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몸]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학생이 뼈를 가장 먼저 실습한다. 어느 나라, 어느 의과대학이든지, 시신을 해부하기에 앞서 뼈를 익힌다. 건물을 지을 때 철근을 먼저 세우듯이, 해부학을 배울 때에는 뼈대를 먼저 익힌다. 그리고 철근에 시멘트 따위를 입혀서 건물을 완성하듯이, 학생의 머릿속에서는 뼈대에 근육 따위를 입혀서 해부학 지식을 완성한다.
뼈를 알면 사람 몸의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뼈에서 근육이 붙는 곳은 튀어나왔거나 거친데, 이것은 근육이 뼈를 끊임없이 당겼기 때문이다. 이런 뼈 구조를 익히면 나중에 해부하면서 근육의 작용을 쉽게 풀이할 수 있다. 관절을 이루는 두 뼈의 관절면을 보면 관절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어깨관절을 이루는 어깨뼈와 위팔뼈는 각각 절구와 공이처럼 생겼기 때문에 어깨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또한 머리뼈의 경우, 수많은 구멍과 그 구멍을 지나는 신경, 혈관을 외워야 한다. 뇌로 드나드는 중요한 신경, 혈관인데, 외우지 않고 어떻게 의사가 되겠는가?
해부학 기사는 이미 해부한 시신으로부터 뼈를 추려서 보관해 놓는다. 뼈를 깨끗하게 추리기 위해서 끓는 물에 넣고 삶는다. 갈비탕이나 삼계탕에서 뼈를 추리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에서는 뼈에 붙어 있는 살을 구더기가 먹게 하는 자연친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관습에 따라서 시신을 무덤에 묻으면, 땅속의 벌레와 미생물이 살을 갉아먹어서 뼈만 남는다. 박물관에 가면 무덤에서 꺼낸 뼈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뼈는 해부학 실습실에 있는 뼈만큼 멀쩡하지 않다. 흙의 산성 성분이 뼈를 약하게 만들고 마침내 부수기 때문이다.
해부학 실습실에는 온몸의 뼈를 조립한 표본이 있다. 그러나 조립하지 않은 낱개의 뼈가 더 쓸모 있다. 학생이 뼈를 하나씩 들고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어서 그렇다. 뼈 실습이 끝나면 각 조에서 뼈를 탁자에 가지런히 놔야 한다. 머리뼈 아래에 척추뼈, 갈비뼈, 복장뼈를 놓고 그 옆에 팔뼈와 다리뼈를 잇달아 놓는다. 마치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만든다. 장난을 좋아하는 학생은 변사체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범죄 현장, 접근 금지’라고 쓴 띠를 붙이고 싶을 만큼 실감난다.
내가 잘 아는 의과대학에서 생긴 일이다. 어느 조에서 뼈 하나가 없어졌다. 해부학 선생님은 그 조의 학생한테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몸에 있는 뼈를 뽑아서라도 채워 놔!” 학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농담이야, 진담이야?” 마침내 학생은 없어진 뼈를 찾아서 제자리에 놓았고, 탈 없이 집에 갈 수 있었다. 그 뼈를 다른 조의 학생한테 빌려 줘서 생긴 일이었다.
시체해부보존법에 따르면, 시신 해부는 해부학 실습실에서만 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따라서 뼈를 실습실 밖으로 가져가는 것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옛날에는 뼈, 특히 머리뼈를 실습실 밖으로 몰래 가져가는 학생이 있었다. 실습실 밖에서 후배한테 가르치려고 한 짓이다. 의과대학에서는 해부학을 배우기 직전 겨울방학에 선배가 후배한테 뼈를 가르치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져가는 경우가 없다. 겨울방학에도 학생이 실습실에서 뼈 보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임상의사도 뼈를 구하려고 애썼다. 정형외과 의사는 자기가 다루는 팔뼈, 다리뼈를 구해 달라고 해부학 선생에게 부탁했다. 요즘에는 실제 뼈만큼 좋은 모형 뼈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는 1980년대에 해부학을 배웠고 그때 동료 학생과 함께 감자탕을 자주 먹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 감자탕은 적은 돈으로 많은 고기를 먹게 해주는 고마운 요리였다. 의과대학 학생이 감자탕을 먹으면 시끄러웠다. 감자탕에 들어 있는 돼지의 척추뼈가 사람의 척추뼈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학생은 자기가 익힌 척추뼈 구조를 악착같이 확인하고 토론했다. 의과대학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해부학이고, 해부학에서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이 뼈다. 해부학 선생이 보기에 몸의 출발점은 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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