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군 완도읍 대성병원의 유경옥 소아청소년과 과장이 6일 오후 병동에서 입원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 완도에서 어린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대성병원 뿐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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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전남 해남군에서도 연륙교를 넘어야 닿는 완도군에는 지난 3월까지 일요일에 문 여는 소아청소년과가 한 곳도 없었다. 평일 어린이 진료를 하는 의원은 몇 곳 있었지만 공휴일에 진료를 보려면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전남 목포시나 광주광역시까지 1시간30분 넘게 차를 몰고 가야 했다. 완도읍 대성병원의 유경옥(61) 소아청소년과장이 3월부터 격주 일요일마다 외래 진료를 보기 시작한 건 이런 아이들이 걱정돼서였다. “어린이 감염성 질환 환자는 아침과 저녁 사이에도 증세가 크게 악화할 수 있어요. 청산도, 노화도 같은 먼 섬에서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광주까지 다녀오는 부모님들을 보고 일요일 진료를 시작했습니다”라고 유 과장은 말했다.
일요일인 5일에도 그의 진료실에는 오후 4시까지 불이 켜졌다. 이날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온 어린이 31명이 독감·설사 등으로 진료를 봤다. 유 과장은 전날인 토요일도 오전에 외래 진료를 봤다. 밤 10시30분엔 ‘입원 환자가 소변을 보지 않는다’는 간호사 연락을 받고 병동으로 뛰어가 자정께까지 환자를 살폈다.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원을 지킨 셈이다.
세종시에서 의원을 하던 유 과장은 은퇴를 앞두고 ‘진짜 시골’에서 마지막으로 의술을 쏟자는 생각으로 지난 2021년 대성병원에 왔다. 320km 떨어진 세종 집엔 진료 일정이 없는 주말에만 차를 운전해 다녀온다.
대성병원은 265개 섬으로 이뤄진 완도군에서 입원 병동(120병상)과 응급실을 갖춘 유일한 병원이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정형외과 등 5개 진료과에서 9명의 의사와 15명의 간호사가 일한다. 동네 의원이 고칠 수 없는 신부전증·당뇨 같은 만성질환자나 심한 외상 환자를 처치한다. 증상이 더 중한 심근경색 등의 환자는 검사를 거쳐 목포·광주의 큰 병원으로 보내는 ‘허리 역할’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날로 줄어드는 지역 인구와 입원진료 수입에 병원은 늘 존폐를 걱정한다. 완도의 주민등록 인구는 2012년 5만4000명에서 지난해 4만8000명으로, 10년 새 12% 쪼그라들었다. 이미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근래 도로 등 교통 여건이 좋아지며 지역 병원 대신 광주나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고 있다.
여기에 3년째 내과 의사 채용 공고를 내도 문의조차 없을 만큼 심각한 ‘의료진 구인난’은 직원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이 병원 의사 9명 중 공중보건의사 2명을 뺀 7명은 57∼67살이다. 모두 은퇴가 멀지 않았다. 휴일을 반납해가며 병원을 지키는 이들이 청진기를 내려놓는 때가 되면, 대성병원의 응급실과 진료실 불도 꺼질지 모른다. 한겨레는 지난 5∼6일 이곳을 찾아 의료취약지 의료기관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6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 대성병원 1층 접수 창구 앞이 오후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북적이는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내과의사 한사람이 하루 100명 진료
대성병원의 환자 대기실은 6일 아침 8시30분 외래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다도해 여러 섬에서 모여든 40여명의 환자로 붐볐다. 환자 대부분은 당뇨·고혈압 등 노인성 질환자로,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고령층이다. 무거운 어구를 들다 허리 등을 다친 정형외과 환자들도 눈에 띄었다. 외래 환자는 이날처럼 월요일 오전에 특히 많다. 청산도·보길도 같은 비교적 큰 섬의 보건지소가 주말엔 문을 닫는 탓에 주말 동안 진료를 받지 못하고 병을 참던 이들이 이때 병원에 온다. 완도군 신지도에서 80대 어머니를 모시고 온 한 남성은 “외래 접수를 하고 1시간30분을 기다려서야 진료를 봤다”면서도 “이 병원이 아니었다면 육지 병원까지 차로 2시간을 가야 해 어머니가 더 힘드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은 환자가 몰리는 내과의 한병호(63) 과장에게는 이날 진료 시작 30분 만에 20명의 대기 환자가 생겼다. 그는 이 병원에서 ‘1인 5역’을 맡는다. 오전에만 30명이 넘는 외래 환자를 보고 틈틈이 인공신장실에서 투석 진료를 한다. 점심을 거른 채 대장 내시경을 하고, 외래 진료 뒤엔 병동의 입원 환자를 돌본다. 응급실 밤샘 당직도 선다. 한 과장은 “3년 전 내과 공중보건의가 복무를 마치고 떠난 뒤로는 혼자서 하루 80∼100명의 환자를 본다”고 말했다.
