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한 병원에서 전화로 비대면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남 신안군의 연륙도인 자은도에 사는 60대 김성복(가명)씨는 한달에 한번 2시간30분씩 버스를 타고 목포시 한 의원에 당뇨약을 처방 받으러 간다. 섬 안에 의원과 보건지소가 있지만 당뇨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내분비내과 전문의를 만나려면 도시로 가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이용지표에 따르면, 지역 전체가 섬인 신안에는 김씨처럼 당뇨병 진단을 받은 적 있는 환자가 6500여명(2021년·만 30살 이상 기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중 대다수가 목포·광주의 병·의원을 찾아 먼 길을 오간다는 게 신안군과 전남도 설명이다. 문권옥 전남도 감염병관리과장은 “도서 지역 등은 다른 지역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료진이 부족하다. 환자들과 전문의를 비대면으로 연결해 진료·처방할 제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는 2020년 2월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 유행 동안 전국 의료기관에서 전화 통화를 통한 진료·처방을 허용한 뒤 한시적으로 시행돼왔다. 이어 그해 12월에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감염병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 이상일 경우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다만 방역 당국은 다음달 중 위기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내릴 예정이다. 비대면 진료를 상시화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이 없으면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방식의 안전성과 약 배송 부작용 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반면 플랫폼업체 등 의료산업계는 비대면 초진부터 법으로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비대면 진료 허용을 핵심으로 한 의료법 개정안 5건이 안건으로 올렸지만, 한 건도 논의하지 못한 채 회의를 끝냈다.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 차가 커 이날 심사를 마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강기윤 소위원장(국민의힘)이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제출된 개정안들은 모두 의료인이 의료기관 밖에 있는 환자에 대해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 허용을 규정하고 있다. 기존 의료법에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고 정한 것과 달리, 전화 통화 등을 통한 진료에 길을 터주는 것이다. 개정안 가운데 비대면 의료 행위를 ‘관찰·상담’으로 한정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을 빼면, 나머지 개정안들은 모두 진단·처방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의료산업계가 강력히 요구해온 ‘초진부터 비대면진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안은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안 뿐이다. 강병원, 신현영, 최혜영(이상 민주당) 이종성(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들은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한 재진 환자”로 대상을 제한했다. 다만 초진은 섬·산간 등 의료기관이 부족한 곳이나 장애인 등에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코로나19로 물꼬를 튼 비대면 진료가 개정안을 통해 일상화하면 벽지 환자, 고령자·장애인 등의 건강관리가 쉬워질 거라고 본다. 만성질환자가 약을 추가로 처방 받을 때마다 병·의원을 찾는 수고가 줄어든다 점도 법 개정 필요성으로 꼽는다. 실제 복지부가 코로나 대유행 기간이던 2020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한 비대면 진료 736만건을 분석한 결과, 고혈압과 비합병증 당뇨가 각각 15.8%, 4.9%를 차지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비대면진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직접 측정한 혈압·혈당이나 문진에만 의존해 건강 상태를 판단하면 오진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약사 출신인 전혜숙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1일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의료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은 화면을 통해 환자를 진료하고, 배달앱 등을 통해 (의약품을) 배달하는 건 국민 건강에 큰 위해”라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와 맞물려 있는 ‘약 배달’ 부작용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현행 약사법은 약사가 약국 점포 안에서만 약을 팔도록 한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면 택배나 배달 플랫폼을 통한 약 배송을 허용하는 법 개정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 경우 배송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대형 약국에만 환자가 몰리며 지역의 중소 약국이 고사한다는 게 약사회 등의 주장이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대외협력실장은 “약국을 통해 건강 정보와 의약품 상담을 받으며 건강을 지키는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짚었다.
환자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울 여지가 있는 진료비 체계는 또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는 비대면 진료를 한 의료기관에 일반 진료 수가의 30%를 추가로 인정해줬다. 의사들이 기존 업무에 활용하지 않던 컴퓨터·통신기기 등을 쓰는 수고를 수가에 반영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환자 부담은 일반 진료와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할 경우, 환자 부담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달 21일 법안소위에서 “(비대면 진료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교통비·이동 시간이 절약되는 이점이 있다. 그런 부분을 환자 본인 부담률에 반영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계는 사실 현재보다 좀 더 (수가를) 높여주기를 비공식적으로 희망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의원들은 “의사가 환자를 더 볼 여유가 생기는 셈이니 수가를 (오히려) 낮춰야 한다”(강기윤 의원), “병원에서 하던 검사들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면 수가와 환자 부담 모두 대폭 낮춰야 한다”(전혜숙 의원)는 지적을 여야 가리지 않고 쏟아냈다.
올해 개정안을 통과시켜 내년 중 비대면 진료를 상시화하려던 복지부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다음 법안소위가 언제 열릴지 정해지지 않은 데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각 상임위원회가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는 법안의 심사를 꺼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개정안 통과 전까지는 정부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 허용 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