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원 숨 일꾼(왼쪽 둘째)과 숨 회원 등이 케이티엑스 오송역에서 대중교통 체험을 하고 있다. 인권연대 숨 제공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바로 바뀌면 좋겠지만 사회 곳곳의 불편과 불합리를 기록하고 쌓는 것도 의미 있죠. 그게 세상을 바꾸는 홀씨가 될 테니까요.”
4년째 ‘도시 쏘댕기기’를 하는 인권연대 숨 일꾼(활동가) 이구원(33)씨의 말이다. 이씨는 팔다리 없는 장애로 태어나 선교사를 거쳐 지난 2021년부터 인권 시민단체 인권연대 숨의 일꾼으로 일한다. 숨은 2012년 3월 충북 청주에서 창립한 단체로 인권 관련 교육, 평화기행 등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세상에 알리는 단체인데, 활동가를 일꾼으로 부른다.
‘도시 쏘댕기기’는 숨의 활동 프로그램으로, 일꾼·회원과 도시·교통·사회 전문가, 지방의원 등이 생활공간을 두루 쏘다니며(쏘댕기며) 도시의 민낯을 인권연대 숨의 누리집에 기록하고 알린다. 2020년 11월부터 시작해 15차례 진행했는데, 이씨는 숨 활동가가 되기 전부터 빠짐없이 참여한 ‘도시 쏘댕기기’ 산증인이다.
‘도시 쏘댕기기’는 지금까지 중앙동 도시 재생, 문암 생태공원, 충북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북이면 소각시설 밀집지역, 사직동 재개발 구역 등 청주 구석구석은 물론 이웃 음성군까지 다녀왔다. 저상버스·고속철도(KTX)·장애인 콜택시 타기 등 체험도 진행했다. 이은규 인권연대 숨 대표는 “이구원 일꾼을 중심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생생한 경험을 기록하고 나누려고 쏘댕기기를 한다. 세상을 바로, 제대로 아는 답은 현장”이라고 말했다.
이구원 숨 일꾼이 저상 시내버스 탑승 체험을 하고 있다. 인권연대 숨 제공
쏘다니며 보고, 느낀 것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특히 이구원 일꾼의 생생한 지적과 기록은 ‘장애인 이동권 보고서’라 할 만하다.
지난달 15일 저상버스·열차 등으로 청주·음성을 오간 ‘음성군 쏘댕기기’ 기록을 열었다. “11시10분 청주 상당공원에서 747번 저상버스를 타고 오송역으로 갔다. 시외버스는 저상버스가 없어 기차를 타야 한다. 30~40분에 한 번꼴인 저상버스를 탔는데 장애인 의자가 접히지 않아 난감했다. 조금 씁쓸했다”, “무궁화호 객실 절반 정도는 휠체어 이용객이 탑승할 수 없다. 열차 문이 좁아 리프트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장애인 콜택시는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지만 일요일엔 운행하지 않아 불편하다”.
일꾼·회원·전문가·지방의원 등
장애인 이동 불편 경험 나누고자
청주 구석구석 15차례 ‘쏘댕기기’
일일이 기록 남겨 개선 이어지기도
“휠체어 탑승 가능 시외버스 드물어
저상버스 장애인 의자 안 접혀 난감”
지난해 10월15일 ‘문암 생태공원 쏘댕기기’ 후기에선, “저상버스 리프트와 정류장 간격이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차로 20~30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 이상 걸려 도착했다.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적었다. 그는 “휠체어 이용인이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전국에 7대뿐이고, 저상 시내버스도 개선 부분이 많다”며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상상한다”고 밝혔다.
이구원 숨 일꾼(맨 왼쪽)과 숨 회원 등이 청주 사직동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인권연대 숨 제공
지난 2021년 11월 ‘청주 탑동 재개발 지역 골목길 쏘댕기기’ 기록은 씁쓸하다. 그는 “장애인 당사자로 골목길·구시가지보다 신축·재개발 지구를 선호하게 된다. 개발이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을 내쫓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내가 자유롭게 이용할 곳이 늘었다는 안도감이 들곤 한다”고 적었다.
‘도시 쏘댕기기’가 꼬집은 문제가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문암 생태공원 쏘댕기기에서 장애인 등의 출입을 막는 무심천 하상도로 화단 설치 문제를 지적했는데, 청주시는 관련 예산을 마련해 바로잡기로 했다. 박승찬 청주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몇 차례 ‘도시 쏘댕기기’의 일원으로 동행했는데 함께 걸으며, 해보고, 느끼니까 보이는 게 많았다.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돼 앞으로 늘 함께할 생각”이라고 했다.
숨이 지난 1월 이재헌 아보리스트(수목관리전문가)와 함께 진행한 청주 중앙공원·중앙로 가로수 가지치기 진단, 소각장 밀집지역 북이면 주민과의 대화 등은 지적을 넘어 대안 제시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완희 청주시의회 의원(민주당)은 “‘도시 쏘댕기기’는 참여 시민의 본보기로 늘 후기를 눈여겨본다. 다양한 분야의 ‘쏘댕기기’가 생기고, 이어질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해 조례·지원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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