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설립 20주년을 맞는 녹색병원 의료진이 지난 8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병원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난 11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 중랑구 면목동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한 녹색병원에 구급차 한 대가 응급환자를 태우고 들어왔다. 80대 고령으로 보이는 여성 어르신이었다. 119 대원들이 환자를 들것에 태워 신속하게 응급실로 옮겼다. 할머니는 자택에서 요양 중이던 와상환자(침상에 누워만 있는 환자)였다. 침대에서 낙상해 골절상을 입었다고 했다. 한눈에 봐도 앙상하게 여윈 두 다리가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환자모니터링장비를 부착하고 몸 상태를 살폈다. 이어 환자의 다리에 흔히 ‘반깁스’로 불리는 스플린트(splint, 부러진 뼈나 관절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고정하는 결박 장구)를 한 뒤 엑스선 사진을 찍기 위해 이동식 침대로 촬영실로 옮겼다. 입원 치료 여부는 염증 수치 등 환자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보고 결정한다고 했다. 녹색병원 응급실에는 평일엔 40명 안팎, 주말과 휴일에는 60명 안팎의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온다고 한다. 여기엔 골든타임을 다투는 초응급 환자도 포함된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이 받은 보상금으로 설립된 녹색병원의 복도 벽면에 병원 설립에 도움을 줬던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건강한 몸, 건강한 노동,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원진재단 부설 녹색병원(병원장 임상혁)이 오는 9월20일 개원 20주년을 맞는다. 녹색병원은 현재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에 300개 병상을 갖추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36명의 전문의를 포함해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의료·복지 인력과 사무직원까지 모두 600여명이 일하는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진료과목도 가정의학과, 외과, 종합내과, 치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심장내과, 신경외과, 신장내분비과, 직업환경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21개에 이른다. 2023년 9월 현재 230여명의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수술도 하루 평균 4건씩 이뤄진다.
스무살 청년이 된 녹색병원이 또 한번 도약의 발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영세·비정규·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등 의료취약 노동자의 노동인권 및 건강을 지원하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지원”하는 전태일의료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오는 20일 개원 20주년 기념일에 건립 선포식을 하고 건립위원회가 공식 출범한다. 지난 5월 녹색병원은 서울 청계천로에 있는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양길승 원진재단 이사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황동환 원진산업재해자협회 이사장 등이 공동제안자로 참여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녹색병원 주차장에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해 설립된다. 2024년에 착공해 2026년에 개관할 예정이다. 전태일의료센터에는 여러 이유로 건강을 해친 노동자가 “제때, 제대로 된 전문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뇌심혈관센터, 응급의료센터, 근골격계질환센터 등 전문 의료시설을 둘 예정이다. “단식, 고공농성 등 투쟁 현장에서 긴급이송된 노동자들의 안정된 회복 치료가 가능한 진료 환경을 구축하고, 의료 접근이 취약한 노동자의 수술 및 입원, 재활치료 등 의료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30개 병실 규모의 병동을 개설한다.
녹색병원 7층 재활치료센터에서 환자들이 탁 트인 전망을 보며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녹색병원은 원장실이 건물 맨 아래인 지하 2층에 있다. 20평형대 아파트 거실 넓이의 좁은 공간에 벽면 책장 2개와 업무용 책상, 접객 및 회의용 둥근 탁자와 의자 6개가 놓였다. 재단사무실과 기획조정실, 대강당도 같은 층에 있다. 구내식당과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는 지하 1층보다도 밑이다. 맨 위층인 7층(4층이 없어 실제로는 6층)엔 통유리로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재활치료센터가 자리 잡았다. 전문 치료사 27명이 산업재해, 뇌질환, 노인성 질환, 수술 후 회복 과정 등으로 몸이 불편한 환자들의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를 전담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도 7층에 있다. 업무 공간의 이런 배치는 녹색병원이 지향하는 가치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박성진 재활치료실 부실장(물리치료사)은 녹색병원에서만 18년째다. 이직이 잦은 직종에서 흔치 않은 장기근속자다. 그는 “처음엔 생계 수단으로서의 직장으로만 여겼는데, 병원의 설립 취지와 가치관이 생계 이상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기회도 있었지만 지금껏 녹색병원에 몸담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9월20일 병원 앞 주차장에서 의료진이 개원기념식을 마친 뒤 찍은 사진. 녹색병원 제공
녹색병원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동자 권리와 보편적 건강권 보장을 위한 분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녹색병원의 탄생 자체가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인정 투쟁의 결실이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연대가 산파 구실을 했다. 그 연원과 역사는 녹색병원 곳곳에 유전자처럼 새겨졌다. 병원 정문 입구의 바닥에는 2개의 황동 명판이 나란히 부착돼 있다. 하나는 2003년 9월20일 개원 때 새긴 일종의 출생 표지다. 한글 아래 영문이 병기된 문구는 이렇다.
