개도 없고, 먹이를 두고 경쟁자인 길고양이도 없다. 지난 1년간 천수만에서 길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삵과 고양이를 육안으로 구분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귓바퀴 뒤쪽의 하얀 반점이다. 그게 있으면 무조건 삵이고, 그게 없으면 아무리 닮았어도 고양이다. 그 외에 이마 위의 검은 줄무늬가 4개 있고, 털빛이 단조로운 것이 삵의 특징이다.

이처럼 야생 삵의 평지 삶터가 된 천수만에서도 삵은 감소 추세다. 요 1년간 집중 답사하면서 발견 빈도가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다른 정황으로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10년 전에 천수만에 황조롱이와 말똥가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매과인 황조롱이와 독수리과인 말똥가리는 10년 전쯤엔 수백미터당 한두 마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최근엔 1킬로미터를 답사하면 간혹 한 마리를 보곤 한다. 이들의 수가 감소한 것은 주된 먹잇감인 들쥐류가 줄었다는 뜻이다. 들쥐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이제 천수만의 겨울에 가창오리의 집단 비행을 보기가 힘들다. 새들의 종과 개체수도 10년 전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원인은 과도한 농약 살포, 동시다발적인 도로와 교량 공사 탓일 가능성이 높다.

1940년대까지 남한에는 호랑이, 표범, 삵 이상 3종의 고양이과 동물이 살고 있었다. 현재 호랑이와 표범은 남한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스라소니는 남한에서 발견된 적이 없으며, 북한 백두산과 관모봉에 이르는 지역에 극소수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 그나마 남아 있는 고양이과 동물이 삵인 셈이다. 삵은 현재 남한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격상됐다. 과거 호랑이의 위치에 삵이 앉아 있는 꼴이다.

논길에서 하품하고 있는 삵. 최현명 제공
논길에서 하품하고 있는 삵. 최현명 제공
자연환경 상태 보여주는 ‘지표종’

삵은 멸종위기 동물 2급으로 지정돼 있지만, 개체수가 적지 않다. 분포 지역도 우포늪과 같은 저지대 습지에서 지리산 노고단 고지대까지 넓게 서식한다. 서식 조건이 까탈스럽지도 않다. 강추위와 적설량으로 유명한 강원도 고성군 향로봉에도 삵이 산다. 대도시인 서울의 강서습지생태공원과 난지도 노을공원에도 서식한다. 삵이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된 이유는 이를 지정한 1980년대까지 국내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고배율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야생동물 애호가들이 등장하고, 무인 촬영기 등을 동원하기 시작하면서 삵, 하늘다람쥐 등의 멸종위기 2급 동물들의 개체수가 예상보다 많다는 것이 알려졌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삵이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될 정도로 개체수가 적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주지역의 축소와 도로 증설로 인한 로드킬 등으로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서울시와 성남시, 과천시와 의왕시에 걸쳐 있는 청계산에는 삵과 너구리가 산다. 청계산에서 비롯돼 서울에서 한강으로 향하는 개천이 양재천과 탄천이다. 이 개천들에 너구리는 살지만, 삵은 찾아볼 수 없다. 잡식성인 너구리와는 달리 육식성인 삵은 환경적응력이 뛰어나지만, 콘크리트로 정비한 인공 하천에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과거처럼 개천가에 갈대숲이 있고 물웅덩이가 있던 양재천과 탄천에는 삵이 살고 있었다. 삵은 자연환경의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적응력이 뛰어난 육식동물인 삵의 서식 여부는 식물과 곤충을 포함해 그 생태계의 건강성을 상징한다. 이것이 내가 어딜 가나 흔한 동물인 삵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최현명 <야생동물 흔적도감>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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