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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연명치료 중단 너머, 더 나은 죽음을 생각하다

등록 2022-09-24 07:30수정 2022-09-24 20:24

[한겨레S] 커버스토리
더 나은 죽음을 생각하다

스스로 죽음 선택하는 조력존엄사법 등 재논의
연명치료 중단 의향서 이미 142만명
마지막 앞둔 환자 ‘돌봄’에 초점 둬야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명 ‘조력존엄사법안’(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조력존엄사’는 현재 법이 허용한 연명의료 중단(소극적 존엄사)과 달리 말기에 이른 환자가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적극적 존엄사’에 해당한다. 법안이 발의된 뒤 존엄사 논쟁은 다시 뜨거워졌다. 한쪽에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환자 가족의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조력존엄사’에 찬성하고, 의료계와 종교계는 생명 경시 풍조 확산 등의 이유를 들어 ‘조력 자살’이라며 반대한다.

존엄사를 둘러싼 갈등은 2008년 ‘김할머니 사건’ 이후 14년 만이다. 김할머니 사건은 폐암 조직 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의 자녀들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으나 병원 쪽이 거부해 소송을 낸 사건으로, 당시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한 환자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며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했다. 그리고 2016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돼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됐다. 법 제정 6년 만에 다시 시작된 존엄사 논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존엄한 죽음, 존중받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됐을까.

나길(활동명·61)씨의 삶은 자궁경부암에 걸리기 전후로 나뉜다. 1995년 자신이 34살, 자녀들이 3살, 9살 때였다. “당시는 ‘악성’이라고 하면 일단 죽는구나 생각하던 때라 남겨질 애들이 걱정됐다. 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고, 만약 건강해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했다.” 죽음을 가까이 접한 나길씨는 이후 위탁모로 활동하다 현재는 그룹홈을 운영하며 보호종료 청년들을 돕고 있다.

암 투병 이후 어떤 삶을 살지가 나길씨의 화두였다면, 최근엔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맞을지가 나길씨의 고민이다. 고민의 시작은 지인 남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다. 지인의 남편은 오랫동안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투석을 받았다. 최근엔 발에 난 상처가 낫지 않아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했고, 이후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급성 패혈증으로 심장이 멈췄다. “그를 살리려 의료진이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시피아르(CPR·심폐소생술)를 했다더라. 지인이 (남편이) 연명의료 거부 신청했으니 시피아르를 멈추라고 몇번이나 얘기한 뒤에야 의료진이 멈췄다더라”고 나길씨가 상황을 설명했다. 나길씨는 죽음의 순간에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난 4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에 서명했다. 나길씨의 소개로 가족과 지인 등 약 10명도 뒤따라 서명했다.

나길씨가 신청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작성된다. 19살 이상이면 누구나 자신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서명할 수 있다. 여기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환자를 뜻한다. 연명의료 중단에 서명하면 임종 과정에 놓였을 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할 수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죽음, 금기시하지 말고 드러내자

병원,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현재 142만2434명이 등록했다(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2년 8월 기준). 시행 한달 만인 2018년 3월 1만1204명에서 4년 반 만에 100배 이상 늘었다.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 의사를 남겨두는 연명의료 계획서도 9만5699명이 서명하는 등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임종 전까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는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교수와 김정선 세종충남대병원 교수 연구팀이 2018∼2020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만성 중증질환으로 사망한 222명의 임종 전 치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말기 환자 10명 중 4명(39.6%)이 임종 24시간 내에 중증 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임종 전까지 심폐소생술(27.5%)이나 인공호흡기(36.0%), 혈액 투석(0.5%)에 의지했다. 또 혈액검사(92.3%)를 받았으며, 승압제(혈압을 높이는 약)를 투여받은 환자도 62.6%에 이르렀다. 마약성 진통제 등 편안한 증상 조절을 받은 환자는 31.5%뿐이었다.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는 뇌사판정 후 장기기증을 하거나 임종 과정에 들었다고 의료진이 판단한 경우다. 하지만 임종 과정에 놓였다 하더라도,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환자의 의사표현이나 가족 전체의 동의가 없다면 연명의료는 중단할 수 없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나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더라도 연명의료 중단이 이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방광암에 걸린 80대 환자가 응급실에 살려왔는데, 심정지 상태였고 회생 가능성이 없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였지만 가족들의 요구로 (심장 치료제인) 에피네프린을 투약해 심장을 뛰게 했다. 하지만 결국 몇시간 뒤 사망했다.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보호자가 연명의료를 원하면 의료진은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9살 이상이면 누구나 자신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서명할 수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살 이상이면 누구나 자신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서명할 수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실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데는 환자보다 환자 가족의 의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망자 중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서류를 작성한 경우는 38%뿐, 나머지는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진술(34%), 환자 가족 전원 합의(28%)로 이뤄졌다(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022년 8월 현재).

