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의료·건강

식인종이 아닙니다

등록 2013-08-09 19:26수정 2013-08-11 11:48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몸]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의과대학 학생은 해부학 실습실에서 근육을 찾아서 보느라고 많은 시간을 쓴다. 사람 몸에는 수백 개의 근육이 있으며, 거의 다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근육은 해부학에서 중요하다. 거꾸로 맨눈으로 볼 것이 별로 없는 구조는 해부학에서 덜 중요하다. 보기를 들면 당뇨, 소화와 관계있는 이자(췌장)다. 대신에 이자는 생화학, 내과를 비롯한 다른 과목에서 중요하다. 이처럼 사람 몸의 구조는 의과대학의 각 과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

근육을 찾아서 볼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근막 벗기기이다. 근육을 덮는, 얇고 반투명한 근막을 벗겨야 각 근육의 범위와 방향을 깨끗하게 볼 수 있다. 근육의 겉 근막뿐 아니라 속 근막도 벗겨야 한다. 속 근막을 벗길 때에는 근육으로 들어가는 신경, 동맥을 다치지 말아야 하므로 조심스럽다. 식당에서 소고기, 돼지고기를 요리할 때에는 굳이 근막을 벗기지 않는다. 따라서 의과대학 학생은 어느 요리사보다도 섬세한 셈이다.

근막 벗기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각 조에서 여러 학생이 나누어서 한다. 그런데 어떤 조에서는 한 학생이 도맡아서 한다. 공부를 하다가도 근육만 나오면 달려가서 근막을 벗긴다. 그 학생은 근육의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해부하는 것 같다. 작품을 만들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예술가처럼 보인다.

대개의 시신은 돌아가시기 전에 병을 앓으면서 운동하지 않았고, 따라서 근육이 작다. 운동을 많이 해도 작은 근육이 있는데, 바로 머리, 목의 근육이다. 닭에서 머리, 목의 근육이 작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머리, 목의 근육은 많아서 학생이 외우느라 고생한다. 식인종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머리, 목의 근육은 가짓수가 많은데, 먹을 것이 없다.”

몸통, 팔의 근육은 머리, 목의 근육보다 큰데, 그래도 식인종이 기대한 것만큼 크지는 않다. 그러나 다리의 근육은 크다. 사람은 네발짐승과 달리 일어서서 걷고 뛴 덕분이다. 이것을 아는 식인종은 다리를 볼 때마다 흐뭇할 것이다. 게다가 많이 걷고 뛰면, 다리의 근육이 더 커질 뿐 아니라 맛있어진다. 닭 다리가 맛있고, 물고기 지느러미가 맛있는 것처럼 그렇다.

해부학을 익히는 학생은 근육을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근육을 보고 만지는 것은 기본이다. 근육을 자를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어야 하고(별 소리가 나지 않지만), 근육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야 한다(고정액, 즉 방부제 냄새가 대부분이지만). 그러나 오감 중에서 나머지 감각인 맛보기는 실습실에서 느낄 수 없다. 시신에 고정액을 넣었기 때문에 먹으면 큰 탈이 난다. 고정하지 않아도 법과 도덕 때문에 먹지 않는다. 학생은 식인종이 아니다.

근육을 맛보려면 실습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가면 된다. 사람과 같은 포유류인 소, 돼지를 먹으면 된다. 나는 사람과 소, 돼지의 맛을 비교하지 않았지만, 비슷할 것으로 짐작한다. 모유와 우유의 맛이 비슷하듯이 그럴 것이다. 식당에서 순댓국을 시키면 이제까지 이야기한 뼈대근육뿐 아니라 위창자에 있는 민무늬근육도 맛볼 수 있고, 심장에 있는 심장근육도 맛볼 수 있다. 뼈대근육, 민무늬근육, 심장근육의 맛은 뚜렷하게 다르다.

나는 학생과 함께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몸을 오감으로 느껴야 해부학 실습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오감 중에서 맛보기는 식당에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식당은 해부학 실습을 마무리하는 곳이다. 육회를 시켜서 더 실감나게 맛볼까?” 이렇게 고기 맛을 떨어뜨려도, 학생은 끄떡없이 잘 먹는다.

영어 우스갯소리이다. 채식주의자는 채소(vegetable)를 먹기 때문에 베지테리언(vegetarian)이다. 식인종은 사람(human)을 먹기 때문에 휴매니테리언(humanitarian)일까? 아니다. 식인종은 캐니블(cannibal)이고, 인본주의자가 휴매니테리언이다. 문예부흥 때 다빈치 등의 인본주의자는 신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였고, 따라서 시신을 해부하기 시작하였다. 요즘에는 의과대학 학생이 시신을 해부한다. 학생이 인본주의자이고, 식인종은 인본주의자가 아니다. 학생은 결코 식인종이 아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보슬비 내리던 새벽이면, 그는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박 대통령 사과하라” 전국 10만 촛불의 외침
텐트 하나에 400만원…캠핑 온 거니? 장비 자랑 온 거니?
영국 노동계급 쫓아내는 프리미어리그
[화보] 눈뜨고 못볼 4대강 후유증…깎이고 꺼지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