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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대통령이 “책임진다”던 치매…일자리 질부터 높여야

등록 2017-06-04 19:15수정 2017-06-04 21:36

‘국가책임제’공표 계기로 본 실태
영세업체 난립한 노인돌봄 서비스
“요양보호사 월급제로 바꿔야”
방문요양보호사(왼쪽)가 서비스 이용자와 함께 이용자의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제공.
방문요양보호사(왼쪽)가 서비스 이용자와 함께 이용자의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제공.

지난달 경기도 성남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치매 노인이 병원에 실려갔다. 요양원에선 행동이 불안정한 치매 노인에게 안정제를 먹인다. 간혹 약이 듣지 않으면 처방보다 많이 투여한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관리하기 쉽게 약을 과용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요양보호사는 “돌봐야 할 노인에 견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힘들고 괴롭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 홀로 사는 80대 여성 ㄱ씨는 기초수급자이자 치매 환자다. 요양보호사는 지난해 매일 하루 4시간씩 ㄱ씨를 찾아 돌봤다. 하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부담으로 올해부터 돌보는 시간이 하루 3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보호사는 시간이 줄면서 하루 두 차례 챙기던 끼니와 약을 한 번으로 줄여야 했다. 스스로 약을 먹지 않은 ㄱ씨는 올 들어 저녁이 되면 자주 집 밖으로 나간다. 보호사가 집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지만 ㄱ씨가 집에 없을 때는 밤 늦게 쫓아가기도 하고, 경찰에 신고해 새벽에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 영세업체 난립한 노인돌봄 서비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을 찾아 요양보호사 확충 등 ‘치매 국가책임제’를 실행하겠다고 밝히고 보건복지부에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치매를 앓는 노인의 돌봄 문제를 개별 가정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 치매환자 등을 위한 노인돌봄 서비스는, 이를 제공하는 공공시설이 부족한데다 영세 민간업체가 난립해 요양보호사의 처우가 낮고, 결국 서비스 질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통령이 찾은 서울요양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치매환자 등 노인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유일하게 직영하는 곳이다. 공단이 요양시설 표준을 제시한다며 3년 전 만든 국내 최고 시설이지만, 아무나 이용할 수 없다. 정원 150명에 대기자만 800명(2016년)이다. 국내 노인요양 시설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2.2%에 그친다. 6%가 넘은 국공립 어린이집보다 못하다.

그동안 정부의 노인돌봄 정책이 서비스 공급량 확충에 방점이 찍혀 있다보니 신고제로 운영하는 민간 영세업체는 난립해 있다. 고용된 요양보호사가 10명이 안 되는 곳이 30%다. 영세한 업체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부작용도 많이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5년 전국 장기요양기관 1028곳을 골라 조사했더니, 대상의 75.3%인 774곳에서 235억원의 요양급여 비용을 부당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자리 안정, 월급제 도입해야 복지부 자료를 보면,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노인돌봄 서비스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지난해 말 기준 약 40만명이다. 이 가운데 33만4천명이 요양보호사, 이중에서도 27만3300여명이 치매환자 등의 집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 요양보호사다. 노인돌봄은 대부분 노인의 집에서, 50~60대 여성들인 요양보호사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곧 노인돌봄의 질을 뜻하지만, 현장은 “보호사가 남아나지 않을 만큼” 열악하다. 시간제 근로를 하는 방문 요양보호사는 지난해 한 달 평균 76시간을 일하고 57만원을 임금으로 받았다. 그나마 올해 환자당 하루 근무시간이 3시간으로 줄면서 임금도 20% 줄었다.

20년가량 돌봄서비스를 해온 이건복(65) 좋은돌봄실천 요양보호사 지원단 대표는 “제도가 시행된 9년 동안 시급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9년 동안 일 해온 사람과 신입 시급이 같다. 서비스 이용자가 이사를 가거나 서비스를 받지 않겠다고 해 하루 아침에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은데 임금을 보전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하니 침 맞고 파스 바르고 버티다 자기 팔 못들 때쯤 일을 그만둔다. 소모적이고 생계에 도움이 안 되는 일자리다. 그렇게 9년을 오다보니 이젠 보호사 구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최경숙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장도 “일부에선 시간제 근무를 선호하는 여성들의 유연 노동쯤으로 이해하지만, 실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시급제가 문제다. 특히 치매 노인의 경우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가 중요한데 지금은 이용자 맞춤형으로 일하기도 어려운 조건”이라며 “일자리를 안정시키고 월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 국가책임제와 관련한 대통령 공약은 건강보험 본인부담률 10% 이내, 47곳인 치매지원센터 250곳으로 확대, 전문요양사 바우처제 도입,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등이다. 청와대는 복지부와 함께 이달 말까지 치매 국가책임제에 대한 구체적 시행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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