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채식하면 지구도 건강해진다

등록 2016-12-26 11:26수정 2016-12-26 11:26

15억 마리 소 배출 온실가스, 자동차와 맞먹어
심장질환 뇌졸중 암 등 질환 사망률 10% 줄어
전 세계인이 채식으로 전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pixabay.com
전 세계인이 채식으로 전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pixabay.com

피아트 자동차의 본산인 이탈리아 북서부의 공업도시 토리노는 슬로푸드 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패스트푸드를 거부하는 슬로푸드 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건 전통적인 음식 문화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이 그만큼 크다는 걸 뜻한다. 매년 가을 이곳에서는 슬로푸드 박람회가 열린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고기를 즐겨 먹는 식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송아지 고기와 참치를 함께 먹는 ‘비텔로 토나토’(Vitello tonnato) 요리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전통 송아지 요리 ‘비텔리 토나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탈리아 토리노의 전통 송아지 요리 ‘비텔리 토나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지난 7월 새로 취임한 시장이 색다른 시정목표를 내세웠다. 31살의 젊은 여성인 키아라 아펜디노 시장은 시정의 최우선 순위로 ‘채식주의 도시’를 선정했다. 세계 유수 도시 중에서 채식을 시정 목표로 내세운 것은 토리노가 처음일 것으로 짐작된다.

‘송아지 요리’의 도시, ‘채식주의 도시‘ 선언

그가 전통 음식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채식도시를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서다. 그는 육식은 지구와 인간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동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호소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강제적 조처보다는 학교 등에서 육식의 단점과 채식의 장점을 홍보하는 교육을 집중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토리노 사례에서 보듯 요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원래 채식주의 운동은 동물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한테서 비롯됐다. 그러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반을 넓힌 데 이어, 최근 기후변화 우려가 높아지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상황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축산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를 웃돈다. pixabay.com
축산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를 웃돈다. pixabay.com

소 키우는 땅, 곡물 생산 때보다 160배 더 필요

식량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3분의 1~4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약 80%가 축산에서 나온다. 축산은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영양소인 단백질을 공급해주지만, 대신 지구 환경을 더럽히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 변화를 유발하고, 숲을 파괴하며, 식량과 물 부족을 부르고, 수질을 악화시킨다. 소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같은 칼로리의 곡물을 생산할 때보다 160배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축산 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촌에는 모두 35억마리의 반추동물이 있다. 이 가운데 15억마리가 소다. 이들이 방귀나 트림을 통해 배출하는 메탄 가스는 연간 1억톤에 이른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가스 효과가 23배 높은 물질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다. 소를 기르는 데는 돼지나 닭보다 28배나 많은 땅이 필요하다. 물은 11배 더 많이 든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5배나 더 많다. 소들이 내뿜는 메탄가스의 온실효과는 전세계 차량들이 내뿜는 배출가스의 온실효과보다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식단을 바꿨을 경우의 2050년 온실가스 감축 효과. REF는 현재의 식단, HGD는 세계보건기구 권장식단, VGT는 채식 식단, VGN는 완전채식(비건) 식단을 가리킨다. pnas.org
식단을 바꿨을 경우의 2050년 온실가스 감축 효과. REF는 현재의 식단, HGD는 세계보건기구 권장식단, VGT는 채식 식단, VGN는 완전채식(비건) 식단을 가리킨다. pnas.org

세가지 식단 시나리오별로 본 환경 영향

만약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고기 섭취를 포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것도 연구한다. 미래 전문연구기관인 영국 옥스퍼드대 옥스퍼드마틴스쿨의 ‘식량의 미래’ 프로그램 연구진은 3가지 식단 시나리오별로 2050년까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환경 및 건강 효과를 살펴봤다. 첫째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식단(HGD)을 따르는 경우, 둘째는 채식(VGT)을 하는 경우, 셋째는 완전채식(VGN, 비건)을 하는 경우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안한 권장 식단은 하루 최소 다섯 접시(400g)의 과일과 채소, 50g 이하의 설탕, 43g 이하의 붉은 고기로 구성돼 있다. 총열량 2200~2300칼로리다. 채식주의 식단과 비건 식단에서는 붉은 고기나 가금류, 생선 대신 콩이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한다. 과일·채소도 각각 여섯 접시, 일곱 접시로 더 많다. 비건 식단에선 유제품과 달걀도 금지된다.

온실가스 60% 이상 줄고, 생물 다양성 살아나

연구진이 컴퓨터 모델을 이용해 추정한 결과, 2050년까지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는 경우 식품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60% 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붉은 고기 소비가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완전 채식(비건)으로 전환한다면 70%가 감소한다.

