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작업이 탈핵시민사회의 외면과 주민 반발에 참여 전문가들의 잇단 사퇴까지 겹치며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5월 이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한 여론 수렴(공론화) 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꾸렸다. 한데 위원 15명 가운데 4명이 지난해 말 위원회 활동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26일 정정화 위원장마저 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며 사퇴했다. 산업부가 구성한 현재 위원회로는 공정한 의견 수렴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2명의 위원이 추가로 사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남은 위원들로 재검토 절차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을 확정했다. 계획은 향후 12년간 진행하는 부지 선정 절차와 함께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원전 시설 주변 주민과 탈핵시민사회에서는 사회적 소통과 합의,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사용후핵연료 정책 전면 재검토’ 공약은 이런 비판을 수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재검토위 출범에 지역 주민과 탈핵시민사회는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위원회를 원전 진흥 부처인 산업부 자문기구로 둔 것이 문제였다. 재검토 작업의 주도권을 쥔 산업부는 위원들을 모두 중립적 인사로 구성했고 위원회 지원 조직도 한국원자력안전재단,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로 채웠다. 주민들과 탈핵시민사회 참여가 배제되면서 앞선 정부의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공약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에 따라 탈핵시민사회 쪽 전문가들까지 협조를 거부하면서 위원회는 균형 잡힌 숙의와 토론에 필요한 전문가 패널을 제대로 구성하기 어렵게 됐다. 산업부가 중립적 인사로만 위원회를 구성한 데는 주민과 탈핵시민사회의 참여를 생산적 결론을 내는 데 걸림돌로 여기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정 위원장의 진단으로는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확충 문제부터 우선 해결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말 공론화 예산으로 78억원을 요청했으나 산업부가 확보해준 것은 11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8억원이 경주 지역 공론화 예산이었다”며 “산업부가 경주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만 의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경주 지역 공론조사를 먼저 한 것은 애초 검토위 출범에 앞서 원전업계, 탈핵시민사회, 지역 주민 등 이해당사자들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에서 합의한 원칙까지 무시한 것이다. 재검토 준비단은 전국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원칙을 먼저 논의하고 지역 공론화는 이후에 하기로 순서를 정한 바 있다.
정 위원장이 내놓은 성공적 공론화의 조건이 탈핵시민사회의 요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해당사자들이 포괄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를 독립적 위원회나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기구로 둘 것 등은 탈핵시민사회에서 위원회 출범 전부터 요구해온 것들이다.
산업부는 이날 정 위원장의 사퇴 기자회견 뒤 보도참고자료를 내어 “탈핵시민사회단체에 토론회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참여 자체를 거부했다.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참여를 거부하고 토론장 밖에서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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