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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은퇴한 노동자의 후원 “전태일 선생에 대한 예의입니다”

등록 2023-12-30 05:00수정 2023-12-30 08:20

[한겨레S] 커버스토리 보도 이후 그리고 희망 ③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계획 보도 뒤
시민들 뜨거운 후원 열기…내년 착공 계획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의 지하 2층 원장실 앞 복도에 한겨레가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녹색병원 20주년 기사가 전시돼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의 지하 2층 원장실 앞 복도에 한겨레가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녹색병원 20주년 기사가 전시돼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2023년이 저문다. 지배권력이 장악에만 열을 올리고 역사는 퇴행시켰던 대한민국의 1년은 사실상 삭풍만 몰아치는 한겨울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뜨거운 분노와 따뜻한 연대를 보이며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 외치고 힘없는 이에겐 손을 내밀었다. 2023년의 끝에도 또 한해를 살아갈 용기를 내는 이유다. 한겨레 토요판이 커버스토리 보도 이후를 되짚으며 2024년 다시 희망을 얘기하려 한다.
올해 9월16일은 토요일이었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녹색병원(병원장 임상혁) 직원들도 응급실과 당직 등 필수 의료인력을 빼고는 낮 12시30분까지만 근무하는 날이었다. 정창욱 기획팀장은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했다. 쉼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이었다. 아침에 한겨레 보도를 본 독자들이었다.

그날치 한겨레 토요판은 ‘산재 아픔으로 일군 녹색병원…기댈 곳 없는 자들의 병상’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녹색병원 개원 20주년(9월20일)을 앞두고 병원 설립 배경과 공익형 민간병원으로 걸어온 길,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것 같았죠. 퇴근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전화가 밤 11시까지도 끊이지 않더라고요.”(정창욱)

지난 22일 녹색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한겨레 보도의 반향과 향후 전태일의료센터 추진 현황이 궁금했다.

“그날 한겨레 기사를 본 독자들의 전화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쇄도했죠. 그게 월요일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계좌 후원이 100명, 그 뒤로도 며칠 동안 하루에 40~50명씩 후원이 이어졌어요.”(임상혁 원장)

녹색병원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계획을 공표하고 ‘준비위원회’를 꾸린 것은 지난 5월. 개원 20돌이던 9월20일에는 준비위원회를 건립위원회로 개편했다. 본격적인 모금 캠페인은 시작하지 않은 때였다. 임상혁 원장은 “병원 직원들이 먼저 마중물을 마련하자는 뜻으로 1억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고 했다.

이종훈 사무처장이 한겨레 보도 당일의 놀라웠던 순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올해 8월까지 기부자는 78명(이하 단체 포함), 9월 들어서도 15일까지 기부자는 58명에 그쳤다. 그런데 9월16일 아침 한겨레 기사가 나가면서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그날 하루에만 100명이 2361만원을 후원했다. 9월 말까지 보름 새 후원은 484명(9563만원)으로, 보도 이전과 견줘 세배가량 급증했다. 정창욱 팀장은 그날 저녁 경북 포항에서 걸려온 전화를 또렷이 기억한다.

“목소리가 연세가 꽤 있으신 분 같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저는 은퇴한 노동자로 살고 있는데,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는 항상 빚진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소선(전태일 어머니) 어머님 생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기사를 보고 뒤늦게라도 (전태일의료센터에) 기부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이게 전태일 선생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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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중구 오픈스튜디오에서 열린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우사일) 콘서트에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가운데)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후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녹색병원 제공
지난 14일 서울 중구 오픈스튜디오에서 열린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우사일) 콘서트에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가운데)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후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녹색병원 제공

임상혁 원장은 “기부 참여자 한분 한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며, 가수 하림씨의 ‘재능기부’ 사례도 소개했다. 앞서 9월20일 녹색병원 개원 20주년 기념식을 겸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 출범식에서 그는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위로한 자작곡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우사일)라는 축하 노래를 부르고 ‘우사일 100명의 아카이빙 챌린지’도 제안했다. “여러분이 직접 ‘나는 사랑하는 ○○○을 위해 일을 합니다’의 빈칸을 채운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은 인증샷을 올리고, 그게 100명이 모이면 “제가 그동안 노래하며 받은 비용의 일부를 떼어 100만원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지난 13일 그 약속은 이뤄졌다. 그는 뜻밖의 ‘기부 천사’ 소식도 전했다. “한 공연 기획자가 (실수로) 공연료 100만원을 더 입금했는데, 돌려주지 말고 100명의 아카이브 기부 금액으로 써달라고 했다”는 거다.

녹색병원이 소개한 연대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사회경제 단원 수업을 마친 뒤 바자회를 열어 모은 수익금 20만원을 기부했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천주교 서울대교구, 변호사, 공공상생연대 등 공익법인, 녹색병원에서 건강을 되찾은 수많은 노동자, 폐업한 외국계 기업에서 받은 위로금의 일부를 선뜻 내놓은 퇴직 노동자들, 일본 종합병원 의사들의 4%가 가입한 전일본 민주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사무국 직원들, 전기설비 업체와 건강식품 회사, 그리고 무엇보다 녹색병원의 가치와 지향을 지지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그 일부다. 녹색병원은 2024년 전태일의료센터를 착공해 2026년께 준공한다는 목표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사회연대 기부 캠페인을 할 계획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전태일의료센터에 당신의 벽돌 한장

녹색병원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총 19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원진재단과 녹색병원이 140억원을 출연하고, 나머지 50억원은 시민들의 ‘전태일 벽돌 기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기금 기부자는 전태일의료센터 추진위원회 위원이 되며, 완공 뒤에는 전태일의료센터의 운영과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개인 기부는 1계좌 10만원, 단체는 100만원. 추진위원이 되면 감사와 연대의 의미로 전태일의료센터에 마련될 ‘기부자의 벽’에 이름을 새긴다.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02)490-2002.

후원계좌: 기업은행 014-065306-0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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