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어금니가 특징인 수컷 고라니가 들판을 달리고 있다. 요즘은 새끼가 태어나고 털갈이를 시작하는 때이다. 안성/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야생동물 이름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시적인 사슴의 하나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한 세계적 보호종이다.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가 분포하며 해마다 사람이 죽이는 수가 15만마리에 이른다.
정답은 고라니다. 이런 설명이 낯설다면 몇 가지 더 들어보자. 한 살이 채 안 된 나이에 독립해 홀로서기하는 꿋꿋한 동물, 물가를 좋아해 영어 이름이 ‘물 사슴’인 동물, 아무나 잡거나 죽여도 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동물,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포유류이지만 자칫하다가는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동물….
최근 김백준 국립생태원 박사 등이 펴낸 <한국 고라니>란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김 박사는 “전세계에서 오로지 중국과 한국의 토착종인데 중국에서는 멸종위기이고 한국에서는 갑자기 늘어났지만 과학적인 연구도 체계적인 관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고라니란 동물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생동물은 대부분 야행성이어서 직접 보기는 매우 힘들다. 연구자라도 발자국과 배설물을 주로 찾아다닌다. 고라니는 예외다. 하천변 습지나 호젓한 등산로에서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산 고라니보다는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죽은(로드킬) 고라니를 보게 될 확률이 더 높다. 고라니가 좋아하는 물가엔 도로가 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고라니가 사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얼마나 죽는지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김 박사는 합법적으로 유해 조수 구제 허가를 받아 연간 6만~10만마리가 사냥을 당하고, 로드킬로 적어도 연간 6만여마리가 죽는 것으로 추정했다. 밀렵을 빼고도 해마다 인위적으로 죽는 고라니만 줄잡아 10만~15만마리에 이르는 것이다.
자연적인 요인도 있다. 고라니 새끼는 삵, 담비, 너구리, 유기견, 수리부엉이 등의 먹이가 된다. 어린 고라니는 우기에 저체온증으로 잘 죽어 1년을 넘기는 개체는 4마리에 1마리꼴이다. 봄에 태어난 암컷이 겨울에 첫배 새끼를 낳는 번식력이 있다지만 이렇게 많이 죽으면서 무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고라니는 왜 이렇게 늘어났을까. 고라니 서식 밀도는 1982년 ㎢당 1.8마리에서 2011년 7.3마리로 지난 30년 사이 4배로 증가했다. 고라니는 현재 전국에 강변부터 도시 주변과 고산지대에까지 두루 산다. 그러나 과거에는 남서부 저지대에만 분포했다.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같은 포식자와 대륙사슴 같은 경쟁자가 사라진 공간에서 고라니가 폭발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지금 상태는 생태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다. 김 박사는 “개체수는 많지만 죽는 수도 많고 늘어나는 추세”라며 “고라니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도도새처럼 아무리 많아도 없어지는 건 한순간인 것이다.
5월은 고라니가 새끼를 낳기 시작하는 철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야생동물 구조센터의 직원들도 바빠진다. 이들이 구조하는 포유동물의 70% 이상이 고라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요즘 교통사고를 당하는 암컷 고라니의 뱃속에는 대부분 출산이 임박한 새끼들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고라니는 한국의 자연을 대표할 만한, 생태관광의 주역이 될 야생동물이다. 야외에서 고라니를 만나자. 살아있는 상태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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