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여건에 처해있다. 게티이미지 뱅크
규모가 작은 동네 병·의원 직원은 언제쯤 ‘노동권 사각지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동계가 산업별 교섭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병원 노동자 최저보장 기준을 위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보건의료노동자 기본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달 27일 대한병원협회(병협)와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제안한 ‘노동기본권’을 위한 교섭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보건의료노조는 그간 공공병원, 일부 대형 민간 병원을 중심으로 산별교섭을 진행해왔는데, 이번엔 노조가 없는 소규모 병·의원까지 포함한 교섭을 제안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중소 병원·의원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모성보호법 등 노동기본권과 인권, 모성권을 보장하고 있는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섭”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날 중소 병·의원 노동자 4058명을 상대로
실태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상당수 응답자들은 휴일수당·주휴수당 미지급, 휴게시간 사용 제약·근로계약서 미작성 및 미교부, 출산휴가 미보장, 육아휴직 미보장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었다.
중소 병원 중에서도 특히 5인 미만 동네 병·의원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시행령으로 근로계약 체결과 휴게시간·주휴일 등 극히 일부 내용만 적용된다. 총 응답자 중 17.4%(692명)가 5인 미만 사업장이었으며, 이들 중 95%는 노조가 없다고 답했다. 병원 규모가 작아질수록 임금 관련 불이익 비율은 커지며, ‘임금 삭감 경험' 비율은 의원급이 가장 높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임금삭감 비율이 20.9%로 높게 나왔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가 교섭을 제안한 두 협회는 “협상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병협 관계자는 “교섭권이 없기에 권한이 없는데 교섭하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협상을 하는 게 맞는지 법적 타당성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용자 대표’로 나서기는 어려울 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보건의료산업 노동자 처우에 대한 최저기준선 도입과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작은 사업장 표준임금제’를 제안했다. 김 위원은 “작은 병원들은 수익을 내는 곳이 많기에 임금 지불능력이 없는 다른 ‘5인 미만’ 자영업자와 다르다. 노동자 최저 기준의 협약을 하는 등 노력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지자체가 노사와 협업해 △유급병가·상병수당 △휴일휴가제 등을 도입할 수 있는 최저보장기준 협약 수립을 추진해야한다고 봤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노푸른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의 차별 적용을 해소하는 적극적인 입법 검토가 필요하다”며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사업장 감독 및 시정조치도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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