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나무 가꾸기는 사후 관리가 핵심이다. 울란바타르에서 남쪽으로 270km 떨어진 만달고비시 외곽에 조성된 ‘고양의 숲’에서 지난달 18일 햇볕 가리개 마스크를 쓴 주민이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물 양동이를 두 손에 들고 가고 있다. 비가 일년에 겨우 100mm 정도 내리는 이 곳에서는 2.7일에 한번꼴로 나무에 물을 줘야 한다.
▶몽골의 광대한 사막은 겨울과 봄철 황사의 주요 발원지일 뿐 아니라 여름철 폭염의 진원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사막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드넓은 초원지대도 사막화되고 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이 환경 재앙을 막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몽골 사막화를 막기 위한 나무심기가 대표적이다. 몽골 정부도 나무에 희망을 걸고 있다. 국제 환경 엔지오(NGO)가 10년째 땀흘리고 있는 숲 만들기 현장을 둘러봤다.
“첫 해인 2009년 초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장난인 줄 알았다. 척박하고 황량한 땅에 나무를 심겠다고 해서 사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난달 18일 몽골 만달고비시 외곽에 있는 ‘고양의 숲’을 둘러보면서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푸른아시아(이사장 손봉호)의 한승재 국제사업부 팀장은 9년 전 첫 삽을 뜰 때를 회상했다.
“이른 봄이어서인지 조림이 예정된 땅 주변에는 풀이 거의 없었고, 모래바람만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인근 주택 담장에는 거의 어른 가슴까지 모래가 쌓였고, 주민들은 모래 퍼내기에 바빴다. 이런 곳에 심는 나무가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한 팀장은 과실수를 전공한 농학박사 출신으로 2009년에 푸른아시아에 전문위원으로 영입됐다. 나무 전문가의 고개도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만달고비의 나무는 어떻게 됐을까. 내년 사업 종료를 앞두고 있는 ‘고양의 숲’을 비롯한 몽골 녹화사업의 성과를 알아보려고 추석 연휴 직전(9월17일~22일) 현장을 찾았다. ‘고양의 숲’은 만달고비 시가지 북쪽에 있다. 1조림지를 시작으로 서쪽으로 가면서 9조림지까지 마치 굵고 긴 띠(약 4㎞)처럼 생겼다. 내년에 나무가 심어질 10조림지까지 합하면 여의도 면적의 3분의1 정도인 100ha(1ha=10000㎡)이다.
인구 1만여명의 몽골 내륙 도시인 만달고비 시가지 북동쪽에 조성된 ‘고양의 숲’ 모습. 성장이 느려서 심은 지 9년이 지난 포플러도 크기가 2미터 정도다. 물을 담아두는 수조 근처의 포플러는 4~5미터 크기로 자라 있어 물이 관건임을 잘 보여준다.
물주기 등 지속 관리가 녹색 비결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조성된 제1조림지(6.25ha)는 우거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런대로 숲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추운 곳이라 벌써 잎이 노랗게 물든 포플러의 키는 2~3m로 자랐다. 조림지 곳곳에 땅을 파서 만들었던 수조 근처의 포플러는 4~5m로 불쑥 솟아 있었다. 물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가뭄에 강한 비술나무도 높이는 아직 1~2m 정도밖에 자라지 못했지만, 옆으로 뻗은 숱한 잔가지 때문에 풍성한 느낌을 줬다.
5년 이상 넘은 2~4조림지의 나무들도 누런 풀밭에서 녹색의 줄을 뚜렷이 만들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실수인 비타민나무(차차르간)와 블랙커런트도 1m 남짓 정도 자랐다. 수확하고 남은 노란색의 비타민 열매가 가는 줄기에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나머지 조림지의 나무들은 대부분 아직 어른 무릎 정도에 불과했다. 나무가 말라죽어 다시 심어야 하는 구덩이도 가끔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1조림지와 2조림지를 빼고는 나무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푸른아시아 울란바타르 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신동현 사무차장은 “겨울이 길고 추운 데다가 물이 부족해서 나무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심은 당해년도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다른 데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성공 기준은 보통 당해년도 생존율 70%이다. 물론 만달고비 조림지의 7~8년 생존율을 따지면 60%대로 떨어진다.
