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인 빙하기 등 지질현상까지 바꾸는 인간의 영향을 고려한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를 설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린란드에서 시추한 얼음 속에는 눈과 함께 보존된 수만년 전 공기가 들어 있어 과거 환경을 알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 고더드 우주비행센터 제공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약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맹위를 떨쳤다. 바다의 수분이 육지 빙하로 쌓이면서 해수면은 지금보다 120m나 낮아졌다. 그 바람에 황해는 육지로 변했고 동해는 내해가 됐다. 이상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등이 경기도 하남시 습지 퇴적층에서 채취한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 당시 한반도 중부 지방에는 현재 백두산 근처에서나 볼 수 있는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 등이 무성했다.
지구는 260만년 전부터 커다란 빙하기에 접어들어 있다. 그러나 늘 추운 것은 아니고 빙하기와 간빙기가 번갈아 온다. 현생 지질시대인 홀로세는 간빙기다. 태양을 도는 지구궤도의 변화로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내리쪼이는 햇볕의 양이 한계 값 이하로 떨어지면 빙하기로 접어든다. 현재 지구는 바로 그런 시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 왜 빙하기는 오지 않을까.
안드레이 가노폴스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원 등이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내린 답은 ‘사람 때문’이다. 수백년 전 지구는 막 빙하기에 접어들 참이었다. 연구자들은 산업혁명 이전인 그때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280ppm이 아니고 240ppm이었어도 빙하기 도래를 막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현재 그 농도는 400ppm을 넘어섰다. 그 결과 인류는 적어도 현재 문명이 계속되는 동안 빙하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빙기는 앞으로 5만년, 온실가스를 많이 내보내면 10만년 동안 오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수만년 단위로 지구에서 벌어지던 지질현상을 바꾸어놓았다. ‘인류세’란 새로운 지질시대를 설정하자는 논의가 나온 이유이다. 우리는 1만1700년 전 시작된 제4기 홀로세에 살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가 세계에 퍼져 농사를 짓고 도시를 이루던 시기였다. 홀로세란 ‘완전한 최근’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제 홀로세보다 더 최근의 지질시대를 만들자고 한다. 보통 수백만년 간격으로 두던 ‘세’를 왜 1만여년 만에 또 두어야 할까.
국제층서위원회(ICS)는 이 문제를 다룰 ‘인류세 소위원회’를 운영해왔는데 올해 말 투표를 위한 보고서를 제출받는다. 이 소위 회원 상당수가 포함된 필진이 8일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인류세는 홀로세와 기능적으로 층서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인류가 남긴 흔적이 바다 밑바닥 퇴적층이나 그린란드 얼음층에 뚜렷하게 남아 있어 이를 조사하면 어느 시점인지를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된 지질시대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대기권 핵실험으로 나온 플루토늄239 원소는 1951년부터 전세계 지층과 얼음층에 나타나고 있고 1963~64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앞으로 10만년 동안 이 시대의 표지가 될 수 있다.
‘테크노 화석’도 인류세를 상징하는 증거가 된다. 콘크리트, 플라스틱, 알루미늄, 유리 등도 지층 속에서 다른 시기에 볼 수 없는 새로운 ‘암석’으로 출토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생산된 콘크리트만 500억t으로 지구표면 1㎡당 1㎏씩 덮는 양이다. 플라스틱은 해마다 3억t씩 생산되는데 그 무게는 인류를 다 합친 무게에 해당한다. 중생대 지층에서 나타나는 공룡의 종류에 따라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처럼, 테크노 화석은 어느 시점의 지층인지 해상도 높게 가르쳐줄 것이다. 조사 주체가 후세 지질학자이든, 아니면 인류 이후의 지적 생물이든.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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