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12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21차 당사국 총회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맨 오른쪽)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셋째) 등이 새 기후체제 합의문인 ‘파리협정’을 채택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통적인 견해는 ‘지나친 세계화의 종말 내지 약화’인 듯하다. 브렉시트가 자유무역, 이민·난민 문제, 사회 양극화 등 세계화가 과속으로 치달은 데 따른 반작용에서 빚어진 사건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럼, 세계화가 다 나쁜가. 기후변화만큼 세계화의 덕을 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6월24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탈퇴 투표는 환경에 빨간불”이란 기사를 실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지난 28일 “탈퇴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기후변화에 관한 협력만큼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우리나라(2013년 7위)보다도 적은 영국(12위)의 유럽연합 탈퇴가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에 무슨 영향을 끼친다는 말일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인 유럽연합은 기후협상에서도 최상위 협상자 지위를 누려왔다. 그런데 영국은 유럽연합 안에서도 ‘기후 리더’이다. 상대적으로 느리고 약한 대응을 주장하는 폴란드 등에 맞서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내왔다. 유럽연합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줄인다는 공약을 했지만, 영국은 50% 감축을 주장하고, 나아가 자국에서는 2050년까지 80% 감축을 법에 명문화했다. 기후변화는 주요 국가정책이다. 주한영국대사관에 기후변화 담당자가 경제 분야처럼 3명이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영국이 빠지면 유럽연합의 동력이 떨어지고, 모처럼 전기를 맞은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 탈퇴를 주도한 영국 정치인 상당수는 기후변화 회의론자다. 나이절 패라지 독립당 당수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기후변화가 인위적으로 일어났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는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파리협정 폐기를 공언하고 있다. 혼란과 불확실성이 더 커지기 전에 파리협정을 발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지난 연말 체결된 파리 기후변화협정이 발효하려면 55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비준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총량이 전체의 55%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선진국 가운데는 프랑스가 지난달 15일 처음 비준했다. 갈 길은 먼데, 브렉시트는 순탄하던 새 기후체제로 향한 길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브렉시트의 주요 계기 중 하나가 지난 2년 동안 벌어진 대규모 시리아 난민 유입 사태다. 그 난민 사태를 부른 것은 기후변화였다. 콜린 켈리 미국 캘리포니아대 기후학자 등은 지난해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지구온난화가 일으킨 2006~2010년 사이 최악의 가뭄이 농업 붕괴와 대량 이주를 낳았고, 이것이 내전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가 브렉시트를 부르고, 이것이 다시 기후변화 대응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셈이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브렉시트가 자신의 미래를 도둑질해 갔다고 분노한다. 잃어버린 목록에는 기후변화 대응도 들어 있다. 화석연료를 태워 번영을 이룩한 기성세대가 이제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
브렉시트 여파로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시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기후대응이 약화한다면 기후재앙은 점점 피하기 힘들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우리나라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업경쟁력이 떨어진다며 기후변화 대응에는 소극적이고 당장 단가가 싼 석탄화력에 매달린다면 우리 젊은이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것이다.
조흥섭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