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폐막을 이틀 앞둔 9일 총회 의장국인 프랑스가 내놓은 합의문 초안 모습. 파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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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기후회의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던 9일(현지시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협상 실패는) 역사에 길이 남을 도덕적 실패”라고 강조해 갈채를 받았다. 기후변화 협상에서 미국의 변신은 놀랍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 1992년 출범한 기후변화협약 체제를 20년 넘게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선 나라가 미국 아니던가. 그런데 지난해부터 미국은 기후변화 전도사가 됐다.
미국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 한가지 답은 케리의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한 말에 들어 있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현실화하고 그 과학적 타당성이 입증된 뒤 세계가 갈 길은 저탄소 경제밖에 없다는 것을 경제계가 먼저 깨닫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4%씩 늘다가 2012년 0.8%, 2013년 1.5%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0.5%로 거의 정체 상태를 보였다. 급기야 로버트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올해 배출량이 최초로 0.6% 감소했다는 추정을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최근호에 발표했다. 중요한 건 이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3% 성장을 계속했다는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지 않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탈동조화’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현실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0.2% 늘었지만 경제는 3.3% 성장했다.
이런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풍력, 태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급성장이다. 지난해 새로 설치한 발전시설 가운데 60%가량이 재생에너지였다. 2004년만 해도 풍력과 태양은 세계 전기의 0.5%를 공급하는 데 그쳤지만 그 비중은 4년마다 곱절로 늘어 지난해 4%가 됐다. 덴마크는 풍력으로 전기의 39.1%를, 이탈리아는 태양으로 7.9%를 생산한다. 햇빛 자원이 좋지 않은 독일도 전기의 7%를 태양광으로 만든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는 통계 수치를 대기도 민망할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지난해 태양광 발전량은 일본의 12분의 1, 풍력은 독일의 48분의 1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파리 회의 기조연설에서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화석연료 의존 경제에서 벗어날 비전은 밝히지 않았다. 세계는 저탄소 경제로 전환에 나섰는데 한국만 특이한 나라로 남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12.3톤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일본 10.1톤이나 독일 9.3톤과 차이가 크고, 오히려 화석연료 생산 대국인 러시아(12.4톤)와 캐나다(15.9톤)에 가깝다.
이회성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은 파리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산업계는 저탄소 경제가 비용이 많이 먹힌다고 믿는다’고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석기 시대에 철기를 보면 얼마나 비싼 시대이겠나. 기후변화 대응은 결코 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다.” 그는 새로운 기후체제에서 석탄은 가장 비싼 발전방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이회성 의장은 국제기구의 수장이 된 대표적인 한국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기후변화 대응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목소리엔 귀를 막고 있는 것 같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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