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을숙도 생태공원에서 엄궁중학교 학생들이 원반던지기를 하고 있다. 이날은 장애학생과 장애인식개선 동아리 학생들이 소풍 가는 날이었다.
낙동강 끝자락,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에서 만난 학생들은 왁자지껄 소리 내며 원반던지기를 하고 있었다. 골대에 원반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이 들렸다. 중학교 1학년 민철이(가명)는 바닥에 떨어진 원반을 바구니에 열심히 주워 담았다. 1학년 현호(가명)는 자전거를 타느라 여념이 없었다. 며칠 전 처음 배웠다는데 공원 전체를 휘젓고 다녔다. 체육 시간에 탁구도 곧잘 한다고 했다. 지난주엔 부산장애인체육회에서 나온 탁구 선생님을 6 대 0으로 이겼다고 자랑했다. 둘은 지적장애를 지녔지만 비장애학생들과 어울려 놀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지난 4일 통합교육 현장을 보기 위해 부산 사상구 엄궁중학교와 대구 동구 불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찾았다. 포항시 북구 달전초등학교와는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합교육은 장애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또래와 함께 교육받는 것으로, 장애학생이 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육부는 2018년 ‘정다운학교’라는 이름으로 통합교육 지원을 시작했다. 정다운학교는 2018년 40개교에서 시작해 올해는 115개교로 확대된다. 장애 유형이나 정도와 관계없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엄궁중학교 1층에 있는 통합교육반 교실은 조금 특별했다. 책상과 의자가 빼곡한 일반 교실과 달리 간이탁구대와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한쪽엔 냄비, 프라이팬 등 요리도구도 있었다. 마치 놀이 공간 같았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면 비장애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는다. 심광보 특수교사는 “특수학급반이라는 공간으로 구분 짓지 않고, 누구나 드나드는 놀이터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구불로초 병설유치원 푸른하늘반(만 5살)에선 장애아동 4명과 비장애아동 13명이 어울려 지낸다. 일반교사 1명, 특수교사 1명, 실무원 1명이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학교 텃밭 가꾸기도 장애학생들의 주요 일과다. 지난해엔 수확물을 직접 포장해 친한 친구와 좋아하는 선생님께 전했다. 받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고도 했다. 올해는 우산 대여 사업을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 통합교육반에 방문하면 우산을 빌릴 수 있다. 심 교사는 “장애학생이 교과 학습으로 인정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도성을 주면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통합교육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오래 걸려도 분명 성장한다”고 말한다. 손현지 달전초 교사는 “교실 한복판에서 빙글빙글 돌며 수업을 방해하던 학생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또래도우미의 도움으로 이제는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겠다고 한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한 학생은 2년 만에 학교에 적응하기도 했다”는 사례를 전했다. 심광보 교사도 “입학할 때 물건을 던지고 소리 지르던 학생이 또래 아이들과 상호작용에 익숙해지며 변하더라. 이제는 도움 받기를 넘어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도우려고 한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실제로 여러 특수교육 연구는 통합교육을 받은 학생이 분리교육을 받은 학생에 비해 높은 사회적응력을 보인다고 말한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상생활 기술과 사회 적응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엄궁중 1학년 수학 과목 협력교수 강의안. 자료 부산 엄궁중 통합교육 정책 연구학교 운영보고서.
통합교육이라고 해서 모든 시간을 비장애학생과 같이하진 않는다. 맞춤형 학습 지원 없는 통합교육은 교육 사각지대를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선 특수교사와 일반교사가 협력해 장애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 방법으로 지도하고 있었다. 심광보 교사는 “중등 과정부턴 교과 내용이 심화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장애학생의 학습 능력을 고려해 개별화된 시간표를 짠다”고 했다. 손현지 교사도 “장애학생에게 의미 있는 학습이 되려면 개인별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수업 과정과 평가 수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 있는 일반 교사의 고충도 있었다. 특수교육 관련 연수 경험이 거의 없고, 장애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은영 불로초 병설유치원 교사는 “장애아동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특수교사의 지도 방법을 관찰하고, 통합교육 연수를 받으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손현지 교사도 “일반교사-특수교사 협력교수 방식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외부 컨설팅과 연수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숙향 이화여대 교수(특수교육)는 “선생님들이 통합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도록 대학 교원 양성 과정에 장애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보강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교사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교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학교 관리자의 지지가 중요했다. 구명숙 불로초 병설유치원 원감과 심광보 교사는 “교장 선생님이 통합교육에 대한 의지가 높으니 교사의 자율성도 생기고, 적극적인 교육 지원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궁중학교는 매월 1~2회 통합교육연구회를 연다. 담임교사, 교무부장, 보건교사, 상담교사 등 20여명의 교사가 참여해 학생 개인의 발달 정도를 공유하고, 협력교수 방법을 논의한다. 김강산 엄궁중 교사는 “통합교육은 특수교사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학교 관리자, 일반교사, 특수교사, 학교 구성원이 각자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교육 문화가 자리 잡으니 아이들도 바뀐다고 했다. 심광보 교사는 “예전엔 장애학생 따돌림 사례도 있었다. 통합교육을 받아들이면서 학교 전체가 장애학생에게 관심을 갖고,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아이들의 인식도 바뀌었다”며 학교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현지 교사는 “학생들이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장애학생을 무조건 돕기보다 수업이나 놀이 상황에 맞는 역할을 알아서 부여하더라. 학생들이 장애학생을 동등한 학교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5년간 특수교육 실무원으로 일했다는 황진문 교사는 “같이 섞여 있으면 친구들끼리 알아서 ‘작은 선생님’ 역할을 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놀이 형태가 달라져 구분되기는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느끼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도와준다. 학교에서 통합의 기회를 빼앗는다면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차별과 혐오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비용이 더 클 것”이라며 통합교육의 의미를 전했다.
부산 엄궁중 장애학생들이 학교 한쪽에 마련된 텃밭을 가꾸고 있다. 부산 엄궁중 제공
현장에서 본 통합교육 성공의 열쇠는 ‘포용하는 문화’였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인 것처럼, 장애학생도 우리 학교의 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중요했다. 진창원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교육연구관은 “통합교육 연구학교 사례를 살펴보니 학교에서 장애학생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 통합교육 분위기가 형성되더라. 2023년부터 시행되는 제6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 통합교육 문화 확산 방안과 실질적인 지원 정책을 담을 예정이다. 통합교육을 일부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구 부산/글·사진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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