“녹색병원. 이곳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일궈낸 전문의료기관이다. 2003.9.20”
그 옆에는 녹색병원이 들어선 장소의 유래를 말하는 정사각형 명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YH무역 공장이 있던 자리로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1979년 마지막 투쟁으로부터 40주년. 2019.8.11 녹색병원”
녹색병원 정문 입구의 바닥에 병원의 유래를 새긴 황동 명판.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녹색병원 건물은 옛 와이에이치(YH)무역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녹색병원 지하 2층에는 ‘기억의 공간’이 있다. 복도의 양쪽 벽면에 녹색병원이 탄생하기까지 원진레이온과 와이에이치무역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 과정과, 병원 설립 이후 공익활동의 이모저모를 담은 사진과 홍보물 패널들을 전시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며 산업화의 고삐를 죄던 1970대. 서울 청계천 봉제공장에 청년 노동자 전태일과 앳된 얼굴의 재봉사들이 있었다면, 서울 변두리 면목동의 가발공장엔 여성노동자 김경숙과 그의 노동자 친구들이 있었다. 가혹한 노동 착취형 공장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녹색병원 지하 2층 복도에 와이에이치무역 노동자 농성 중 경찰 폭력에 숨진 김경숙 열사의 이야기가 전시돼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70년대 들어 경기도 미금(현 남양주)의 한 공장 노동자들과 퇴직자들의 몸에서 심각한 이상 징후가 잇달았다. 사지 마비, 언어 장애, 다발성 신경염, 호흡 곤란, 정신 이상, 관상동맥 질환, 콩팥 손상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대다수 환자가 별다른 치료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직장에서 내몰렸다. 중대 산업재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문제의 공장은 인견사 제조업체 원진레이온이었다. 원진레이온은 1960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한-일 국교수립 협상 과정에서 일본 회사 ‘동양레이온’의 노후 설비를 인수받아 1966년 설립됐다. 목재에서 천연섬유질(셀룰로스)을 추출하고 화학적으로 가공해 비스코스레이온을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이황화탄소(CS₂)가 질병의 주원인이었다. 이황화탄소는 색깔과 냄새가 없는 맹독성 화합물이다. 중독되면 완치가 불가능해 약과 재활치료로 증상을 다스리는 정도다.
1980년대 이황화탄소가 분출되는 환경에서 일하던 원진레이온 공장 노동자 모습. 당시 노동부는 이황화탄소가 기준치를 웃돌았는데도 원진레이온에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해줬다. 한겨레 자료사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독성 물질 중독은 1987년 강제 퇴사 노동자들이 정부에 진정서를 내 정밀검진을 요구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성화 봉송로를 차단하고 자신들의 상태를 알리는 투쟁도 계획했다. 1988년 5월 창간한 ‘한겨레신문’은 한국 언론 중 최초로 원진레이온 사태를 7월22일치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요구 일부를 수용하는 정도에서 문제를 봉합하고 직업병 유소견자 검진에 나섰다. 첫해에만 35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조직적인 산업재해 인정 투쟁이 성공한 사례였다. 이듬해인 1989년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노동자 협의회’가 결성됐고, 직업병 인정 건수도 계속 늘었다.
