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인권침해 증언대회’ 노동자·농민·청소년 한 목소리 다음달 국가인권위에 진정낼 계획
26일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울산광역시에 사는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증언하고 있다.
“폭염·한파에도 일을 시키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다.”
“기후위기 때문에 미래를 꿈꾸기가 무섭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가 열렸다. 녹색연합·청소년기후행동·인권운동사랑방 등 6개 환경·인권 단체가 함께 하는 ‘기후위기인권그룹’과 시민사회단체연대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주최한 이 대회는 기후위기 문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구속하는지를 노동자, 농민, 청소년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리였다.
인권학자인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기후위기가 환경, 과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본다는 것은 기후위기 피해를 인재에 의한 불의로 본다는 것”이라며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화석연료 기업이나 국가에 대해 분노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기후인권 감수성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범 인천 지역 건설노동자는 건설노동자의 생명권 보장과 일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건설 노동자 평균 연령은 56살이다. 건설 자본은 공사 기한이 걸려있고 돈이랑 연결되니 정부 권고를 지키지 않는다”라며 “올여름 50일 넘게 이어진 긴 장마로 일을 3주밖에 하지 못했다. 비가 와서 돈을 못 받고 퇴근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겨울 혹한 때는 타설한 콘크리트가 굳지 않아 다음 일을 못하고 놀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건설 노동자들이 기후위기 영향을 많이 받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막연하다. 일이 힘들어 집에 가면 소주 한 병 하고 잠자리 들기 바쁘다. 그런 날씨에 회사가 일을 시키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이고 살인미수”라고 강조했다.
이태성 태안 석탄화력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는 화석연료 기반 산업 종사자로서, ‘탈석탄’ 전환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 주제는 두려움이 앞서는 내용”이라며 “(우리에겐) 고용불안을 넘어 삶의 공간까지 붕괴될 수 있는 이야기”라며 말을 꺼냈다. 그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인 저와 동료들은 가장 열악한 곳에서 분진마스크에 의존해 일 하지만, 발전소 시설 장비에 대한 모든 권한은 정부에 있다. 정부 정책에 거부할 권한이 없다”며 “에너지 전환 정책과 관련해 고용 승계 등을 포함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 제발 살려달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울산광역시에 거주하는 17살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기후위기를 해결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나의 미래에 기후위기가 존재한다면 행복할 수 없겠구나, 매일 생존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우울하게 지냈다”라고 자신의 감정을 밝혔다. 그는 “어른 세대는 당연시 여겨온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다. 학교에서는 맨날 지구온난화 이야기를 하며 플라스틱 줄이기, 분리수거 잘 하기 같은 개인적 실천만을 강조했고 우리 세대의 일이 아닌 100~200년 후라고 느끼게 했다. 하지만 개인적 실천을 요구하는 선에서 멈췄고 부족하다고 느껴 직접적으로 변화를 요구하게 됐다”라며 학교 교육의 문제를 짚었다.
경상북도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최창훈씨는 봄철 냉해와 긴 장마, 태풍으로 입은 피해를 증언했다. 최씨는 “살구 농사 짓는 친한 농민은 올해 하나도 (살구를) 못 땄다. 꽃이 펴도 냉해로 다 얼어버린다. 전라도 서부 지역은 태풍이 지나면서 침수돼 벼 생산량이 20%이상 줄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해 한 해 벌어 먹고 사는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망치면 빚을 지게 된다. 안 그래도 농산물 수입이 늘면서 가격 폭락으로 힘든데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최창훈씨가 26일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나와 봄철 냉해와 장마, 태풍 피해로 인한 피해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기후위기인권그룹 등은 다음달 중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계획이다. 2015년 6300여명이 숨진 태풍 하이옌을 겪은 뒤 필리핀 시민사회가 필리핀 인권위원회에 기후위기를 부른 기업의 책임을 묻는 진정을 낸 것을 따랐다.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필리핀 사무소의 기후정의및책임캠페인 법률 고문인 하스미나 파우닥(Hasminah D. Paudac)은 이날 증언대회 자리에 “쉘, 엑손 등 47개 대기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는 영상메시지를 보내왔다.
기후위기인권그룹 등은 인권침해 피해 사례를 접수받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를 호소하는 양봉업자, 해면 수온 상승 등 해양 생태계 변화로 인한 어획량 감소를 겪는 어민, 산불·폭우·가뭄·태풍과 홍수 피해를 겪는 재난 피해자, 폭염과 한파에도 야외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 쪽방촌과 고시원 거주자들,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피해보는 소비자, 기후우울증을 앓는 이들 등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위에 전할 계획이다.
진정 계획을 발표한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피진정인인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인들의 생명권, 환경권, 직업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구제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진정을 낼 계획”이라며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인정되면 구체조치나 시정개선 권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영상/최우리 김민제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