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나는 1980년에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핑계를 대면 그때 남자 어른의 삼분의 이가 담배를 피웠다. 술자리 또는 군대에서 담배를 안 피우면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다 피우는데, 너는 왜 안 피우니?” 안 피우는 명분이 뚜렷하지 않아서, 또는 안 피우는 까닭을 이야기하기 귀찮아서 피우기도 하였다. 사람을 사귀려면 술 마시고 담배 피워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때에는 의사도 담배를 많이 피웠다. 병원 구석구석에 의사가 담배 피울 만한 곳이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진료실에서 환자가 있는데 피우는 의사도 있었다. 이것을 막으려고 병원에서 담배를 팔지 않았는데, 그 탓에 부작용이 생겼다. 병원에 갇힌 전공의가 담배를 사지 못해 쩔쩔맸고, 마침내 임상 실습을 하는 의과대학 학생의 담배를 빼앗아 피웠다. 안 피우는 학생도 당직이 많은 과에서 임상 실습을 할 때에는 담배를 갖고 다녀야 했다. 이름 그대로 접대용 담배였다. 그때 나온 말이 ‘선공후사’였다. 선배는 공짜로 피우고, 후배는 사서 피운다는 뜻이었다.
1980년대에 나는 시신의 허파를 처음 봤다. 가슴우리를 열고 허파를 꺼내서 보니까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살아 있을 때 먼지를 들이마셨기 때문이었고,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검은 점이 절반 넘게 차지한 허파도 있었는데, 대충 봐도 허파 쓰임새에 문제가 있었다. 이런 허파는 남성 시신에서만 볼 수 있었으며, 마땅히 담배 때문이었다. 끔찍한 허파를 본 나는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곧 쉬는 시간이 되자 이렇게 말했다. “담배 한 개비 줘라. 그 허파 때문에 속이 탔더니, 담배가 더 생각난다.” 안타깝게도 해부학 실습은 담배 끊는 데 도움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나는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100개가 넘는 허파를 해부하였다. 담배를 피운 사람의 허파가 많았고, 그 허파는 딱딱해서 해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담배를 끊은 다음에 몸을 기증하겠다. 내 허파 때문에 누가 고생할까 봐 벌써 미안하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박사학위 때문에 속이 타는 것을 달랜다는 명분이었다. 담배는 무서운 마약이었다.
2000년대에 나는 미국의 의과대학에서 연수하였다. 주로 한 일은 해부학 실습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가르치면서 꾸짖지 않았는데, 첫째 까닭은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나한테 책임이 없기 때문이었다. 둘째 까닭은 나한테 꾸짖을 만한 영어 실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칭찬하는 영어만 알지, 꾸짖는 영어를 잘 모른다. 꾸짖지 않은 덕분에 미국 학생이 나를 좋아하였다. 그런데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싫어하는 학생이 생겼으며, 그 학생은 마약 중독자를 쳐다보는 눈으로 말했다. “담배 피우는 의사를 처음 봅니다.” 나는 마음을 다지고 담배를 끊었는데, 다시 피우게 되었다.
2008년에 내 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한테 엄포 놓았다. “나도 어른이 되었으니까 담배를 피울게요.” 나를 괴롭힌 담배가 내 아들도 괴롭힐 것을 걱정해서, 드디어 끊었다. 다행히 아들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2010년대인 요즘, 많은 의사가 나처럼 담배를 끊었다. 담배 피우는 의사가 간혹 있는데, 마약 중독자처럼 몰래 피우는 형편이다. 요즘 담배 피우는 의과대학 학생은 거의 없다. 한 세대가 지나니까 한국이 미국처럼 바뀐 것이다. 의사와 의과대학 학생은 해부학 실습 덕에 안 피운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의 눈총 탓에 안 피우는 것이 맞다. 지금 또는 나중에 환자와 가족한테 잘못 보이면 견디기가 어려워서 안 피운다.
의과대학과 관계없이, 미국 사회에서 담배는 덜 배우고 덜 가진 사람이 피우는 것으로 낙인찍혔다. 내가 보기에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그렇다. 덜 배우고 덜 가진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피우겠는가? 옛날에는 사람을 사귀려고 피웠지만, 요즘에는 사람을 사귀려고 끊는다. 더 배우고 더 가진 사람과 사귀려면 끊어야 할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이 글을 읽고 속이 타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다. 나처럼 28년 동안 피우고 끊겠다는 젊은이가 있을까 봐 걱정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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