한겨레신문이 1988년 7월22일 처음으로 보도한 원진레이온 산재 사건. 한겨레 자료사진
원진레이온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집단 산업재해 기록을 남긴 채 1993년 7월 전격 폐업했다. 회사는 문을 닫았지만 노동자들의 고통이 끝난 건 아니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노조를 비상대책위로 개편하고 서울 명동성당에서 무기한 농성 시위를 이어갔다. 노동자·회사·정부가 모인 노사정 3자 협의 끝에, 출자금 50억원으로 보상기금 조성과 비영리 공익법인 설립에 합의했다. 1993년 원진직업병관리재단(원진재단)이 그렇게 출범했다. 1999년 재단은 경기 구리에 ‘원진녹색병원’을 세웠다. 이어 2003년 9월에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훨씬 큰 규모의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을 신설했다. 두곳 모두 원진레이온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 나아가 지역주민과 빈곤층, 의료 취약계층까지 보듬는 병원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79년 8월9일 서울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와이에이치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하고 있다. 이들의 저항은 이틀 만에 무참히 진압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에 녹색병원이 들어선 장소도 상징적이다. 와이에이치무역은 1960~70년대에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던 중견기업이었다. 경기 호황과 정부의 수출 지원책에 힘입어 1970년대 초에는 종업원이 최대 4000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창립자의 외화 밀반출과 무리한 사업 확장, 1978년 제2차 석유 파동으로 경영난이 닥쳤다. 회사는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듬해인 1979년에는 일방적으로 폐업 공고를 했다. 이에 맞서 여성 생산직 노동자들이 그해 8월 서울 마포구 신민당 중앙당사에서 회사 정상화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당시 신민당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시위 사흘째인 8월11일 새벽 2시, 박정희 정권은 무장 경찰 병력을 투입해 폭력 진압을 감행했다. 김영삼 대표와 국회의원들까지 폭행을 당했고,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현장에서 숨졌다. 스물두살. 앞서 1970년 11월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절규하며 제 몸을 불살랐던 나이와 같았다. 와이에이치무역 사태는 박정희 정권 몰락에 불을 댕겼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뿐 아니라 신민당까지 거센 항의 농성을 이어갔다. 박정희 정권은 10월4일 국회에서 김영삼 신민당 대표의 의원직을 제명했고, 신민당은 소속 의원 전원 사퇴로 맞섰다. 부산·마산(부마 항쟁)을 비롯해 전국에서 유신 반대 시위가 번졌다. 그리고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다.
2019년 7월 서울톨게이트 요금수납원 고공농성 시위 현장에 녹색병원 의사들이 찾아가 진료하는 모습. 녹색병원 제공
녹색병원은 내원·입원 환자들의 진료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의료 취약자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공익사업을 다양하게 벌여왔다. 올해에는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 의료비 지원 사업, 의료취약 노동자 건강 지원 사업(건강한 동행), 취약계층 건강권 증진 지원 사업(건강 방파제) 등에 힘을 쏟고 있다. ‘건강한 동행’ 사업에는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건설노조 등과의 업무 협약, 중랑구 자원재생(폐지 수거) 어르신 건강 지원, 마루 시공 노동자 의료 지원 등이 포함됐다. 특히 미등록 이주 청소년 의료비 지원 사업은 녹색병원이 환자의 경제력이나 신분, 국적을 따지지 않고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는 인도주의적 실천으로 꼽을 만하다.
한국에서도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 힘든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체류 기한을 넘긴 서류 미비(이른바 불법체류) 외국인이 크게 늘고 있다. 그 대다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업종에 종사할 뿐 아니라, 본국에서 데려왔거나 한국에서 출산한 자녀가 있어도 출생 신고나 외국인 거주 신고를 하지 못한다. 성인뿐 아니라 어린 자녀가 아파도 경제적 부담과 강제추방을 우려해 병원 이용을 꺼린다. 자칫 병을 키울 수도 있다. 녹색병원은 이런 글로벌 시대의 의료 사각지대에도 주목했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도 녹색병원을 많이 찾는다.
2018년 7월 이집트 난민신청자가 녹색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며 병원 소속 사회복지사와 대화하고 있다. 녹색병원 제공
몽골에서 온 간조릭(55)도 그중 한명이다. 다른 병원에서 두차례 뇌수술을 받은 뒤 녹색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한쪽 몸이 마비된데다 언어 기능이 현저히 둔해졌다. 지난 9일, 간조릭의 아들과 한국말이 능숙한 조카를 만나 딱한 사연을 들었다. 2019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간조릭은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취업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취업이었다. 육체노동자 대다수가 겪는 근골격계 질환이 있었지만 최근 4년 새 건강에 큰 이상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6월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ㅅ의료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당뇨 합병증이 의심돼 입원 치료가 결정됐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입원 첫날 저녁 9시께 간조릭이 침대에서 낙상해 머리를 다치면서 뇌출혈이 발생했다. 밤 11시께 응급 수술을 했다. 뜻밖의 소식을 들은 보호자들이 자정께 병원에 도착했다. 설상가상으로 첫 수술 뒤에도 뇌출혈이 멈추지 않아 하루 만에 재수술을 했다.
보호자들은 환자가 소변줄이 불편해 빼려고 할 경우 억제대(중증 환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결박 장구) 사용에 동의했으나, 환자가 낙상할 당시 억제대는 착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 쪽의 과실 책임을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고도 했다. 병원 쪽은 간조릭의 본디 내원 목적인 당뇨에 대해서만 치료비를 지원하고 다른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건강보험이 없는 간조릭은 두차례 수술과 입원 치료비 4900만원을 고스란히 자비로 부담하고 두달 만인 8월 하순께 퇴원했다. 몽골에 있는 집을 팔고 지인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빌렸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재활병원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치료비가 너무 비쌌고, 요양병원은 이름만 병원이지 환자를 맡길 수 없을 만큼 위생과 서비스가 엉망”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간조릭의 조카가 녹색병원을 떠올렸다. “친구들이 자녀가 아파 녹색병원을 찾았을 때 함께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입원 결정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녹색병원도 몽골 출신의 빈털터리 이주 노동자 환자를 조건 없이 품었다. 간조릭의 조카는 “여러 병원을 알아보고 상담도 했는데 녹색병원이 바로 우리가 가장 원하는 곳이었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삼촌이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마비됐던 팔다리가 조금씩 움직이고, 마음도 훨씬 편해졌어요.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님들도 친절하셔서 희망이 엄청 많이 생겼죠. 감사합니다.”