한병호 대성병원 내과 과장이 6일 오후 환자를 문진하고 있다. 이 병원의 유일한 내과의사인 그는 하루 80∼100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경옥 과장의 진료실 앞에는 밭일, 바닷일 등을 나가기 전 아이 진료를 보려는 보호자 7명이 진료 시작에 맞춰 대기 중이다. 그는 “보호자 중 국제결혼을 한 이주여성 등이 많은데, 건강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건강관리 지식을 당부할 때가 많다. 한국어가 서툰 보호자에겐 손짓·발짓과 함께 ‘파파고’(번역·통역 앱)를 써서 설명한다”고 말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전이양 원장(67·산부인과 전문의)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환자는 대부분 요실금, 염증 등을 앓는 고령자다. 증상이 심하면 전 원장이 직접 수술을 집도한다. 한 해 10여번 해양경찰 등이 먼 섬에서 이송해오는 응급 분만 환자를 처치하는 것도 전 원장의 몫이다. 그는 “1997년 개원 뒤 병원 일손에 여유가 있던 적이 없다. 진료과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업무량이 많은데도 자리를 지켜주는 의료진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의료진 구하기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도 태부족이다. 병동 2개 층과 응급실에 간호사를 3교대로 투입하는 데만 20여명이 필요한데, 병원 통틀어 간호사가 15명뿐이다. 외래 진료 전담, 인공신장실에도 간호사가 없다. 심지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응급실 간호사 인력 기준(8명)을 못 맞춰 과태료까지 낸다.
의료진을 충원하려는 병원의 노력이 없진 않았다. 병원 주변 아파트 14채를 매입해 직원 기숙사로 제공하고, 의료진 급여는 광주 등 대도시 병원들보다 높게 매겼다. 산부인과가 휴진하는 날엔 전 원장이 전남·광주 지역 의대와 간호대를 찾아 의사와 간호사 졸업생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최근엔 은퇴한 의사들에게 ‘주 3일이라도 우리 병원에 와서 환자를 봐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김남호 부장은 “도서 지역인 완도는 주변 육지인 해남·장흥군 등에 견줘도 (의료진이 오기엔) 정주 여건이 열악하다. 그렇다고 수도권 상급병원만큼의 연봉을 내걸고 의사를 초빙할 재정적 여유도 없어 어떻게 사람을 구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이양 완도대성병원장이 6일 산부인과 외래 진료를 보고 있다. 67살의 전 원장을 비롯해 이곳 의사 대부분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주말까지 환자를 돌본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건비 더 들여도 입원 환자는 대도시로
주변 인구가 줄면서 병원 수익은 계속 내리막이다. 도로 등 교통 여건이 좋아지며 광주나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 대성병원은 적자를 보지 않기 위한 ‘손익분기점’으로 병상 가동률 80%를 든다. 그러나 지난달 평균 가동률은 38%에 그쳤다.
전 원장은 “광주 등의 신식 병원을 경험한 환자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지지만, 우리 병원이 그만한 시설과 장비를 갖출 여력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표적인 게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늘어나는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려면 이 장비가 꼭 필요하지만, 영상의학과 의사를 구할 수 없어 들이지 못하고 있다.
대성병원은 지난해 적자 끝에 올해엔 간호사를 뺀 모든 직군의 연봉을 동결했다. 완도군이 올해 응급실의 의사·간호사 인건비 지원액을 지난해보다 5배 올려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적자가 계속 늘고 차입금 이자 부담이 커지면 기숙사 등 자산을 팔거나 직원 감축을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적자를 해소하려면 응급실, 소아청소년과, 공공산후조리원 같은 ‘돈 안되는’ 부속 시설의 문을 닫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전 원장은 그럴 생각이 없다. 병원이라면 마땅히 사람 생명에 직결되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진료과목과 응급실을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몇해 전 먼 섬에서 응급 분만 환자가 해경 배를 타고 병원에 온 적이 있습니다. 분만 시기를 놓쳐 입과 코에 태변이 범벅이 돼 가망이 없어 보이던 태아를 의료진이 인공호흡해가며 살려냈어요. 이런 경험을 해보면 절대로 필수의료를 접을 수 없습니다.” 전 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