2021년 2월 위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김우진(34)씨도 임종 4일 전까지 연명치료를 받도록 한 것을 후회한다. 병원에서는 남은 삶이 3개월 정도라고 밝혔고, 아버지는 더는 병원이 아닌 집에 있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우진씨 가족은 아버지를 설득했다. “치료를 포기하는 것 자체가 아버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땅에 묻으면서야 자식 욕심에 아버지를 고통스럽게만 한 게 아닐까 죄송했다.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해드릴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우진씨가 말했다.

말기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결정권을 가지려면 평소에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좋은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자신의 여명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고 임종을 맞거나 스스로 삶을 정리할 기회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에서 활동하는 여든살 박주택 웰다잉 강사는 “누구나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고 피하지 않게 되면,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프기 전 건강할 때 이야기를 나누는 걸 추천한다. 윤서희 웰다잉 강사는 “환자에게는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 말 꺼내기 어렵다. 건강할 때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갖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애 말 ‘좋은 죽음’의 조건(복수응답)으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 주지 않는 죽음’이 90.6%, ‘신체·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이 90.5%를 차지했다. 뒤이어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89%), 가족과 함께 맞는 임종(86.9%)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맞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사망한 이들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임종했다. 집에서 죽음을 맞은 이들은 16.5%뿐이었다(2022 통계청 잠정집계). 1998년 주택 내 사망자 비율이 60.5%, 의료기관은 28.5%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바뀐 셈이다.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은 익숙한 장소에서 가족의 돌봄 아래 죽음을 맞기도, 스스로 삶을 정리하기도,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치료+돌봄의 역할로

이 때문에 의료계는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조력존엄사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좋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논의 없이 죽음의 순간에만 논의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중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들이 제대로 된 돌봄을 받고 있는지, 고통은 없는지는 빠졌다. 조력존엄사법안도 돌봄 인프라 개선에 대한 고민은 건너뛴 채 병으로 환자가 고통받으니 편하게 죽게 하자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가 떠밀리듯 조력존엄사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15년 입원형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 급여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 암 사망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3%로, 영국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95%, 미국이 43%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다. 암을 포함한 호스피스 대상 질환(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사망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1.3%로 더 낮다.

이는 호스피스 기관의 수가 적은 탓으로 지적된다. 의료진이 환자의 신체적 통증을 즉각 조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입원형 호스피스를 선호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기관은 전국 87곳, 병상 수는 1482개뿐이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선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하려면 몇주를 기다리기도 한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익숙한 공간에서 머물며 의료진의 방문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국에 가정형 호스피스를 하는 기관 수는 37곳뿐이다(2022년 9월15일 현재). 호스피스 전문기관 입원은 말기암만 가능하며, 가정형 호스피스는 나머지 질환도 이용할 수 있다.

중환자실에서 10여년간 일하고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쓴 김형숙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병원의 역할을 치료뿐 아니라 돌봄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똑같이 죽음을 앞둬도 주변의 도움이나 조건에 따라서 마지막 시간을 받아들이는 의미와 삶의 질이 다르다.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건 좋은 죽음은 아니지만, 환자들을 위해 가정형 호스피스 등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와 돌봄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좋은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대병원은 2006년부터 임종실을 운영하고 있다. 임종실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가족들 곁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대병원은 2006년부터 임종실을 운영하고 있다. 임종실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가족들 곁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임종실 설치 의무화를

병원에서의 죽음을 맞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실패로만 보는 병원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시작점은 임종실 설치 의무화다. 보통 환자가 임종 단계에 이르면 대부분의 병원은 다른 환자의 동요를 우려해 환자를 일반 병실이 아닌 중환자실로 옮겨 연명의료를 하거나, 가족이 이를 거부하면 호스피스나 요양병원으로 옮기도록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전원이나 전실이 늦어지면 창고 같은 처치실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해 존엄한 죽음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오영은(가명·42)씨는 9월26일, 엄마의 첫번째 제사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휴대폰 사진첩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힘들지만, 작년 이맘때 엄마와 마지막 2박3일을 임종실에서 함께 보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임종실 자리가 난 덕에 다른 환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마·오빠 셋이서 시간을 보냈다. 완화의료 병동과 임종실에서는 통증 조절로 편안히 자는 듯이 가족 곁에서 가셨다. 이전엔 죽음이 무서웠는데 엄마의 죽음을 겪고 나니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됐다”고 영은씨가 말했다.

영은씨의 엄마처럼 통증을 조절하며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전국 호스피스 기관의 임종실은 현재 111개뿐이다. 종합병원·요양병원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2018년에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20년에도 같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소관위 심사 중이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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