병원 쪽은 보건복지부 지정사업인 ‘외국인 근로자 등 의료지원 사업’에 근거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녹색병원은 의료와 사회복지 서비스의 연계를 통한 보편적 건강권 실현에 가장 적극적인 병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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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과 직원들도 병원의 정체성과 지향에 뜻을 같이하며 원내외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녹색병원은 모든 직원의 정규직 채용이 원칙이다. 병원 쪽은 “정년 퇴직자 일부가 촉탁계약직으로 일하고 육아휴직자를 대신한 기간제 근무자가 일부 있지만, 용역계약 노동자는 한명도 없다”고 밝혔다.
전태일 분신 사망 50주기를 앞둔 시점이었던 2020년 10월21일, 녹색병원이 서울 종로5가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노동자와 사회 약자의 아픔을 함께하는 병원, ‘차별 없는 진료’를 실천하는 병원이 되겠다는 ‘전태일병원 선언’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녹색병원 직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것 중 하나가 녹색위원회다. 각 부서에서 저연차 젊은 직원 한명씩을 선임해 1년 단위로 활동한다. 병원의 운영과 공익활동, 기획행사를 위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학습도 병행한다. 2004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0년째다. 이종훈 사무처장은 “병원 조직은 업무의 전문화, 세분화, 교대 근무의 특성상 서로 다른 부서끼리 소통할 기회가 적은데, 직원들이 녹색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병원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한다. 다양한 직종과 과의 종사자들이 서로 알게 되면서 부서 간 소통의 다리가 놓이고 협업이 원활해지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62병동의 백채은 간호사도 ‘2023년 녹색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백 간호사는 2020년 9월 첫 직장인 녹색병원에 들어와 꼬박 3년이 지났다. 지난 9일, 낮 근무조로 일하던 그에게 바쁜 짬을 쪼개달라고 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지방에서 간호대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합격했어요. 엄청 기쁘고 뿌듯했죠. 서울 면목동 주민인 이모한테서 ‘녹색병원 자랑’을 듣기 전까지는 녹색병원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병원의 설립 배경과 지향하는 가치에 마음이 끌려서 대학병원을 포기하고 녹색병원을 선택했어요.”
그러나 막상 부닥친 의료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엔 현장 경험이 부족한데다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나이팅게일 선서도 했지만, ‘정말 할 수 있을까?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차츰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선서의 의미와 녹색병원의 정신이 더 다가왔어요.”
그는 올해 녹색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읽은 책 가운데 법학자 김두식 교수가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주제로 쓴 ‘불편해도 괜찮아’(2010, 창비)와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2020 개정판)이 특히 감명 깊었다고 했다.
녹색병원은 ‘환자가 찾아오는 병원’에서 나아가 ‘환자를 찾아가는 병원’을 지향한다. 의료 접근의 문턱이 높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건강 지원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지역 주민을 포함한 시민사회와 연대의 폭을 넓히는 이유다. 지역건강센터는 연대 네트워크의 한 축이다. 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 어려움, 경제적 부담, 재활과 사회 복귀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의료와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준다. 정애향 의료사회복지사는 “녹색병원이 이런저런 사업을 워낙 많이 해서 업무량이 정말 많다. 그러나 우리 병원은 의료와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곳이랄까. 그런 점에서 사명감과 책임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전태일의료센터에 당신의 벽돌 한장
녹색병원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총 19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원진재단과 녹색병원이 그중 140억원을 출연하고, 나머지 50억원은 시민들의 ‘전태일 벽돌 기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기금 기부자는 전태일의료센터 추진위원회 위원이 되며, 완공 뒤에는 ‘국민위원회(가칭) 위원’으로서 전태일의료센터의 운영과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개인 기부는 1계좌 10만원, 단체는 100만원. 추진위원이 되면 감사와 연대의 의미로 전태일의료센터에 마련될 ‘기부자의 벽’에 이름을 새긴다.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02)490-2002.
후원계좌: 기업은행 014-065306-01-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