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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시베리아 진주’는 언제까지 빛날까

등록 2015-03-06 19:53

두께 50㎝의 얼음으로 덮인 바이칼호 위를 시속 100㎞로 달리는 소형 승합차. 이 차는 얼음이 단단하게 어는 1~3월 동안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주요 운송수단이다.
두께 50㎝의 얼음으로 덮인 바이칼호 위를 시속 100㎞로 달리는 소형 승합차. 이 차는 얼음이 단단하게 어는 1~3월 동안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주요 운송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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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판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중량 한계 5t’, ‘최고 속도 시속 10㎞’ 등 교통 표지판도 서 있었다. 기운 채 얼어붙은 낡은 선박이 이곳이 호수였음을 말해 주었다.

한겨레 주주·독자 등 30여명과 함께 2월22일~3월1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를 탐방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호수로 ‘살아있는 진화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 바이칼호는 50㎝가 넘는 두꺼운 얼음 밑에서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스노타이어를 단 사륜구동 승합차로 옮겨 타고 올혼섬으로 향했다. 덩치 큰 현지 주민 운전사는 포구를 벗어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차를 몰아대기 시작했다. “괜찮아, 꼭 잡아.” 표정으로 볼 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바이칼호에 빠지면 안 되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 호수는 가장 깊은 곳이 1642m이고 평균 깊이도 744m나 된다. 황해의 평균수심은 45m다. 바이칼호는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40m 바닥의 수초가 훤히 보인다. 그만큼 영양분이 적기 때문에 이곳 갑각류들은 유기물 분자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호수에 빠져 실종되면 한달 뒤엔 주검 회수를 포기한다.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올혼섬에서 호보이곶으로 향하는 얼음판은 전날과 달랐다. 깨졌다 다시 언 얼음은 울퉁불퉁했고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얼음장 위로 지나기도 했다. 해안 절벽은 북극해를 떠올리게 했다. 바다로 흘러드는 빙하처럼 거대한 얼음덩이가 절벽 가장자리를 둘러쌌고 사람 키를 넘는 고드름이 늘어져 있었다.

겨울 바이칼호의 이런 볼거리는 이 호수의 독특한 자연조건이 빚어낸 것이다. 이 호수는 지구 담수의 20%를 담고 있는 거대한 용량 때문에 겨울이 시작돼 영하 20도의 날씨가 계속돼도 호수는 1월 중순까지 얼지 않는다. 그러나 호수가 완전히 얼어붙기 전 절벽을 때린 파도는 그대로 얼어붙고 폭풍에 조각난 얼음장이 포개지거나 일어서 절경을 빚는다.

호수의 얼음은 5월 중순이 돼야 모두 녹지만 얼음판 고속도로는 3월 하순이면 통행이 중단된다. 바이칼호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비케이투어 박대일 대표는 “호수가 완전히 어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10년쯤 뒤엔 얼음 위 바이칼 관광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는 북극에 가까울수록 심하다.

탐방객은 이 호수 특산어종인 ‘오물’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청어처럼 생겼지만 한때 북극해를 오가다가 호수에 고립해 진화한 연어의 일종이다. 투명하고 몸의 30%가 기름인 물고기 골로먄카, 세계에서 유일한 민물 물범인 바이칼물범 등 이곳 동물 2500여종의 80%는 세계에서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언덕 이쪽은 남성, 저쪽은 여성”,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호수의 무한한 자정능력을 믿는 것은 이곳의 오랜 전통이다. 바이칼호 연안에 대규모 펄프 및 제지 공장을 짓는 것을 두고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반대가 심했지만 당시 공산당서기장 흐루쇼프가 “바이칼도 노동해야 한다”며 강행한 근거도 이것이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그러나 ‘완벽하다’던 호수도 오염과 교란이 계속되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바이칼물범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북해 물범과 비슷한 난분해성 물질로 오염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1996년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규모 댐 건설, 관광 개발, 광산 개발이 호수의 독특한 생태계를 망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올혼섬 민박촌에는 겨울인데도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기념품’ 등 한글로 된 안내문도 눈에 띄었다. 이대로 놔두면 시베리아의 보석은 머지않아 빛을 잃을지도 모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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