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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원전이 미사일·항공기 공격에도 끄덕없다고?

등록 2021-03-12 11:52수정 2021-12-30 14:46

미사일 피격 상황은 설계에 고려 안 돼
항공기 충돌 대비는 신고리 5·6호기만
킨스 “가동원전 건물 벽 보강은 불가능”
2001년 9·11테러 당시 대형 민간 여객기에 들이받혀 불타고 있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국내 원전 가운데 항공기 충돌까지 대비해 설계된 것은 현재 공사 중인 신고리 5·6호기 뿐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2001년 9·11테러 당시 대형 민간 여객기에 들이받혀 불타고 있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국내 원전 가운데 항공기 충돌까지 대비해 설계된 것은 현재 공사 중인 신고리 5·6호기 뿐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원전이 항공기 테러나 미사일 공격에도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게 지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오해에는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때 안전성을 부풀려 보도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

<조선일보>가 2019년 4월26일치 지면에 비중 있게 실은, ‘국내 원전, 규모7 지진 나도 대형 항공기 충돌해도 끄떡 없다’는 제목의 기사가 그런 예다. 당시는 강원 동해시와 경북 울진 해역에 규모 4.3과 3.8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때였다.

항공기가 기상 악화나 기계 고장 등 조종사가 의도치 않은 사고로 원전에 추락할 위험은 원전 부지를 선정할 때부터 검토된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의 ‘원전 안전심사지침’은 공항과의 거리, 주변을 지나가는 항로의 폭과 비행 횟수 등을 바탕으로 계산한 연간 사고발생 확률 1000만분의1을 설계 반영의 구체적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1000만년에 1번 이상 일어날 수 있으면 설계에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에 이렇게 설계된 원전은 없다. 최수진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심사과장은 “항공기 사고 발생 확률이 기준을 초과한 원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얼마 전 원안위가 경북 울진 신한울 원전 1호기 운영허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됐다. 한국전력기술이 종합 설계한 신한울 1호기는 운영허가만 받으면 핵연료를 장전해 시험운전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 1월8일 열린 제131회 원안위 회의에서 복수의 원안위원들은 신한울 1호기에 적용된 항공기 추락사고 발생 확률 기준이 모호하다는 취지의 지적을 했다. 일부 원안위원은 인근에 있는 비상활주로와 군 훈련공역 등의 영향에 대한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회의에서는 원전이 미사일에 피격되는 상황을 설계에 고려하는 문제도 논란이 됐다. 강력한 폭발력과 관통력을 지닌 유도무기는 추락하는 항공기보다 원전에 훨씬 심각한 타격을 입혀 치명적인 방사능 재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원안위와 킨스는 미사일 피격은 원전 설계 때 고려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서 조호현 킨스 구조·부지평가실장은 관련 질의에 “국내 기준의 근거가 되는 미국 기준도 사보타주(파괴 행위)와 같은 적의 공격은 원전 설계에서 배제한다”고 답변했다.

실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관련 규정(10 CFR 50.13, 10 CFR 52.10)에는 “원전 면허 신청자에게 미국의 적인 외국 정부나 개인의 공격과 파괴적 행위로부터 원전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설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미사일과 같은 의도적 파괴 행위까지 고려하며 경제성 있는 원전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전 설계 실무자인 김봉래 한국전력개발 토건환경기술실 차장은 “티엔티 10t의 파괴력을 고려해 설계했다고 해도 상대 국가에서 티엔티 100t 짜리를 쏘면 설계한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설계는 규제 요건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런 요건이 없다”고 말했다.

원안위는 의도적인 원전 파괴는 설계로 대응하는 안전 문제가 아니라 국가 주요시설 방어 차원에서 대응하는 보안 문제라고 설명한다. 손명선 원안위 안전정책국장은 “미사일이나 테러 관련 대응은 ‘방호방재법’의 물리적 방호 규정에 따라 이뤄지며, 그 내용은 대외비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방호방재법은 2003년 제정된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을 말한다. 이 법은 ‘물리적 방호’를 “핵물질과 원자력시설에 대한 안팎의 위협을 사전에 방지하고, 위협이 발생한 경우 신속하게 탐지하여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하며, 사고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조치”로 정의하고 있다. 원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미리 탐지해 군사적으로 방어하되, 방어에 실패해 피격되면 방사능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주민 소개 등의 대책을 세우도록 한 것이다.

대형 항공기 자체를 폭탄으로 사용하는 셈인 의도적 충돌은 오랫동안 원전 설계에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다 9·11 테러를 계기로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09년부터 설계에 고려하도록 했는데도 한국은 2016년이 돼서야 의무화했다. 한국에서 2016년 이후 설계된 원전은 없다.

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에는 항공기 충돌까지 대비한 설계 개념이 적용됐다는 것이 원안위 설명이다. 최수진 원안위 원자력심사과장은 “한수원이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신청한 당시(2012년)엔 국내에 법제화되기 전이지만 미국의 요건을 설계에 선제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안다. 기존 원전에 약 120㎝로 돼 있는 격납건물과 보조건물의 벽체 두께를 각각 137㎝와 152~183㎝로 설계한 것이 그런 사례”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원전들은 어떨까? 대형 항공기가 기존 원전에 충돌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은 한수원 자료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원안위에 제출한 ‘신고리 3·4호기 사고관리계획서'에서 “항공기 충돌 등 인위적 재해에 의한 광역손상 발생 시 원자로 내 핵연료 냉각 기능, 사용후연료저장조 내 핵연료 냉각 기능, 원자로 건물 방호벽 기능 등을 위한 1·2차 수단의 동시 손상, 전원·계측제어기능의 상실과 물리적 손상 등의 직접 영향으로 필수안전기능이 유지되지 않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고리 3·4호기는 가장 최근 가동을 시작한 최신 원전이다. 한울 1·2호기, 신고리 1·2호기 등 나머지 가동 원전의 사고관리계획서에도 같은 결론이 붙여넣은 듯 반복된다.

원안위는 2016년 신규 원전에 항공기 충돌에 대비한 설계를 의무화하면서 가동 원전에는 이를 반영한 사고완화전략 수립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원전을 구조적으로 보완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윤일 킨스 안전평가단장은 원안위 회의에서 “원전에서는 격납건물과 보조건물의 벽체 두께가 항공기 충돌에도 구조건전성을 유지하느냐 아니냐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부분인데, 운영 중인 원전에서 건물 벽체를 증가시키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승태 한수원 안전처 사고관리전략부장은 “격납용기 벽체를 두껍게 하면 보조건물이 전부 다 바깥으로 밀려나와야 돼 건물을 옮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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