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에서 본 백두대간. 한반도의 산악지역은 ‘고대생물’이 살아남은 세계 5대 피난처 가운데 하나여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초등학교 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을 하늘이 가장 파랗고 4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이라고 배웠다. 산삼을 비롯해 약초의 효능도 세계 제일이란 얘기도 자주 들었다. 이렇게 키운 한반도 자연에 대한 자부심은 난개발과 함께 어느새 스러져 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열린 세계식물원총회에서 만난 외국 식물전문가들과 이야기하다 ‘한반도에 살아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2010년부터 국제 느티나무 보전 사업을 벌이고 있던 이들이었다. 느티나무 종류는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하다가 공룡시대 이후 기후가 차츰 서늘하고 건조해지면서 남쪽으로 피난해 살아남은 ‘고대 나무’다. 현재는 지중해 주변의 시실리, 크레타, 코카서스 등에 극소수가 살아남았고 동아시아에는 제법 많다. 유럽에서 멸종위기인 느티나무를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부럽다는 얘기였다. 보호종도 아니고 일반인의 눈길도 끌지 않는 이 나무가 인류 탄생 이전부터 한반도를 지키고 있다.
느티나무 말고도 진달래, 밤나무, 주엽나무(쥐엄나무) 등이 그런 고대 나무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북부 등 동북아는 고대 나무가 살아남은 세계 5대 피난처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 많고 생물다양성도 풍부하다. 한반도가 금수강산이란 자랑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는 거듭된 빙하기 동안 직접 얼음에 덮이지 않아 춥고 건조한 날씨를 피해 이동해온 많은 생물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의 산악지대가 바로 그런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이다. 대표적인 예가 한라산 정상의 바위에 붙어 자라는 떨기나무인 돌매화나무(암매)이다. 극지 가까운 툰드라지역에서나 볼 수 있고 백두산에도 없는 고위도 식물이 한라산에 산다.
암매처럼 자연사 유산의 가치를 지닌 나무는 이 밖에도 많다. 설악산에는 100여종의 북방계 식물이 산다. 키가 작아 누운 것 같은 눈잣나무는 만주, 사할린, 캄차카 등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데 남한에선 유일하게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 일대에서 자란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 위쪽 사면을 수놓는 노랑만병초도 설악산 정상 부근에서 발견됐다.
지리산, 덕유산 등도 고산식물의 보고다. 그러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산악지역에서도 북방계 희귀식물이 최근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중부지방 석회암 지대가 그곳이다. 기껏 시멘트 원료가 나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이곳 산에서 함경도 고산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도여로와 너도개미자리가 확인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디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 없는 국토를 우리는 어떻게 다루었나. 지난 20년 동안 산림의 2.1%가 사라졌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10년 동안 줄어든 산림면적은 530㎢로, 여의도 183개 면적의 숲이 도로나 각종 개발사업을 위해 베어졌다. 지나친 규제로 산지가 방치됐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육상 보호지역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1%는 물론이고 생물다양성협약이 2020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목표 17%에 턱없이 모자란다.
오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허용 여부를 심의한다. 그 결정에 시민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설악산뿐 아니라 모든 명산과 나아가 국토의 64%인 산지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을 관광자본에 내맡길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발표한 회칙에서 “자연환경은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라고 했다. 환경부는 자연환경 보전의 책무를 위임받은 정부기관이다. 4대강 사업을 방조한 데 이어 국립공원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문을 닫으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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