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생물들이 점점 빠르게 멸종해가고 있다. 지구촌 생물들의 상태를 평가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을 보면 ‘멸종’됐거나 ‘야생에서 멸종’한 생물종이 지난 3년 사이 16%나 늘었다. 학살에 가까운 멸종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한편에선 이를 더욱 부채질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 중부의 올페제타 보호지역에는 무장 경비원의 24시간 특별 경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코뿔소 세 마리가 있다. 육상동물 가운데 코끼리 다음으로 큰 몸집을 지닌 흰코뿔소의 두 아종 가운데 하나인 북부흰코뿔소들이다. 무장 경호는 이들을 밀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조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Red List)을 보면 1960년까지 야생에 2000마리 이상 남아있던 북부흰코뿔소는 코뿔을 노린 밀렵꾼들의 목표가 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해, 2006년 4마리가 관찰된 이후로는 발견되지 않아 야생에서는 거의 멸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페제타 보호지역에 있는 ‘수단’이라는 이름의 올해 44살 된 수컷, 올해 28살 된 암컷인 ‘나진’과 17살인 ‘파투’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북부흰코뿔소다. 체코의 한 동물원에 있던 이들은 사바나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살아가던 북부흰코뿔소들이 모두 사라진 뒤 2009년 케냐로 왔다. 종을 잇기 위해 좀더 번식 여건이 좋은 곳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번식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수단은 너무 늙어 암컷의 등에 올라 교미를 하기 어려운데다 정자 수도 너무 적어 암컷을 임신시키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체외수정과 같은 인공증식의 도움 없이는 북부흰코뿔소라는 생물종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멕시코의 캘리포니아만 북쪽 깊이 들어간 바다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1996년 이후 계속 ‘위급한 멸종위험’(CR) 상태에 있다고 분류한 바키타돌고래의 유일한 서식지다. 세계 해양생물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바키타복원위원회(CIRVA)는 지난달 공식 발표한 보고서에서 바키타 개체수가 2015년 이후 절반 가까이 줄어 30마리 안팎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민들이 친 불법 자망에 걸려 희생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결국 2~3년 뒤를 기약하기 힘든 절멸의 낭떠러지에 다다랐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만 북부에서 자망그물의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강력한 보호 조처 없이는 내년 안에 바키타가 절멸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본다.
찰나의 순간에 사라진 동물들
이 두 생물종의 사례는 안타깝지만 특별하지 않다. 이들에 앞서 수많은 생물종이 이렇게 사라졌고, 지금도 수많은 생물종이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야생생물종의 멸종위험 정도를 과학적으로 평가한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적색목록’을 보면 지구에 사는 생물종들을 덮쳐오는 멸종의 큰 그림을 엿볼 수 있다. 적색목록은 어떤 보고서보다도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 아래 작성되고 있어 신뢰할 만하다.
포유류·조류·어류·파충류·양서류·절지동물·식물 등 7만1576종을 평가한 2014년 6월 적색목록을 보면, 멸종위험에 ‘취약’(VU) 상태인 생물종이 1만549종(14.7%), ‘멸종위험’(EN) 단계가 6451종(9%), ‘위급한 멸종위험’에 놓여 있는 생물종이 4286종(6%)이었다. 세 단계를 모두 합한 멸종위기종은 2만1286종, 비율은 29.7%이었다. 이미 ‘멸종’됐거나 ‘야생에서 멸종’ 상태로 판정된 종은 1.1%인 800종으로 집계됐다.
반면 현재 시점까지 업데이트된 적색목록을 보면, 적절한 조사 자료가 있는 생물종 7만1891종 가운데 멸종위험에 ‘취약’ 상태인 생물종은 1만1316종(15.7%), 실제 ‘멸종위험’ 상태인 생물종은 7781종(10.8%), ‘위급한 멸종위험’에 놓여 있는 생물종은 5210종(7.2%)이다. 이들 3개 범주를 모두 포함한 멸종위기종은 2만4307종, 33.8%에 이른다. 이미 ‘멸종’됐거나 ‘야생에서 멸종’ 상태로 판정된 종은 1.3%인 928종이다. 지구의 시계로 보면 ‘찰나’일 만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3021종이 새로 멸종위기 단계로 떨어졌고, 이미 완전히 멸종됐거나 야생에서 멸종된 것으로 확인된 종은 무려 16%, 128종이나 늘었다.
지구 생물종 가운데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인간의 친척들도 멸종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등 세계 12개 나라 전문가 31명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지난 1월 학술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현재까지 알려진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의 영장류 504종 가운데 75%의 개체군이 감소하고 있고, 60%가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과 세계 생물학자들의 기존 연구조사 결과를 취합해 검토 분석해보니, 영장류가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현재 추세대로 영장류 멸종이 이어진다면 50년 안에 영장류 종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영장류를 멸종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규모 농장과 방목지 확대, 벌목, 자원 채굴, 도로 건설 등으로 서식지가 줄어들거나 파편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드러났다. 그밖에 사냥과 기후변화, 인간에게서 기원한 질병 등도 점점 더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숲의 생물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점 때문에 인간의 질병 연구와 대응에 특히 활용도가 높은 생물이다. 따라서 이들의 멸종은 다른 어느 생물종 멸종보다 더 인간에게 직접적 손실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원인이 중첩돼 일어나는 생물종 멸종의 맨 밑바탕에는 지구 생태계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 번성하고 있는 인간이 있다. 상아나 뿔, 가죽을 지닌 포유류나 파충류 등에게는 서식환경 훼손과 함께 밀렵이 일차적 위협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까지 축적된 연구 결과들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환경오염과 미처 적응할 틈을 주지 않고 급속히 진행되는 지구 온난화,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대부분의 생물종에 더 위협적이라고 말해준다.
“현재 추세론 6종 중 1종 위기”
미국 코네티컷대 생태·진화생물학과 마크 어번 교수가 기후변화와 멸종위험을 주제로 주요 저널에 발표된 130개 이상의 다양한 기존 연구 논문들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현재 속도로 온난화 추세가 이어지면 지구 생물종 6종 가운데 1종이 멸종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어번 교수는 “지금 우리가 깨닫지도 못했던 간접적 생물학적 위험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나 놀라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의해 초래되는 멸종의 규모가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지구촌을 이끌어가는 각 나라의 정책 담당자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를 제일 많이 배출해 온난화에 가장 책임이 큰 미국에서는 오히려 앞선 정부와 국제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허물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27일부터 1일까지 교황청과학아카데미와 교황청사회과학아카데미가 생물 멸종을 주제로 공동 주관한 콘퍼런스에 초대받았던 관련 학계의 지도급 학자 26명은 폐막 선언을 통해 지구촌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려 했다. 이들은 “최근 생물종 멸종이 과거보다 대략 1000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종의 4분의 1이 현재 이미 멸종위험에 놓여 있으며, 그들 가운데 절반이 이번 세기 말까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인류와 국제사회에 대응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의 경고 또한 어디로부터도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