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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신기후체제 열차, 운전지침 빈 칸 남긴 채 불안한 출발

등록 2020-12-11 04:59수정 2022-01-12 09:52

기후변화협약 파리협정 채택 5년

협상 8년 만 모든 나라 감축 참여
선진국만 감축 의무는 올해로 끝
내년 신기후체제 본격 출발하지만
국제탄소시장 이행규칙은 미완성

구속력 없는 상향식 목표 설정에
기후위기 막아줄까 회의적 시각도
탄소중립 선언·시장 변화에 기대
파리기후변화협정, 그후 50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반대 의견도 없습니다. 기후를 위한 파리협정은 채택됐습니다.”

2015년 12월12일 저녁 프랑스 파리 외곽 르부르제. 기후변화협약 21차 당사국 총회(COP21) 의장인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교장관이 협정 채택을 선언했다. 총회장을 가득 메운 196개 당사국 대표단은 환호하며 박수쳤다. 일부 참석자는 눈시울을 붉혔고, 부등켜 안고 감격했다. 1997년 38개국 온실가스 감축량을 합의한 교토의정서(3차 당사국 총회)를 기반으로 한 교토체제를 대체하는 ‘신기후체제’의 설계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2008~2012년) 종료 뒤의 ‘포스트-교토체제’에 대한 협상 일정에 합의한 지 8년 만이다.

신기후체제 협상 과정은 지난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둘러싸고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대립했고, 미국·중국 등 주요 배출국은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피하려 했다. 수년 간 분열과 불신이 뒤얽히며 파열음을 냈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는 그 혼란의 절정이었다. 유엔 중심의 기후협상 무용론까지 불러왔다.

파리협정 이후 5년, 나라별 제도 정비 등 준비 기간을 거친 신기후체제 열차가 2021년 본격 출발한다. 신기후체제 아래에서는 산업화 이후 300년 가까이 구축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구조, 수송수단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저탄소 전환에 맞춰 국토계획을 다시 짜고 도시와 건물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먹고 입고 마시고 노는 개인의 일상생활도 어제와는 달라야 한다. 파리협정 5년, 우리는 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더 가야할까.

관련기사:
기후변화, 문제는 돈…끝나지 않는 선진국 vs 개도국 책임 논란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73772.html)
파리협정 5년, 더워지는 지구 좁혀지지 않은 기후 목표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73751.html)
IPCC 6차 보고서, 각국 탄소감축 ‘숙제검사’ 답안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73777.html)

_. 불량국가 망신주기 효과

2015년 12월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21차 총회(COP21)에서 파리협정 채택에 환호하는 각국 협상 대표단과 국제기구 지도자들. 연합뉴스
2015년 12월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21차 총회(COP21)에서 파리협정 채택에 환호하는 각국 협상 대표단과 국제기구 지도자들. 연합뉴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섭씨 2도 훨씬 아래에서 억제하고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96개 당사국 모두가 국가결정기여(NDC)라는 이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해 참여하도록 했다. 모든 나라의 참여와 상향식 목표 결정 방식은 올해로 끝나는 교토체제와 크게 다른 점이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 등 38개 나라에만 협상으로 결정된 감축 목표를 부여했다.

당사국의 감축 목표를 교토의정서에 쓰인 공약(commitments) 대신 기여(contribution)로 표현한 것에도 파리협정의 핵심이 잘 드러난다. 파리협정 참여국은 의무적으로 유엔에 감축 목표를 제출해야 하지만, 그 내용에 국제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다. 교토의정서가 참여국에 구속력 있는 감축 의무를 지우고, 불이행에 대한 제재 규정까지 둔 것과 다르다.

기후변화협약 사무국 발표를 보면,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 감축 의무국들은 1990년 대비 평균 22.6%의 감축 실적을 기록했다. 평균 5.2%(탈퇴한 미국 몫 포함)로 설정한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세를 이어왔다. 미국과 중국,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의 법적 구속력 없는 상향식 목표 설정 방식은 모든 나라를 참여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실제 유엔환경계획이 파리협정 당사국들이 제출한 감축 목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모든 나라가 목표를 100% 이행해도 세기말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3도 이상 오르게 된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 파리협정은 당사국들에게 5년 마다 진전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도록 했다. 또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이행 실적을 투명하게 검증해 공개하는 규정을 뒀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온실가스 감축 능력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불량국가’ 낙인을 감수해야 한다. 이행을 직접 강제하는 대신 ‘집단적 망신주기’를 압박 수단으로 쓰는 셈이다.

