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안에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최대 90%까지 높이기로 하고, MRI와 초음파 촬영의 건보 적용 횟수도 줄이기로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부가 올해 안에 과다한 외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른바 ‘의료 쇼핑’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최대 90%까지 높이기로 하고, 뇌 자기공명영상(MRI)과 복부 초음파 촬영의 건강보험 적용 횟수도 줄이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현행 8%인 건강보험료율 법정 상한선을 올리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등 건강보험 수입 구조 개편에도 나선다. ‘문재인 케어’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비판해 온 윤석열 정부가 환자의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건보 재정 안정화 방향을 확정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보장성 강화 기조만 흔들뿐 근본적인 재정 안정화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제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이런 내용의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8일 공청회에서 초안을 공개했는데, 그 내용을 확정했다.
복지부는 연간 365회 넘게 외래 진료를 보면, 전체 진료비 대비 본인부담률을 현재 평균 20%에서 90%까지 올리는 ‘외래의료이용량 기반 본인부담률 차등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실손보험으로 실질 본인부담률이 0~12%까지 낮아지고 건보공단의 재정 부담은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이용 모니터링과 실손보험 상품 개편도 추진하기로 했다.
암 등 중증·희귀질환자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5∼10%로 낮게 적용해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산정특례제도’ 또한 손본다. 질환과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합병증은 특례 적용을 제외하고, 105개 경증 질환부터 제외 대상을 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특례 질환과 관련성이 낮은 질환의 예시로 디스크를 언급했다.
복지부는 2017년 8월 문재인 케어 이후 건강보험이 적용된 엠알아이와 초음파 검사 급여 기준을 강화한다. 현재 두통이나 어지럼으로 신경 검사를 받을 때 뇌·뇌혈관 엠알아이를 촬영하면 최대 3회까지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인정해주지만, 신경 검사상 이상 소견이 있는 경우로 범위를 한정하고 횟수도 2회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초음파 검사는 같은 날 여러 부위를 촬영할 때 횟수 상한을 제한하고, 상복부 초음파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식이다. 구체적인 기준은 전날인 27일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로 꾸려진 ‘엠알아이·초음파 급여기준개선협의체’에서 마련해 추후 건정심 심의와 고시 개정 등을 거친다.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장기 입원에도 제동을 건다. 현재 요양병원에 120일 넘게 장기 입원하면 본인부담금 상한액이 더 올라가는 소득 하위 50%와 달리, 소득 상위 50%는 입원 일수를 넘겨도 똑같은 상한액이 적용된다. 이에 정부는 소득 상위 50%에도 별도 상한을 적용해 장기 입원 시 이들의 부담 한도를 현행 289만∼598만원에서 375만∼1014만원까지 높인다.
고질적인 과잉 진료와 의료비 증가 원인으로 지목돼 온 제도·구조 개선 방안은 향후 5년간 장기 과제로 분류됐다. 정부는 △현행 행위별수가제(진료 행위마다 가격을 매겨 이를 합산해 의료비 정산) 개편 △병상·의료전달체계 개선 △비급여 관리 △보험료 상한(8%) 인상 등 수입구조 개편 등은 8월까지 연구를 거쳐 9월 발표할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에 반영할 계획이다.
다만 복지부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재정 절감 규모를 제시하기가 마땅치 않다”며 이번 대책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얼마나 아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의료관리·예방의학)는 “고령화로 인한 급격한 의료비 상승을 최소화하려면 비급여를 잘 관리하면서 의료기관 간 전달체계를 확립하고 과잉 진료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불제도를 개선하는 3개 축이 형성돼야 한다”고 이번 대책의 한계를 짚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과도한 병상 수를 줄여 불필요한 입원이 줄면 11조원, 실손보험으로 인한 과잉진료를 해소하면 5조~10조원, 동네의원에서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면 5조원,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을 찾지 않도록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면 5조원을 줄일 수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