울란바타르에서 남쪽으로 270㎞ 떨어진 만달고비는 돈드고비 아이막(행정구역상 우리나라 도에 해당)의 주도이다. 만달고비의 강수량은 지난해 115㎜를 기록하는 등 연간 평균 100㎜ 안팎에 불과하다. 울란바타르에서 만달고비에 가까이 갈수록 초원에 사막화 지표식물인 하르간(골담초) 무더기가 많은 것도 물 부족과 연관이 깊다. 강수량이 적어서 그나마 뿌리가 강하고 억센 하르간 정도가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만달고비 조림지의 나무 생존율이 나름 높은 것은 철저한 관리 덕분이다. 조림지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쳐서 가축과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은 것과 평균 2.7일에 한번씩 물주기를 계속하고 있는 점이 비결이다. 한번에 한 그루에 20ℓ씩 준다. 기자가 간 날에도 현지 주민으로 구성된 직원 예닐곱명이 10ℓ짜리 양동이 두개를 양 손에 들고 부지런히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제법 크게 자란 1조림지의 나무에도 1주일에 한번꼴로 물을 준다.
아시아 대륙 깊숙이 위치한 몽골은 원래부터 전 국토의 40% 가량이 고비사막 등 사막지대였지만, 최근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화 위험에 놓여 있다. 통계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대략 전 국토의 70~80%에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북부 산림지대 훼손과 무분별한 개발, 과도한 방목 등도 원인으로 꼽히지만, 기후 변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과거 100년간 전 세계 평균온도는 0.89도 올랐으나(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2014년 보고서>), 몽골은 67년(1940~2007년)간 2.1도나 올랐다(몽골 자연환경관광부 <2014년 보고서>). 강수량은 여전히 적은 상태(전국 평균 230㎜)에서 기온이 높아지자, 초원이 전반적으로 건조해졌다. 이 때문에 호수와 연못 1167개가 사라졌고, 강 줄기도 887개나 말라버렸다. 모래사막은 지난 40년 동안 3만8000㏊나 늘었으며, 반대로 산림과 초지는 줄어들고 있다.
사막화에 따른 자연환경 변화는 무엇보다 몽골인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겨울철 재해인 ‘조드’가 대표적이다. 한겨울에 눈이 두텁게 쌓이고 혹한이 닥치면 목초지가 얼어붙어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2009~2010년 겨울의 조드는 몽골 전체 가축의 17%에 달하는 800만 마리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축을 잃은 유목민은 환경난민이 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시절에 인구 50만명의 계획도시로 건설된 울란바타르에 전체 인구의 절반인 150만명이 몰려 사는 것은 늘어난 환경난민과 관련이 깊다.
몽골 국토 80%가 사막화 위험
황사·폭염 등 환경재앙 불보듯
나무심기 녹색운동 활발히 전개
환경단체 앞장에 정부도 팔 걷어
사막화 중심 만달고비시 외곽에
내년까지 10년간 ‘고양의 숲’ 조성
나무 성장 더뎌 아직은 성과 미약
1500㎞ 몽골 그린벨트 구상에
한국 산림청·시민단체 적극 참여
“국제사회 머리 맞대고 협력해야”
또, 겨울과 봄철 황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막화에 따른 결과다. 정부의 황사피해방지종합대책(2013~2017)에 따르면, 한반도에 유입되는 황사의 발원지는 53~71%가 몽골이다. 실제로 몽골 고비사막의 황사는 1991년에 비교해서 2009년에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올초부터 ‘고양의 숲’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나리(30)씨는 “초봄부터 초원에 풀이 깔리는 6월말 정도까지 모래폭풍이 정말 강하고 자주 발생했다”고 말했다.
풀이 없거나 적은 겨울과 초여름까지 몽골 내륙에는 강한 모래바람이 자주 일어난다. 지난 7월 7일 오후 만달고비시 외곽에 모래바람이 부는 모습을 ‘고양의 숲’ 봉사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나리(30)씨가 찍었다. 이나리씨 제공
기후 변화로 인한 겨울 혹한(조드)으로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은 환경난민이 된다. 이들은 울란바타르 등 대도시로 몰려들어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기 쉽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울란바타르의 한 게르촌에 지난달 20일 이른 눈이 내렸다.
푸른아시아의 ‘생태와 주민 복원’ 모델
몽골에서 나무심기는 국토의 사막화 방지를 위한 녹색전쟁이자 삶의 최소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생명운동이다. 몽골 정부도 2005년 ‘몽골 그린벨트 계획’(2005~2035년)을 발표한 바 있다. 몽골 그린벨트는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전체 길이 1500㎞에 이르는 인공 숲지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핵심이다. 고비사막 북쪽에 폭 600m의 녹색 만리장성을 쌓아서 사막의 북상을 저지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모래바람과 여름철 열적 고기압을 상당히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고비사막에서 생성된 뜨거운 공기인 열적 고기압과 바다에서 형성된 남태평양 고기압이 만나면서 동북 아시아의 여름철 폭염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우리나라 민·관기구들도 몽골의 녹색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산림청은 2007년부터 10년 간 고비사막 인근의 달란자드가드와 울란바타르 인근의 룬 솜(솜은 우리나라의 군에 해당) 등에서 몽골 그린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조림사업을 진행했다. 산림청이 나무를 심은 조림지는 여의도의 10배인 3046ha이다.