 가축을 기르는 땅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효과도 크다. 현재 축산에 쓰이는 땅은 전세계 농지 50억헥타르의 68%에 이른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 세계인이 채식을 한다면 목장의 80%를 초원과 숲으로 회복할 수 있다. 지구의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그만큼 커진다. 이는 생물 다양성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가축 때문에 쫓겨난 들소, 늑대 같은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권장식단을 채택할 경우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 pnas.org
세계보건기구 권장식단을 채택할 경우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 pnas.org

채식으로 전환했을 경우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 짙은 녹색일수록 효과가 큰 지역이다. pnas.org
채식으로 전환했을 경우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 짙은 녹색일수록 효과가 큰 지역이다. pnas.org

 나머지 20%의 목장은 농작물 경작지로 쓰면 된다. 언뜻 보면 경작지 증가 규모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현재 곡물 재배지의 3분의 1이 가축 사료 생산에 쓰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론 엄청난 양이다. 사료 재배지를 식량 재배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추산이다. 실제론 다양한 걸림돌들이 있다. 우선 목장의 3분의 1 가량은 건조 또는 반건조 지역에 있다. 이 땅은 동물을 기르는 데나 쓸 수 있다. 과거 사하라사막 남쪽의 광활한 사바나지역을 목초지에서 경작지로 바꾸려했을 때 사막화와 생산성 손실이 뒤이어 일어났다고 한다.

 가축이 없으면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지역도 있다. 유목민 지역이 그런 사례다. 유목민들은 가축이 없으면 한 곳에 정착해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유목민이 아니더라도 고기는 그 지역 역사와 전통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혼식이나 기념일에 가축이나 고기를 주고받는 풍습을 무턱대고 팽개쳐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 지디피의 2~3%에 해당하는 비용 절약

채식의 건강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세계가 채식으로 전환하면 2050년까지 세계 사망률을 10%까지 줄일 수 있다. 관상 심장질환(CHD), 당뇨병, 뇌졸중, 몇몇 암 질환 발병이 줄어 사망률이 최대 10%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망자 수로는 800만명이다. 감소 폭의 절반은 붉은 고기 퇴출에서 비롯된다. 나머지는 섭취칼로리의 감소, 과일 채소 섭취량 증가에 따른 것이다. 식품에 기인한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이는 의료비 지출 감소로 이어져, 연간 세계 지디피의 2~3%에 해당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연구진은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이점들을 실제로 누리려면, 고기를 영양이 풍부한 적절한 음식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성 식품에는 식물성 식품보다 영양소가 다양하다. 고기를 먹지 못하면 미량영양소(micronutrients)들을 섭취할 데가 마땅찮다. 따라서 육식의 중단은 자칫 영양 결핍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현재 지구촌에는 20억이 넘는 인구가 영양 결핍 상태에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서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pixabay.com
온실가스 감축에서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pixabay.com

양자택일이 아니라, 섭취량 줄이는 게 핵심

이번 연구가 전세계적 채식 전환을 주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고기 섭취와 환경,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권장식단을 따르기만 해도 식품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9% 줄어들고 연간 510만명이 죽음에서 벗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물론 식단 변화 말고도 식품 생산과 유통 시스템의 변화도 필요하다. 고기엔 더 높은 가격을 매기고 과일과 채소는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식품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실되거나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는 것처럼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현재 인류가 생산하는 작물은 하루 6천칼로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간에서 유실되는 양이 무려 1400칼로리에 이른다고 한다.

  개개인들이 과식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실천 수단이다. 해법은 간명하다. 어떤 식으로든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채식이냐, 육식이냐는 식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오늘 저녁 먹을 고기 덩어리를 어제보다 더 작은 것으로 사는 정도의 변화면 충분하다.

세계 각국의 1인당 연간 고기 소비량. 세계 평균치는 34㎏이지만 한국과 중국인의 소비량은 이보다 훨씬 50㎏에 이른다. OECD(2015)OECD(2015)
세계 각국의 1인당 연간 고기 소비량. 세계 평균치는 34㎏이지만 한국과 중국인의 소비량은 이보다 훨씬 50㎏에 이른다. OECD(2015)OECD(2015)

세계 평균 고기 소비량 34㎏…한국·중국은 50㎏ 안팎

하지만 식습관에 변화를 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세계보건기구의 권장 식단으로 바꾸는 데만도 인류 전체적으로 과일과 채소 소비는 25% 더 늘려야 하고, 붉은 고기 소비는 56%나 줄여야 한다. 섭취 칼로리도 15% 줄여야 한다.

  지금 인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전세계의 일일 평균 영양섭취량은 지난 50년 사이에 2194칼로리에서 2870칼로리로 30% 늘었다. 한국영양학회(2010)가 권하는 한국인 성인 남성(30~49세)의 하루 평균 필요섭취량 2400칼로리를 크게 웃돈다. 장기간 고도 성장을 경험한 한국과 중국의 1인당 하루 섭취량은 3000칼로리를 넘는다.

 특히 고기 소비(칼로리 기준)는 거의 두배나 늘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무려 20배나 늘었다. ‘OECD-FAO 농업전망 2014’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인의 1인당 연간 고기 소비량은 현재 34㎏(75파운드)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이보다 훨씬 높은 51.4㎏(113.3파운드), 49.8㎏(109.8파운드)나 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국민들에게 고기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권고했다. 하루 섭취량 기준을 40~75g으로 정했다. 중국의 소고기 소비량은 전세계 소비량의 28%에 이른다. 돼지고기는 절반에 이른다.

 지난 5월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는 고기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경험하는 꿈을 꾼 이후 폭력을 거부하는 수단으로 육식을 거부했다.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의 주인공들은 고기의 폭력에서 언제쯤 어느 정도나 벗어날 수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http://plug.hani.co.kr/futures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