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와 사용이 간편한 미니 태양광 발전기를 아파트 베란다 등에 설치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김현수 제공
텃밭에서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 있을까. 태양과 물로 식물이 성장하는 모습도 기적 같고, 농산물 소비자가 부분적으로나마 생산자로 거듭나는 것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요즘 도시 농업에 햇빛을 갈무리하는 새로운 장르가 생겼다. 채소, 닭, 꿀벌에 이어 태양광 발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텃밭 농사나 태양광 발전 모두 규모는 작지만 소비자를 생산자로 탈바꿈시키고 이웃과 지구를 위해 참여의 첫걸음을 내딛게 한다.
지난겨울 250W(와트) 용량의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아파트 옥상에 설치한 정아무개씨(서울 종로구 동숭동)는 텃밭의 채소를 둘러보는 도시 농부처럼 매일 전력량 계측기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시간 생산량, 누적 생산량, 아낄 수 있는 전력요금 등을 수치로 보여준다. 정씨는 “생산자가 됐다는 느낌이 신선하고 기분 좋았다”고 말한다.
사실 소형 태양광 발전기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은 일반 가구의 전력 사용량에 견주면 미미하다. 서울시의 가구당 월평균 전력사용량은 316㎾h(킬로와트시)이다. 서울시가 설치비의 절반을 지원해 보급하고 있는 260W급 태양광 발전기를 하루 2시간씩 가동한다고 쳤을 때 한달 동안 얻는 전력량은 15.8㎾h로 평균 사용량의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실질 효과는 그보다 훨씬 크다는 게 ‘햇빛 농사’의 매력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정효정씨는 지난 12월 아파트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생산자가 된 뒤 전기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소중하게 생산하는 전기를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전기밥솥 대신 압력밥솥을 쓰는 등으로 월 35㎾h를 절약했다. 발전기에서 생산한 25㎾h와 합쳐 모두 60㎾h를 절약한 덕분에 전기요금을 2만6000원에서 1만6000원으로 떨어뜨렸다. 송전탑이 왜 서 있는지도 몰랐는데 전기를 생산하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적은 노력이 기후변화를 막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아이들에게도 생생한 교육이 됐다.
서울시민은 전력의 96%를 다른 곳에서 생산한 것을 가져다 쓴다. 대도시 주민들은 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고통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최근 기업형 대단위 태양광 단지 말고도 대도시 주민들의 소형 태양광 발전기 설립이 활기를 띠고 있다. 서울, 인천, 대전, 안양, 안산, 수원, 천안, 완주, 창원 등 지자체에서는 설치비의 50~70%를 지원하기도 한다.
가장 활발한 보급활동을 벌이는 서울시는 공동주택 거주자가 70%가 넘는 상황을 고려해 가전제품처럼 손쉽게 설치하고 이사할 때 옮길 수 있는 발전기를 보급하고 있다. 소형이어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면 바로 작동한다. 260W급 발전기라면 900리터 양문형 냉장고를 가동할 전기가 나온다. 전기요금 절약액은 누진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월평균 7660원으로 3~4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서울시는 설명한다.
핵심부품인 모듈 가격이 1976년보다 99%나 떨어진 데 힘입어 세계적으로 태양광 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은 올해 석달 동안 우리나라 전체 용량의 2.5배인 5기가와트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엑손모빌은 태양광 산업이 2040년까지 무려 20배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가정에서 태양광 발전을 한다는 건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이 생길뿐더러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개혁할 정치적 각성이 퍼져나갈 것이다. 햇볕이 본격적으로 따가워지는 5월, 태양광 발전 생산자가 돼 보시는 건 어떤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