파리협정은 최소 2년은 지나야 할 것으로 예상됐던 발효 시점을 크게 앞질러 2016년 11월 발효됐다. 미국의 탈퇴와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들의 소극적 태도로 발효에 만 7년이 걸린 교토의정서에 비춰 이례적으로 빠른 출발이다.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온실가스 배출 상위 국가들이 적극 비준(수락 포함)에 나선 결과다.

_. 완성 안 된 세부규칙

교토 기후체제는 올해 종료된다. 국제사회는 2012년 카타르 도하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의정서를 개정해 2차 공약기간(2013~2020년)을 설정한 이후 추가 연장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본격 출발하는 신기후체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파리협정을 뒷받침할 이행규칙이 필요하다. 협상 시한을 맞추려다 보니 협정문에 이행 방법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22차 당사국 총회는 2018년을 파리협정 이행규칙 협상의 마감시한으로 설정했지만, 협상은 아직 완료되지 못했다. 2018년 폴란드 카토비체 24차 당사국 총회에서 통과된 이행규칙 ‘카토비체 패키지’에는 협정문 6조 ‘국제탄소시장’ 관련 내용이 비어 있다. 이 조항은 당사국들이 온실가스 감축분을 사고팔아 감축 목표를 이행할 수 있게 한 규정이다. 탄소시장을 감축 목표 달성 수단의 하나로 쓰겠다고 공표한 한국에 특히 중요하다.

국제탄소시장 이행규칙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은 당사국들이 거래금액 일부를 개도국 지원 자금으로 공제하는 문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의 이중계산 방지 방안 등의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탄소시장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는 국가와 회의적인 국가, 감축 실적을 팔려는 국가와 사려는 국가의 생각이 모두 다른 탓이다. 환경부 기후전략과 기후협상 담당 최용식 사무관은 “기후협상에선 보통 선진국과 개도국으로 갈라져 다투는데, 국제탄소시장은 특이하게 각 나라가 제각기 다양한 입장을 보여 합의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26차 당사국 총회는 국제탄소시장 이행규칙을 너무 늦지 않게 완성할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내년 11월로 미뤄지면서 신기후체제 열차는 운전에 필요한 지침도 완비되지 않은 채 출발하게 됐다.

_. 공짜 탄소배출 시대 끝났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이회성 의장(가운데)을 비롯한 아이피시시 관계자들이 2018년 10월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이피시시 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승인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특별보고서는 2050년경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하는 것을 파리협정의 1.5도 목표로 갈 수 있는 경로로 제시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이회성 의장(가운데)을 비롯한 아이피시시 관계자들이 2018년 10월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이피시시 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승인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특별보고서는 2050년경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하는 것을 파리협정의 1.5도 목표로 갈 수 있는 경로로 제시했다. 연합뉴스

파리협정은 인류를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구해 줄 수 있을까?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이라 불리는 이 단계는 인류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가능하다.

목표 달성에 회의적 시각도 많다. 최근 유럽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등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는 나라들이 늘어나는 것이 그마나 희망적 대목이다. 한국도 최근 이 대열에 끼었다. 지난 10월 한국의 탄소중립 선언은 새 기후체제가 요구하는 역할을 적극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탄소중립은 탄소배출 비중이 높은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계에는 특히 어려운 과제다. 시민들도 탄소를 덜 배출하며 사는데 들어가는 불편과 비용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은 “최근 주요국의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이에 동참하는 등 변화가 있다. 여기에 탄소조정국경세 등 환경규제와 무역규제가 하나로 수렴되는 현상까지 더해지면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은 “이제는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공짜가 아닌 시대가 됐기 때문에 자신이 배출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따른 비용도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기후·환경·건강 편익을 고려하면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서용 서울국제법연구원 기후환경법정책센터 센터장은 “파리협정은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지만 기후변화 억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가능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며 “지금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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