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 의료전문기자
현장에서
지난 6일 오후 서울·인천의 일부 의사들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연 ‘의료법 개정안 반대’ 집회에서는 뜻밖의 자해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시의사회 좌훈정 홍보이사가 준비한 수술용 칼을 꺼내 들고서는 자신의 배를 그었다. 환자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수술용 칼은 순식간에 살상용 흉기가 됐다. 존경받아야 할 ‘의사 선생님’은 자해한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하얀 천에 묻혀 동료 의사들에게 내보였다.
의사협회나 의사들의 주장대로 의료법 개정안이 의사들의 기대에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또 정부나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단체의 주장만이 옳다고 치더라도 모든 수단이 용납되는 건 아니다. 수술용 칼을 흉기로 쓰는 자해를 통해 뜻을 이루려는 의사의 행동은 결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의사들이 차분한 설명에 나선다면 귀기울일 환자들이 적지 않겠지만, 자신의 생명마저 가벼이 여겨 자해하는 의사들에게 몸을 맡길 환자는 없다. 의사들의 이런 일탈은 일선 진료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마저 위협할 수 있다.
지금도 의사단체들은 의료법 개정안 반대를 위한 궐기대회를 전국 곳곳에서 준비하고 있다. 그 대회에서 또다시 수술용 칼이 등장해선 안 된다. 부디 ‘의사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자세로 질병의 아픔을 겪는 환자들에게 더는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한다. ‘생명을 살리라’는 수술용 칼로 자해를 한 서울시의사회 간부의 빠른 쾌유를 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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