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물과 녹지가 어우러진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터. 도심 속에서 마치 녹색 섬처럼 보인다. 2016년 반환을 앞두고 용산기지 터의 장래 활용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오염 치유 없이 반환될 미군기지에 대한 장관 답변이…
오염은 미군이 시키고, 정화는 누가 하든 상관 없다?
오염은 미군이 시키고, 정화는 누가 하든 상관 없다?
[현장에서]
“환경부는 정화가 핵심이다. 누가 정화하느냐는 둘째 문제다. 국방부가 자기들이 정화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오염 치유 비용을) 오염 원인자가 부담하는 게 맞지만, (어쨌든) 토지 소유자·관리자 등 누군가는 정화하도록 돼 있다.”
최근 정부가 주한미군기지 2곳을 미군 쪽의 오염 치유 없이 반환받기로 한 것(<한겨레> 13일치 8면 참조)에 대한 환경부 견해가 뭐냐는 기자 질문에 대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답변이다. 17일 저녁 열린 취임 두 돌 계기 기자간담회에서 윤 장관의 이 발언을 들으며 참여정부 이후 최근까지 미군기지 반환 협상에 나선 전·현직 환경부 직원들의 허탈해할 얼굴이 떠올랐다.
2003년부터 시작된 한-미 간 주한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최대 쟁점은 치유할 오염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였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위원회에서 한국 쪽 대표인 환경부 실무자들은 조기 반환을 바라는 외교부와 국방부의 눈총을 받아가며 국내법상 치유 기준을 관철하려 고군분투해왔다. 하지만 외교부가 주도하는 소파 합동위원회에서 최종 타결되는 협상은 언제나 “인간 건강과 환경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키세)”만 치유하겠다는 주한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 기준치를 수십배 넘는 오염도 미국은 키세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치유하지 않고 넘겼다.
이런 일방적 협상에서도 지금껏 ‘오염자 치유’라는 원칙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았다. 윤 장관은 정치·외교적 고려에 따라 언제나 우리가 치유를 떠안은 현실을 말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협상 주무부처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할 얘기는 아니다. 앞으로 반환받을 27개 주한미군기지에는 서울의 용산기지도 포함돼 있다.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인 셈이다. 장관이 누가 비용을 대든 오염만 치유하면 된다는데, 환경부 실무자들이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 치유 책임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까?
환경부가 힘들더라도 오염자 치유 원칙을 세게 밀고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윤 장관은 “용산기지엔 일본군이 지은 건물을 (지금도) 쓰고 있는 게 많다. 미군 건물을 유럽 같으면 자산으로 인정해 오염 치유와 상계해버린다”며 용산기지 오염 치유를 기지 안 시설과 상계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독일의 미군기지 반환 사례를 염두에 둔 듯한 이 발언은 한-미 소파 규정엔 맞지 않을뿐더러 백보 양보해도 한국 환경부 장관이 할 얘기는 아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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