푸른아시아와 동북아산림포럼 등 시민단체들은 몽골 정부가 나서기 훨씬 전부터 나무심기 운동을 벌여왔다. 특히 푸른아시아는 울란바타르 동쪽의 바가노르와 에르덴, 서쪽 아르갈란트 등 몽골 지역 8곳에 조림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특한 모델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나무심기를 넘어 현지 주민들의 생활 자립 등 지속가능한 공동체 조성 운동이 그것이다. 지역 주민들을 현지 직원으로 채용해 나무심기부터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숲 가꾸기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한편 주민 자립을 위해서 비닐하우스에서의 농작물 재배 기술 등을 전수하고 있다. 만달고비 조림지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주민들이 키운 오이가 덩굴을 힘차게 뻗고 있었으며, 비닐하우스 옆에 조성한 밭에는 감자가 토실토실 잘 자라고 있었다. 에르덴의 ‘수원의 숲’ 조림지 옆에는 아예 주민 직원들의 마을이 조성돼 있었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이 지난 2014년 푸른아시아에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The First Prize of Land for Life Award)를 수여한 것은 이러한 모델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신동현 푸른아시아 사무차장은 “나무심기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고, 생태복원과 함께 주민생활 복원이 이뤄져야 숲 만들기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며 “내년 만달고비 조림장의 사업종료를 앞두고 현지 직원 40명을 중심으로 주민공제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림사업이 종료된 바양누르에서는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나무를 관리하고 있다.
만달고비시 ‘고양의 숲’ 조림지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오이를 지난달 18일 푸른아시아의 한 현지 직원이 따서 들어보이고 있다.
국제 환경 엔지오인 푸른아시아(사)가 몽골 울란바타르에 세운 임농업교육센터의 비닐하우스에서 지난달 20일 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다.
나무 살리려 110미터 지하수 퍼내야
그러나, 만달고비 등 몽골 각 지역의 나무심기 현장을 돌아보면서도 성공적인 숲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당장 외부의 사업 지원이 끊길 경우 나무 관리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드고비 아이막의 척촐마 정책국장은 “내년에 고양의 숲을 이양받으면 만달고비시와 함께 잘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숲을 가꾸는 주민들에 대한 고용 승계 계획 등을 밝히지는 않았다. ‘고양의 숲’에서 일하는 주민팀장 어뜸치멕(33)은 이와 관련해 “고양의 숲이 돈드고비 아이막으로 이관된 뒤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일하러 나오는 직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아시아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일부 조림지에 점적 관수(호스에 연결된 작은 관를 통해 물이 조금씩 공급되게 하는 것) 시설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자연 하천이 없는 지역에서는 지하수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점이 문제다. 만달고비 조림지 역시 지하 110m의 관정에서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를 사용한다. 물이 너무 차가워 물탱크에서 온도를 적정하게 만드는 등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심은 지 10년이 지난 나무까지도 정기적으로 물을 줘야 하기에 조림지역이 넓어질수록 지하수 고갈을 앞당길 가능성도 커진다.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면 지표면이 더 건조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게다가 대부분 토양이 척박하고 겨울이 길어 나무 성장이 너무 느린 것도 기본적인 장애요인이다.
그럼에도 몽골 나무심기 현장은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장이자 대응책을 모색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실험장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신기호 푸른아시아 울란바타르 지부장은 “사막화 방지를 위해 세계적으로 완성된 모델이나 정답이 아직 없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란바타드·돈드고비/글·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지난달 18일 울란바타르에서 만달고비로 가는 도로변 초원에서 염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풀은 벌써 누렇게 변했으며, 푸른 색깔의 무더기는 사막지표 식물인 하르간(졸골담초)이다.
만달고비시 외곽의 초원에서 양과 염소, 말 등 가축 700마리를 키우고 있는 떠거(44·왼쪽)가 그의 부인, 몽골국립대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지난달 19일 자신의 게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고양의 숲이 조성된 뒤로 동네에 모래 쌓이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