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아무개(70)씨는 10년 전부터 단어가 자주 기억나지 않아 다른 사람과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 우연히 홍보물을 보고 찾아간 서울의 한 치매안심센터에서 그는 기억력 감퇴 증상은 있으나 치매는 아닌 ‘경도인지능력장애’ 진단을 받는다. 한자를 적거나 운동을 하는 등 센터가 치매 고위험군에게 제공하는 인지강화 수업에 참여하면서 일상엔 조금씩 변화가 찾아들었다.
최근엔 센터에 오는 다른 환자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게 됐다. 치매안심센터는 만 60살 이상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조기검진, 치매정보·교육 제공, 의료·복지서비스 연결, 보호자·가족 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06년부터 이러한 센터가 생겨났는데,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선언하면서 지역 기반 치매안심센터 확대 설립을 핵심 과제로 세웠다. 2022년 현재 전국 치매안심센터는 256곳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이씨 같은 치매 고위험군이나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위기다. 정부가 내년도 치매안심센터 운영 등 치매 돌봄에 투입하는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19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23년도 정부 예산 분석자료(보건복지부 작성)를 보면,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약 1898억원으로 올해 약 2077억원보다 179억원(8.6%)가량 줄었다. 그중 치매안심센터 운영 예산은 올해 1808억원에서 9.5% 줄어 1636억원이 배정됐다.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 예산은 498억원에서 327억원으로, 양로시설 및 요양시설 증개축과 개보수 사업도 114억원에서 74억원으로 줄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5월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노인 돌봄 및 치매 돌봄 체계에서 통합시스템 등을 통한 맞춤형 사례관리 강화”를 내세웠으나, 그 구심점 역할을 하던 센터 예산이 줄어들면서 ‘맞춤형 사례관리’ 강화를 현실화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지난해 기준 치매안심센터 직원 1명당 담당 어르신은 105.8명에 달하지만, 사업·인건비 등 운영 예산이 삭감돼 부족한 일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내년엔 치매안심센터 이용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치매안심센터 팀장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노년층) 검진이 두배 넘게 늘었는데, 이러한 추세면 내년 센터 이용자는 올해 두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운영 예산이 깎이면 (취약층 노인에게) 엠아르아이(MRI·뇌 핵자기공명영상검사) 검사비를 지원 못 해드릴 수 있고, 지급하던 기저귀도 못 드릴 수 있다. 치매 환자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치매안심센터 운영 예산 삭감에 대해 복지부는 “최근 4년 기준 예산 집행률이 80%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예산 집행률은 2019년 77.6%, 2020년 82.7%, 2021년 87.7%, 올해 6월 기준 39.8%다. 그러나 예산 집행률이 낮았던 배경에는, 사업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영향이 컸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직원 일부가 코로나19 진단 검사나 예방접종 업무로 파견을 갈 수밖에 없었고, 감염 우려로 치매 예방·진단·치료 프로그램 진행에도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서지원 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일정 기간 센터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고, 치매안심센터가 대부분 보건소에 있다 보니 사업을 최소화하는 대신 코로나19 예방접종·검사 업무에 직원들 투입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 확충, 양로시설 및 요양시설 증개축과 개보수 사업도 집행률이 낮아 예산이 삭감됐다. 복지부 쪽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부지 선정 및 공사 지연, 수요 부족 등 문제로 지난해 집행률이 30% 이하였다”고 말했다.
지난 1월13일 서울 동대문구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실에서 어르신들이 치매 예방 교육을 받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은 만큼, 과거 집행률만을 근거로 예산을 삭감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동원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은 “예산이 줄면 직원을 줄여 인건비를 줄이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혜숙 의원은 “치매 인구 100만명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집행률이 낮았다는 이유로 관련 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건 문제가 크다”며 “새 정부 국정과제에도 치매 노인 돌봄을 언급한 만큼, 구체적 계획과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치매관리법에 따라 2020년 수립한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 이행 외에, 윤석열 정부가 치매 국가 돌봄 체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비전이나 계획은 아직 없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여전히 갈길 먼 ‘치매국가책임제’
문재인 정부가 2017년 9월 발표한 ‘치매 국가책임제’ 시행으로,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고 환자 부담 의료비를 줄이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의료·복지서비스를 연결해 질 높은 국가 돌봄을 제공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다.
지난해 국립중앙의료원이 작성한 ‘국가치매관리정책(2017~2021년) 성과 분석 연구’ 보고서를 보면, 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한 치매 환자 가운데 경증 환자 비율인 치매 조기발견율은 2016년 62.6%에서 2021년 72.3%로 상승했다. 센터 이용 전후 경증 환자의 인지기능(19.15점 → 20.50점)과 기억감퇴(7.62점 → 6.42점), 우울(6.55점 → 5.05점) 수준이 개선되는 등 조기발견으로 인한 효과도 눈에 띈다. 2017년 중증 치매 환자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이 10% 수준으로 낮아졌고, 2018년부터는 경증 치매 환자도 노인장기요양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치매 환자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한 수요자 중심의 질 높은 서비스 제공이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에는 한계가 컸다. 지난해 치매안심센터 등록 환자는 50만2933명으로 만 60살 이상 치매 추정 환자 91만여명 대비 55.2%로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등록 뒤 센터를 이용하는 비율은 지난해 67.4%에 그쳤다. 2018년 43.2%→2019년 54.2% → 2020년 64.1%로 센터 이용 비율이 차츰 늘긴 했지만, 여전히 치매 환자 3명 중 1명은 국가 돌봄체계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력과 예산 투입도 부족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 10월호에 실린 ‘치매안심센터 운영 현황 및 정책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20년 치매안심센터 예산 49.6%가 인건비였고, 사업별 예산 비율은 △상담 및 등록(10.0%) △치매 인식 개선 및 교육·홍보(4.5%) △조기 검진(4.1%) △치매 예방 및 관리(3.6%)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치매안심센터를 기반으로 환자를 꾸준히 관리하고, 적정한 돌봄·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연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지원 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은 “센터 직원이 치매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 관리가 많지 않았다”며 “이러한 역할을 하려면 의료·복지 서비스를 연결해줄 사회복지사 등 전문인력을 확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