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리
토요판팀 기자 nopimuli@hani.co.kr
지난주 토요판 커버스토리 ‘폭행, 갈취, 강제노동… 2016년판 형제복지원인가’(8월27일치 1·3·4면)가 보도되고서 대구광역시립희망원 관계자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습니다. 등이 굽은 마더 테레사(1910~1997) 수녀가 1981년 5월5일 새벽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자리한 희망원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진이었습니다. 1981년 5월3일 한국을 방문한 테레사 수녀는 서울 일정을 마치고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운영하는 희망원에서 4일 밤과 5일 새벽을 지냈습니다. 당시 노숙인시설이던 희망원에서 이틀을 보낸 테레사 수녀는 직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은총은 불우한 이를 통하여 내리며, 또 불우한 이를 통해 은총이 표현됩니다.”(<대구대교구 100년사-은총과 사랑의 자취>에서 발췌)
빛바랜 사진 속 누군가는 지금도 희망원에 거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른 새벽 희망원 건물 밖 흙바닥에 서서 기도하는 테레사 수녀 뒤로 빈자들은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두 손을 모았습니다. 1958년 대구시청이 노숙인시설로 설립한 희망원은 현재 장애인, 노숙인 시설 등으로 분화돼 1214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폭행, 사인 조작, 급식비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를 받은 희망원은 2000~2014년 연속 6회에 걸쳐 우수시설로 선정됐습니다. 2005년에는 전국 노숙인복지시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뭐 문제가 있었습니까?” 테레사 수녀의 사진을 받은 지 사흘 뒤인 지난 1일, 희망원 임춘석 재활시설국장은 전화 통화에서 제게 물었습니다. 전국 노숙인복지시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2005년 당시 평가위원 3명 가운데 1명이 희망원을 퇴직한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묻자 그가 되물은 것입니다. 2000년 4월 복지부장으로 희망원을 퇴직한 김아무개씨는 5년 뒤 대구시청의 추천을 받아 평가위원이 되었습니다. 김씨는 2005년 전국 사회복지시설 가운데 부산 3곳, 대구 1곳을 평가했는데 대구의 복지시설 1곳이 희망원이었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은 사회복지사업법 제43조 규정을 근거로 3년 단위로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 최고 복지시설의 부조리한 탄생이었습니다. 대구시청 복지정책관 관계자의 해명은 이랬습니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추천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원래는 배제가 되는데 어떻게 (김씨가 평가위원에 포함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보고 대응책을 내놓겠다던 대구시청은 <한겨레> 보도 이후인 1일 “희망원을 특별점검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달에 민간 전문가와 공무원이 거주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면담을 진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국민의당은 2일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열어 정중규 비상대책위원, 김광수 의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단을 구성했습니다. 법률위원회와 인권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위원을 추가 선임하고, 국민의당 대구시당도 조사단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보건복지부도 보도 이후 대구시에 희망원 관련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사회복지사업법 40조를 보면, 회계부정이나 불법행위 등이 발견되면 보건복지부 장관, 시·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이 시설장을 교체하거나 시설폐쇄 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은 ‘페이퍼 복지’란 말을 자주 합니다. 서류만 완벽하면 복지시설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복지시설 평가는 시설환경, 재정조직운영, 인적자원관리, 프로그램 서비스, 지역사회와의 관계, 이용자의 권리 등 6개 영역으로 이뤄집니다. 거주인의 인권, 삶의 질을 점검하는 영역은 ‘이용자의 권리’ 하나뿐입니다. 이마저 인권교육, 인권지킴이단의 활동 여부를 보는 형식적 잣대입니다.
희망원을 운영하는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침묵만 지키는 가운데 대구의 천주교 평신도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온라인 모임을 꾸리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으로 대책을 논합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교사 임성무씨는 “교회(천주교대구대교구)가 희망원 피해자와 시민에게 사과하도록 요구할 것이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신도인) 우리라도 부끄럽기 때문에 사과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를 위해야 할 교회가 가장 가난한 이의 밥그릇을 뺏았다. 희망원은 가난한 이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가톨릭 교리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어겼다.”(임성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희망원의 자판기 앞에서도 상실됐습니다. 장애인수당, 노령연금 등을 받는 희망원 거주인이 사 먹는 음료수 자판기 순이익은 지난해 약 1800만원. 수익은 대구 복지시설 가운데 가장 높은, 유일하게 공무원에 준하는 월급을 받는 직원에게 겨울철 김장비 또는 휴가비로 2014년까지 지급됐습니다. 희망원 거주인이 내부 식당에서 일하고 받는 시급은 809.7원. 빈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마더 테레사의 사진을 건넨 희망원 관계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꾸 울음이 납니다.” 그 울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