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물바람숲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에 홍차를 보급한 배경에는 노동자들이 오후에 피로를 풀고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려는 자본가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영국 자본가보다 훨씬 전에 식물은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이용해 왔음이 드러났다.
마거릿 쿠빌론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많은 식물이 꿀물에 카페인을 집어넣는 방법으로 꿀벌로 하여금 더 자주 충실하게 꽃을 방문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게다가 카페인이 든 꿀물은 꿀벌이 꽃의 당분 함량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어 결과적으로 벌의 꿀 생산량을 현저히 떨어뜨린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꿀벌과 식물의 관계는 꽃가루받이와 꿀물을 주고받는 “호혜적이라기보다 착취적 관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카페인은 식물이 생산하는 쓴맛을 내는 화학물질로 잎이나 씨앗에 넣어 초식동물을 물리치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우연히 꿀물에도 카페인이 포함되는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냈다.
꿀벌은 카페인을 선호하고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꿀물의 카페인은 약물 주입과 비슷하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현재 식물의 55%가 낮은 농도이지만 꿀물에 카페인이 들어있음은 이 화학적 전략의 유효성을 보여준다.
연구자의 야외실험 결과 꿀벌이 야생에서와 같은 농도의 카페인을 탄 설탕물 먹이 터를 방문하고 그 사실을 둥지 속 동료에게 춤으로 알리는 경향과 빈도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4배나 높았다.
꿀벌들은 같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다른 꽃을 거들떠보지 않고 카페인을 제공하는 꽃에 집착해 결국 적정한 꿀을 확보하지 못하는 손실을 보게 된다. 연구자들은 식물의 40%가 카페인이 든 꿀물을 내는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보다 매일 꿀벌이 생산하는 꿀이 14.5% 줄어들 것으로 모의 예측했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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