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 전 환경부 장관(맨 앞줄 가운데 선글라스 쓴 사람)이 국립공원 50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속리산국립공원에서 열린 ‘명사와 함께하는 힐링로드 걷기 행사’에 참석해, 휴일을 맞아 속리산을 찾은 탐방객과 함께 세조길을 걷고 있다. 환경부 제공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광활한 대지에 곧게 뻗은 길을 4시간 정도 차로 달렸다. 넓디넓은 하늘과 구름의 여유로움에 지루해진다 싶더니, 오래 기다렸다는 듯 자연은 매혹적인 자태로 눈길을 끈다. 말로만 듣던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이 거기에 있었다. 내 키보다 몇천배, 몇만배 깊은 골짜기와 망망한 계곡에 입이 쩍쩍 벌어졌다.
지리산의 노고단, 설악산의 공룡능선…. 우리나라 국립공원 역시 아름다움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랜드캐니언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시사철 변하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때마다 국립공원으로 발걸음을 향했고, 국립공원은 이제 나의 삶을 힘찬 움직임으로 일렁거리게 하는 벗이 되었다.
국립공원은 어린 시절 뛰놀았던 뒷동산과 개울을 떠올리게 한다. 공부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뛰어노는 것에만 모든 관심을 쏟았던 철없던 시절. 글 한 자를 더 배우기보다 흙을 밟고 풀냄새를 맡으며 자연 속에 나를 내맡기던 그때로 잠시 돌아간다. 국립공원은 나에게 어렸을 적의 추억과 감정들을 쏟아내게 하며, 어린아이의 ‘나’는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국립공원은 때마다 내 인생에 위로와 희망을 건네주는 장소였다. 사회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설 때 국립공원에 찾아가면 항상 나를 즐거이 반겨주는 자연이 그렇게도 좋았다. 푸르른 숲과 계곡은 나를 어머니의 너른 품처럼 따사로이 안아주었고, 나에게 괜찮다고 말을 걸어왔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나에게 국립공원은 희망을 주는 이름, 그 자체였다.
요즘에는 국립공원에 갈 때마다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만 같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어김없이 찾아가게 된다. ‘예전에는 이랬는데...’, ‘그때는 그랬는데...’ 국립공원 속에서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국립공원은 언제나 나의 옆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난달 29일에 국립공원 제도 도입 50주년을 맞이하여 속리산 국립공원에서 열린 걷기 행사에 참여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세조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다시 만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미소가 겹친 국립공원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빛나 보였다.
나에게는 세상의 일부였던 국립공원이 우리 미래 세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책상 앞에서, 스마트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좁디좁은 세상이 그들의 전부는 아닐지 걱정된다. 우리 아이들이 국립공원을 벗 삼아 자연으로, 밖으로 나가 자신의 세상을 넓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립공원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따뜻한 가슴과 자연의 지혜를 갖춘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나의 인생이 국립공원으로 인해 시시때때로 적당한 위로와 용기를 얻었듯,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삶 속에서 국립공원이 갖는 소중한 의미를 찾길 바란다.
글 손숙 전 환경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