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조귀동의 경제유표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 유독 공기업이 많은 이유는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가 2020년 국회 예산정책처에 제출한 보고서(‘해외 주요국 공공기관 평가 및 관리방안’)에서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공공기관 수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363개로 일본(120개)의 3배에 달했다. 미국(67개)은 물론 스웨덴(43개), 프랑스(63개)도 그 수가 40~60개에 불과했다. 영국(256개)만 그나마 한국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다른 선진국의 공기업이 적은 이유를 박 교수는 미국처럼 아예 시장에 맡기거나 아니면 스웨덴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정부 소속 공기업 ·공공기관 수

사회복지시설 운영 방식
‘문재인 케어’ 논쟁과 공동구매의 한계 문제는 고도성장과 풍부한 생산가능인구를 전제로 짜인 공동구매 방식이 저성장·고령화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위 중산층에 맞춘 공동구매 방식도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됐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고 이동성이 낮아지면서 ‘중산층 만들기’를 의도한 공공재 공급이 정치적으로 어려워졌다. 또 기본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대신 고급 서비스는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추가 비용을 내고 쓸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공동구매 방식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의 의료보장 확대 정책을 윤석열 정부가 포퓰리즘이라 공격하면서 촉발된 논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건강보험은 도입 이후 줄곧 보장 범위가 확대됐다. 그런데 이제 ‘축소’가 쟁점이 된 건 2023년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이 임금(보수월액)의 7.09%로 오르는 등 가입자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 운영이 중단되는 등 가급적 필수 의료 공급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된 현 의료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_______
중산층 붕괴로 사회보험 기반 흔들린다 재정 확대는 쉽지 않다. 김사현 대구대 교수 등이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이용해서 분석한 증세에 대한 태도 추이(‘한국인 복지태도의 변화양상’, 2021년)를 보면 2013년 7점 만점에 4.46점이던 ‘증세 찬성’ 여론이 2016년 4.23점, 2019년 4.01점으로 하락했다. 2020년 연세대 복지국가센터 조사에 따르면 복지를 위한 증세에는 찬성하지만 법인세(53.7%)나 재산세(43.3%) 인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주였다. 소득세 인상은 15.7%, 소비세 인상은 13.7%만 동의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한국의 사회보장체제에서 세 집단이 서로 다른 여건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한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상위 중산층은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을 바탕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한편 공적 사회보험이 이를 보완한다.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공적 사회보장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이나 영세자영업자는 엄격한 수급 조건이 적용되는 공공부조만 바라본다. 공적 사회보험의 기반이 흔들리는 방식을 살펴보면 첫 번째 집단과 두 번째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두 번째 집단의 불만이 쌓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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