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10시 반 서울 홍대입구역 미디어카페 ‘후’에서 마음 칼럼니스트 박미라씨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육아법’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6살 아들이 천방지축입니다. 최근엔 자기 기분에 안 맞는다고 유치원을 뛰쳐나온 적도 있어요. 자꾸 아이를 혼내게 되는데, 아이 맷집만 커지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자기중심 성향도 강하고 공격적인데, 이 모든 것이 자꾸 제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 같아요.”
“6살, 3살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너무 좋아합니다. 엄마랑 같이 놀자고 하면 아빠랑 함께 놀겠다고 해요. 아이들이 그럴 때마다 ‘내가 아빠만큼 애틋하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 모성이 의심됩니다.”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반, 서울 홍대입구역 미디어카페 ‘후’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엄마 등 30명의 여성이 모였다.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와 한겨레출판이 공동 주최한 마음 칼럼니스트 박미라(53)씨의 부모 특강을 듣기 위해서다. 최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엄마 심리학서를 펴낸 박씨는 이날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육아’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요즘 엄마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위 질문들은 이날 엄마들이 쏟아낸 고민 중 일부다.
자꾸 화가 나고 우울해지고
모든 일이 무의미해지고…
‘완벽한 육아’ 부담에 짓눌려
자책으로 시퍼렇게 멍든 탓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성공담 같은 잘난 육아열풍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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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우울한 갱년기 맞을 수도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육아도 이 세상엔 없어요. 그런데 자꾸 엄마들은 완벽해지려고 해요.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이 난 것처럼 말하고, 자기 자신을 닦달해요.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는데 자꾸 그러면 더 우울해지고 자신에게 낙담할 수밖에 없지요.”
박씨는 요즘 엄마들이 자기 비난, 자책으로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렇게 된 까닭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지나치게 아이에게만 몰두하고, 자신이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해 관심을 덜 기울인 탓이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자녀 교육 성공담과 같은 잘난 육아 열풍도 한몫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의식적으로 엄마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지 않으면 엄마는 정체되고 우울한 갱년기를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성장하지 않고 정체된 엄마들은 어떤 증상들을 보일까? 아이에게 자꾸 화가 난다. 이유 없이 우울해진다.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잘나가는 여자를 보면 불편하다. 박씨는 “성인기에도 인간의 발달은 지속되는데, 이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서 세상과 자신을 통합하지 않으면 갈수록 소외감, 우울감, 분노가 쌓여 불행한 노년기를 맞게 된다”며 “아이가 사랑스러운 만큼 엄마 자신도 자신을 사랑해주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육아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에게 향한 시선을 내게 조금 돌리면 된다. 박씨가 제시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육아법은 다음과 같다.
이럴 땐 아이에게 향한 시선 돌려
자신의 감정 인정하고 한계 알아야
아이에게 주는 ‘119 마인드’ 집착 말고
아이가 주는 사랑도 품어야
유능감 발휘할 영역 찾아
잘하는 것이나 취미 꾸준히
“조금 실수하고 흔들려도 괜찮아
부족하고 인간적인 엄마가 훌륭”
첫째,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충분히 인정하라. ‘이럴 때 나는 좋아하는구나’, ‘이럴 때 나는 화가 나는구나’, ‘이럴 때 나는 억울하구나’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챌 필요가 있다. 특히 부정적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계를 알면 좋다. 모든 엄마가 아이에게 상냥하고 모성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상냥하게는 안 돼’,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못하겠어’라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정하고 한계를 알면, 비로소 어떤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강구할 힘도 생긴다.
마음 칼럼니스트 박미라씨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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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성격과 거꾸로 한 육아
둘째, 자신의 성격과 아이의 성격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육아법을 찾아라. 22살, 26살 두 딸을 둔 박씨는 자신 역시 자녀를 키우며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 언론인이었던 박씨는 많은 선배에게 “아이는 자유롭게 놔두면 스스로 알아서 잘 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말만 믿고 큰딸을 자유롭게 키웠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큰딸은 제도나 틀 안에서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딸을 양육자가 방치했으니 아이의 불안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큰딸에 대한 경험 때문에 둘째 아이를 키울 땐 양육법을 바꿨다. 학교 숙제부터 아이의 하루 일과를 챙겼다. 그런데 둘째 아이 성격은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자기 의지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그런 아이를 엄마가 자꾸 통제하려고 했으니 모녀 관계가 악화됐다.
박씨는 “다행인 것은 내가 어떤 하나의 육아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고, 문제를 발견하고 바로 그 방식을 철회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아이의 성격을 안 뒤 아이에게 허세를 부리지 않게 되고 마음도 편해졌다며, 상담센터에 가면 엠비티아이(MBTI)나 에니어그램과 같은 성격 유형 검사를 무료로 해주니 꼭 받아볼 것을 권했다.
셋째,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아들여라. 어떤 부모들은 ‘아이는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달려가겠다는 ‘119구급대 마인드’로만 아이를 대한다. 그러나 부모가 주는 사랑에 버금가게 아이 역시 부모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준다. 그런 사랑을 받으며 부모는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어린 시절의 상처도 치유된다. 박씨는 “엄마가 아이가 주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기만 할 때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멈춘다”며 “아이가 사랑을 줄 때 충분히 만끽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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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
넷째, 유능감을 발휘할 영역을 찾아라. 아이를 키운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예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잘하는 것이나 취미는 꾸준히 틈틈이 시도하는 것이 좋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스스로 내가 소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어떤 것을 했을 때 즐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꾸준히 해서 자신의 유능감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돼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다.
“조금 부족하고 인간적인 엄마가 훌륭한 엄마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세요. 조금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부모가 흔들리는 모습, 실수하고 좌절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기어이 일어서 걷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도 계속 사랑해주세요.”
누구보다도 엄마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그는 이날 역시 고민 많은 엄마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